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0.9.22 화 17:56
재외선거, 의료보험
> 오피니언 > 본국지논단
‘경자균란’
국민일보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20.02.06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한장희 / 산업부장

   
 

병자(丙子)년인 1636년 청나라가 조선을 침공했다. 남한산성에서 내려온 인조가 청 황제 앞에서 언 땅에 머리를 찧고, 세자와 대군이 인질로 끌려가면서 전쟁은 끝났다. 조선 왕조는 굴욕을 당했지만 멸망하진 않았다. 항복한 조선 왕조에 자비를 베풀었다는 설이 있지만, 고사(枯死)작전을 펴던 청 황제 홍타이지가 돌연 협상에 나서고 귀국을 서두른 이유가 천연두 때문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청군 진영까지 천연두가 퍼지자 청 황제가 이를 피해 서둘러 귀국길에 올랐다는 주장인데, 이 말이 사실이라면 바이러스가 조선 왕조의 명맥을 잇게 한 셈이다.

경자(庚子)년 벽두부터 중국발 바이러스로 세상이 흉흉하다. 중국에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신종 코로나)으로 인한 사상자가 속출하고, 국내에서도 확진자가 잇따르고 있다. 가까스로 터널을 벗어나던 경제 상황도 다시 암울해진 분위기다. 수출 부진 속 정부 예산으로 어렵게 살려 놓은 경기 회복의 불씨가 불을 피우기도 전에 꺼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사스 때의 암울한 기억 때문이다. 2003년 사스 발생 당시 10% 가까운 고성장을 이어가던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7%대로 주저앉았고, 한국 경제도 휘청거렸다. 특히 사스 창궐 당시 4.3%였던 세계 국내총생산(GDP) 중 중국 비중이 지난해 16.3%까지 확대된 점은 우려를 더 키우고 있다.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신종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무역, 관광 등에서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어떤 이는 이번 사태를 두고 ‘울고 싶은 중국이 뺨 맞은 격’이라는 분석도 내놓는다. 중앙정부의 막대한 재정 투입에도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29년 만에 최저치인 6.1%로 떨어질 만큼 중국 내 민간 부문 성장은 둔화했다. 여기에다 중국 학자들과 언론이 중국 기업들과 지방정부의 부채 문제를 ‘회색 코뿔소’라고 경고하기 시작했다. 회색 코뿔소란 사전에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지만 실제로 사건이 발발하기 전까지 간과되는 위험 요인을 비유하는 말이다. 종합하면 경제성장 엔진 냉각으로 성장률 둔화에 노출된 중국 경제가 기업과 지방정부의 연쇄 부도로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 신종 코로나 사태가 터졌다는 것이다.

물론 정확한 실상이 어떤지, 또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제어할 수 없는 대외변수’라면서 손 놓고 있을 수만도 없다. 과거 사례는 좋은 참고서가 될 수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스 공포가 남아있던 2003년 7월 베이징 방문을 강행했다. 중국 언론은 ‘사스 후 가장 먼저 베이징을 찾은 외국 정상’이라며 환영했고, 이후 몇 년 동안 한·중 관계는 밀월기를 보냈다. 당시 현대차 등 한국 브랜드 인지도도 단숨에 급등한 바 있다.

최근 중국 매체들은 문재인 대통령의 응원 메시지와 한국 정부의 지원 소식을 앞다퉈 보도하고 있다. 삼성과 현대차, SK, LG 등이 현금과 의료용품을 기부하기로 한 사실 역시 중국 언론을 통해 상세히 소개됐다. 한국의 지원을 보도한 기사엔 “어려운 시기에 도움을 준 한국에 감사한다”는 댓글이 이어지고,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엔 “다음에는 꼭 삼성 휴대폰을 사겠다”는 반응도 등장했다고 한다.

이번 사태를 다루는 중국의 대응을 놓고 뒷말이 많다. 주변국 민심 역시 호의적이지 않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 탓을 하기보다는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궁리를 해야 할 시간이다. 간과하면 안 될 게 흔들린다고 해도 여전히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자 최대 소비국이라는 점이다. 중국 경제가 침체하면 우리나라의 타격이 가장 클 수밖에 없겠지만, 회복세를 보일 때는 가장 큰 수혜국이 될 수도 있다. 384년 전 바이러스가 조선 왕조를 구했다는 가설처럼 경자년의 바이러스는 중국에서 고전하던 국내 주요 기업들에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줄 수도 있다.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회사소개광고문의기사제보구독신청찾아오시는길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 110-888 서울시 종로구 종로 19 B동 1118호 (종로1가, 르메이에르종로타운) | Tel 02)2075-7141~3 | Fax 02)2075-7144
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아 01003 | 등록일자 : 2009. 10. 24 | 발행인 : 이구홍(전 재외동포재단 이사장)
개인정보취급담당자 : 최유정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유정
Copyright 2008 세계한인신문. All Rights Reserved.mail to oktime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