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0.1.20 월 17:47
재외선거, 의료보험
> 오피니언 > 교포지논단
한국 사회가 불안을 대하는 자세
매일경제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20.01.15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장경덕 / 논설위원

   
 

오스트리아 작가 페터 한트케는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받았지만 `발칸의 도살자`라는 슬로보단 밀로셰비치를 두둔한 전력 탓에 많은 이들에게 외면 받는다. 하지만 그의 소설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은 기억할 만하다. 꽤 유명한 골키퍼였던 주인공은 어느 날 아침 건축 조립공으로 일하러 갔다 자신이 해고됐음을 알게 된다. 감독이 힐끗 올려다본 순간 그걸 해고 신호로 짐작하고 공사장을 떠난다.
소설은 소외된 인간의 불안을 포착한다. 어디 이 소설뿐이랴. 누구라도 오늘날의 한국 사회를 돌아보면 달려오는 키커를 바라보는 골키퍼처럼 불안에 휩싸인 이들을 숱하게 만날 것이다.

불안은 주로 사회적 지위에 관한 것이다. 지난해 1만9000가구를 대상으로 한 통계청 사회조사를 보자. 자신이 사회·경제적으로 상류층이라고 답한 이는 2% 남짓했다. 하류층이라는 답은 40%에 가까웠다. 자식들의 계층 상승 가능성이 높다는 이들은 10년 새 48%에서 28%로 줄었다. 매우 높다는 답은 3%가 채 안 된다. 가까운 장래에 일자리를 잃거나 옮겨야 할까봐 불안한 이는 10명 중 6명에 이른다. 두 명 중 한 명은 갑자기 큰돈을 빌려야 할 때 도와줄 이가 아무도 없다고 했다. 낙오되고 파편화된 삶에 대한 불안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영국 작가 알랭 드 보통이 꿰뚫어 보았듯이 불안은 욕망의 하녀다.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보다 어느 정도 잘살게 된 오늘날 불안이 더 크다. 비슷하게 노력해도 누구는 `아버지가 열심히 안 해서` 건물주가 못 되고 평생 알바족으로 산다. 불안감은 목 좋은 아파트와 명문대 졸업장 시세에 따라 널뛰기를 한다. 안전은 인간의 기본적 욕구다. 맘껏 상상하고 모험을 즐겨야 할 젊은이들이 공무원 시험에 목을 매고, 과감하게 미래 성장 투자의 리스크를 안아야 할 자본가들이 부동산 투자에 몰리는 것은 지나친 안전 희구 성향을 보여준다.

기술 변화가 가속화하고 시장의 불확실성이 짙어질수록 불안과 공포도 커진다. 냉혹한 글로벌 자본주의와 숨 가쁜 디지털 혁명의 시대에 개인과 기업, 국가가 온갖 불안에 휩싸이는 것은 피할 수 없다. 문제는 그 불안을 어떻게 대하느냐다. 불안을 한껏 키우며 변화와 혁신의 싹을 잘라버리는 사회가 있는가 하면 불안을 현명하게 다스리며 창조적 파괴의 역량을 키워가는 사회가 있다. 우리는 어느 쪽인가.

한국 사회가 불안을 대하는 자세에는 세 가지(3D) 문제가 있다. 각자 책임을 부인(deny)하고, 서로 불신(distrust)하며, 힘을 합치지 않고 분열(divide)하는 문제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의 신념을 더욱 굳힘으로써 불안을 떨쳐버리려 한다. 자신의 믿음에 대한 어떤 비판도 거부하고 비타협과 불관용의 자세를 고집하며 불안 요인에 대응할 책임은 미루는 것이다. 불안과 불신은 상승작용을 한다. 통계청 조사에서 `우리 사회를 믿을 수 없다`는 응답이 49%에 달했다. 2030세대에서는 51~55%에 이르렀다.

불안한 이들은 또한 배제의 장벽과 독점의 성채를 쌓는다. 일자리 불안이 커질수록 대기업 노조가 기득권의 철옹성을 쌓는 것이 그 예다. 총선과 대선을 앞둔 정치는 가뜩이나 갈라진 사회의 분열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포퓰리즘의 달콤한 속삭임도 늘어난다. 올해 처음으로 투표권을 갖게 된 18세 청년이 50년 후 은퇴할 때는 생산연령인구 한 명이 고령 인구 한 명을 부양해야 한다. 하지만 인구 재앙과 연금 개혁을 말하는 정치인은 없다.

오늘날 절대적인 안전은 어디에도 없다.

우리를 짓누르는 모든 불안을 단숨에 없애주겠다는 이들은 선동가나 주술가일 뿐이다. 이 격변의 시대에 절실한 것은 역동적 안정성이다. 자전거가 한자리에 서 있을 때보다 달릴 때 더 안정적인 것과 같은 이치다. 우리 사회의 불안을 부추기지 않고 역동적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정치인을 선택하는 것은 온전히 우리의 몫이다.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회사소개광고문의기사제보구독신청찾아오시는길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 110-888 서울시 종로구 종로 19 B동 1118호 (종로1가, 르메이에르종로타운) | Tel 02)2075-7141~3 | Fax 02)2075-7144
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아 01003 | 등록일자 : 2009. 10. 24 | 발행인 : 이구홍(전 재외동포재단 이사장)
개인정보취급담당자 : 최유정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유정
Copyright 2008 세계한인신문. All Rights Reserved.mail to oktime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