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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을 대하는 자세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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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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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수 / 논설위원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머나먼 중동에서 단 1명의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감염자가 들어왔을 뿐인데 온 나라가 쑥대밭으로 변했던 일이….

2015년 5월 바레인 등 중동을 다녀온 60대 남성이 고열과 기침으로 병원을 찾았다. 병원 측은 정부에 메르스 검사를 요청했지만 발병 국가가 아니라며 거절당했다. 환자는 9일 만에 확진 판정을 받았고 그 사이 병은 어이없게 퍼져나갔다.

당시 최경환 국무총리 대행은 확진 발생 후 14일이 지나서야 처음 관계부처 장관회의를 열었다. 회의에서 환자가 거쳐 간 병원들을 밝히지 않기로 해 오히려 국민들의 공포와 혼란이 심해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사태를 진두지휘하기보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쳐내는 ‘집안싸움’에 여념이 없어보였다.

5년 전 메르스 사태는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준 총합체였다. 한국은 186명의 확진자와 38명의 사망자가 나와 첫 발생지인 사우디아라비아 다음으로 피해 2위를 기록했다. 한국이 멀쩡한 중국과 홍콩에 병을 전파해 주변국들의 눈총을 받을 정도였다.

반면 2003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대처는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 ‘모범국가’라는 칭송을 들었다. 노무현 정부는 출범 한 달도 안 됐는데 중국에서 사스가 유행하자 바로 범정부 차원의 종합상황실을 만들고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열감지기가 전체 1개밖에 없어 급히 10개를 사서 공항에 설치할 정도로 열악한 상황이었다. 정부는 군 의료진까지 투입해 전쟁하듯 방역을 했다. 그 결과 세계 8000여 명의 확진자가 발생하고 800여 명이 사망했지만 한국은 확진자나 사망자가 단 1명도 나오지 않았다.


울리히 벡이 ‘위험사회’에서 말했듯이 문명화된 사회는 그만큼 위험도 커진다. 세계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면서 뜻밖의 재난이 발생하거나 유입될 가능성이 많아졌다. 게다가 재난은 늘 새로운 얼굴로 발생하기 때문에 평소에 방어 시스템을 갖춰도 준비가 완벽할 수 없다. 재난이 닥쳤을 때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중요하다.

2014년 세월호 참사는 잘못된 대응이 어떻게 공동체를 무너뜨리는지 보여준 사례다. 세월호는 인명구조도 엉망이었지만 사후처리도 최악이었다. 대통령이 진상조사를 약속했으나 그때뿐, 정부 여당은 특별조사위원회 구성부터 조사까지 사사건건 방해했다. 미국은 9·11테러 조사위원회가 현직 대통령도 조사했는데, 한국은 ‘대통령의 7시간’ 조사를 놓고 나라가 쪼개졌다. 피해자 가족들이 단식하는 곳에 찾아가 폭식하고 조롱하는, 인간이 해선 안 될 일까지 할 만큼 한국 사회는 분열과 갈등으로 치달았다.

재난을 지옥으로 만드는 건 재난 자체가 아니라 재난을 대하는 그 사회의 태도다. 지도자들이 정보를 숨기고 책임회피에 급급하며 진실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적으로 몰아세울 때 그 사회는 만인이 만인과 투쟁하는 지옥으로 변하고 만다. 메르스와 세월호 때가 그랬다.

신종 코로나로 한국은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사스 때에 비해 중국의 경제 규모는 10배가 됐고 그만큼 다른 나라들과의 교류도 폭증했다. 세계 곳곳에서 환자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감염 경로를 알 수 없는 환자들도 나오고 있다. 그나마 다행은 아산과 진천 사례처럼 국민들이 이심전심으로 마음을 합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사스 때보다 한층 더 치열하게 전투를 벌이되,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 국민의 불신과 불안을 없애야 한다. 국민이 단합해 재난을 물리치려면 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정부와 지자체가 갈등하고, 환자와 의사가 서로 비난하고, 정부와 국민, 국민과 국민이 싸우던 5년, 6년 전 아수라장의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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