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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함이 주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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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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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택영 / 파리 거주 화가, 전 홍익대 교수, 칼럼니스트

우리 삶 속에는 모든 것이 정석과 정설대로 이루어지는 것 같지만, 역설과 모순된 일들이 부지기수로 많다.

편리하고 빠른 것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에게는 편한 것이 미덕이고 불편하고 느린 것은 부덕한 것으로 여기며 불편하고 느린 것은 쓸모 없고 버려야 하는 것으로 치부되고 있다.

초고속 열차나 초고속 인터넷의 출현 등은 바로 이런 편리함을 추구하는 데서 비롯된 문명의 이기라 아니할 수 없다. 현대인들은 편한 삶을 찾는 사람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꼭 삶이 편하고 빨라야 좋은 것만이 아니란 것을 깨닫게 된다.

2천여 년 전 장자莊子는 인간세人間世에서 ‘무용지용無用之用’이라는 역설을 썼다.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쓸모가 있어야 한다고 여긴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쓸모가 있음으로 인해 스스로를 망치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쓸모가 없으므로 인해 자신을 지킬 수도 있다는 것이 무용지용의 뜻이다. 가령 공부와 놀이도 그런 역설의 조합이다. 삶을 즐기고 사랑하고, 거기에서 생의 희열을 얻고 자기존재를 확인하는 과정이 없다면, 인생의 의미도 모르고 살아가게 된다.

또한 입에 쓴 약이나 듣기 거북한 조언에 관한 역설도 있다. ‘충언은 귀에 거슬리나 행함에 이롭고 忠言逆於耳利於行, 양약은 입에 쓰나 병에 이롭다 毒藥苦於口而利於病’는 말도 역설의 하나이다. 듣기에 거슬리는 말을 넓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 쓴 소리가 자신에게 도리어 스승이 된다.

편안함이 도를 넘으면 도리어 불편함으로 뒤바뀌게 되는 일도 다반사이다.

일본의 전통적인 ‘료칸’ 서비스가 현대인 의식에 맞지 않아 손님이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손님의 잠자리까지 손수 돌봐주는 료칸 여주인의 친절이 프라이버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손님을 불편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토론토 지하철에선 일부 중심가에 있는 역을 빼고는 인터넷뿐만 아니라 전화 연결도 안 된다고 한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신문이나 책을 보는 모습이 대부분이라 한다. 그런 불편함이 메커니즘에 묶이지 않은 참 자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미국의 경우 쉽고 편한 패스트 푸드로 인한 비만 등으로 의료기기에 의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 수가 1억 명 정도에 이르고 이로 인한 의료비 지출이 상상을 초월할 만큼 국가예산을 지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필자에게는 ‘불편의 건축미학’을 역설하는 친구가 있는데 그는 일반적인 건축기능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고 해석한다.

복도가 넓으면 지나는 걸음걸이가 빠르고 빠름은 사람끼리의 예의를 소홀히 여기게 만들기도 한다. 서로 간섭 없이 스쳐갈 수 있는 넓은 복도는 언뜻 여유로울 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인간관계에서는 외면과 소외를 조장하는 악덕의 동선이라 보며, 서로 마주치면 한 사람이 비켜서야만 둘 다 지나갈 수 있도록 복도를 아주 좁게 만들어 서로 예의를 지키게 만든다. ‘불편의 미학’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경박한 도시에 신중한 건축이 드물고 기품 있는 공간 속에 비로소 기품 있는 생활이 따른다”는 것이 그의 건축철학인 것이다.

파리에서의 삶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대중교통이 잘 발달되어 있다는 프랑스 파리에서 평소에 느끼지 못하던 대중교통의 편리함은 잇단 시위와 파업으로 인해 운행이 중단된 여러 지하철 노선과 버스들로 계획된 목적지에 이르는 길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감사가 무엇인지를 새삼스레 깨닫게 한다.

근자에 이르러 무시로 일어나는 ‘노란조끼 Gilet jaune’의 거리 시위와 연금법에 관련한 파업으로 “정부는 종말을 걱정하고 우리는 월말을 걱정한다”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대중교통의 평상 운행에 큰 차질을 주어 시민들에게 불편을 주고 있다.

필자는 대중교통의 파업으로 지하철과 버스 노선 운행이 중단되는 동안 트람과 버스를 연계하여 목적지를 가게 되었다. 평소에 잘 타지 않던 트람을 두 번 환승하고 이어 연계된 버스를 이용해 마침내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트람은 아는 바와 같이 속도가 느리게 운행된다. 그렇지만 트람을 타고 세느 강변을 타고 외곽지역으로 달리는 트람 속에서 많은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 라 데팡스와는 분위기가 다른 현대식 건축물들 속에서 현대건축의 다양성을 볼 수 있다. 비록 속도는 느리지만 미끄러지듯 궤도를 따라 달리는 트람에서 삶의 자유로움과 생각할 여유를 갖게 된다.

우유를 쉽게 마시기 위해 빨대를 꽂거나 생각 없이 남용하는 비닐봉지가 썩기 위해서는 40년이, 플라스틱 빨대가 썩기 위해 80년이란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생각해보지 않는다.

느리게 가는 트람 속에서 침묵 속에 빠져본다. 침묵은 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이고, 그곳에서 우리는 ‘나’를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된다. 초고속으로 치닫고 있는 현대인의 삶 속에서 과잉 편안함이 끼치는 여러 결과들을 깊이 생각해보고 ‘불편함이 주는 교훈’을 돌이켜 생각해 보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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