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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디아스포라
부산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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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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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덕 / 소설가]

2년 전 부산을 방문했던 사라가 새해를 맞아 이메일을 보내왔다. 프랑스령 레위니옹 섬에서 살고 있는 사라는 그때 친부모를 찾기 위해 부산에 왔다. 사라가 부산에 머물렀던 나흘 동안 내가 그녀를 안내했었다.

고국 떠난 입양아들, 해외 동포들
한반도 밖에 한인 800만 명 살아
고통으로 점철된 디아스포라 삶
점차 느는 이주노동자와 난민들
그들은 우리 안의 디아스포라
이해하고 포용하는 새해 되길

이메일에서 사라는 올봄에 다시 한국을 방문할 거라고 했다. 여전히 가족을 애타게 찾고 있고 요즘엔 한국 드라마를 즐겨 시청한단다. 그러고 보니 메일 제목이 순 한글이었다. “안녕하세요, 사라입니다.” 2년 전에 그녀는 한국어를 전혀 몰랐다. 영어도 잘 몰랐다. 그래서 의사소통이 매우 힘들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첫인사와 끝인사는 한국어로, 본문은 영어로 썼다. 한국을 다녀간 이후 그녀의 삶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사라가 프랑스로 입양을 떠난 1987년은 한국의 해외 입양아 숫자가 정점을 찍은 해였다. 그해에만 약 8000여 명의 아이들이 해외로 떠났다. 이듬해 열린 ‘88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해외 입양아의 숫자가 감소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해외 언론이 한국 사회의 이 기이한 현상에 대해 보도한 것이 한 원인이 되었다.

   
 

한국전쟁 고아들을 구제하기 위해 시작된 해외 입양이 1950년대가 아니라 70년대와 80년대에 전성기를 맞이한 건 뼈아픈 아이러니이다. 경제 발전과 근대화를 이룩하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누구를 희생시켰는지가 분명해진다. ‘요보호 아동’을 위해 사회복지 예산을 편성하는 대신에 이들을 해외로 송출함으로써 국가는 자신의 책무를 다하지 못했다. 어린 시절에 비자발적으로 고국을 떠난 입양아들은 바로 우리 사회가 만들어 낸 디아스포라이다.

얼마 전 개봉한 다큐멘터리 〈헤로니모〉 역시 오랜 세월 동안 국가가 돌보지 못한 한인 디아스포라의 삶과 역사를 다루고 있다. 〈헤로니모〉는 고(故) 임은조의 생애를 중심으로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쿠바의 한인 역사를 조명한 다큐멘터리이다. 서두에서 자막으로 소개된 통계가 눈길을 끌었다.

“한반도 밖에 800만 명에 육박하는 한인들이 살아간다. 이는 남북한 전체 인구의 10프로가 넘는 수치이다.”

1905년 전후로 하와이와 멕시코로 떠난 한국인 노동자들은 사탕수수와 에네켄 농장에서 그야말로 노예의 삶을 살았다. 하지만 이들은 ‘나와 내 부모가 떠나온 곳’을 결코 잊지 않았고, 일제강점기 동안 쌀 한 숟갈씩을 모아 상해 임시정부로 독립 자금을 보냈다. 이후 역사적 격동기를 거치는 동안 한인 2세와 3세들이 태어났고, 이들은 한인 공동체를 형성하고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분투했다.

“디아스포라의 핵심은 고통입니다.” 〈헤로니모〉에 출연한 유대교 랍비는 디아스포라를 이렇게 정의한다. 존재의 뿌리를 통째로 뽑아서 낯선 타국 땅에 이식해야 하는 그 고통의 경험을, 내국인들은 쉽게 짐작하거나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입양인 사라와 고(故) 임은조가 그리워했던 고국인 이곳은 다른 누군가에게는 새롭게 뿌리를 내려야 하는 디아스포라의 땅이기도 하다. 어느새 우리 곁으로 가까이 다가온 이주노동자와 난민들은, 생존을 위해 소중한 것들을 고국에 두고 떠나온 디아스포라들이다. 낯선 외모에 이방의 언어를 구사하는 이들의 얼굴 위에 사라와 쿠바 한인들의 얼굴이 겹쳐서 떠오른다.

새해에는 우리 사회의 낯선 이웃들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기회가 더 많아졌으면 한다. 내가 발 딛고 살아가는 곳에서 낯설고 이질적인 것을 받아들이는 삶의 방식이야말로, 저 멀리 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자신의 세계를 확장하고 팽창하는 경험을 가져다 줄 것이다. 차이는 대화와 소통의 계기가 될 수 있다. 우리 안의 디아스포라를 배제하거나 혐오하지 않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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