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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서글픈 가로본능의 세계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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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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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성 / 문화부장

   
▲ 봉준호 감독이 지난 6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베벌리힐스 새뮤얼 골드윈 극장에서 열린 오스카 위크 행사에 참석,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베벌리힐스=AFP연합뉴스

영화 ‘기생충’에 대해 가장 많이 얘기하는 건 불평등을 드러내는 수직적 계단의 이미지다. 폭우가 쏟아지던 날 기택(송강호)네 가족이 계단을 끊임없이 내려가던 장면, 그리고 그 계단 중간쯤에서 불어난 빗물에 신발이 물에 흠뻑 잠기는 장면 같은 것이 꼽힌다. ‘현타’의 그 순간 가난은, 불평등은, 계급은 그렇게 우리 발을 적시고 기어이 온 몸이 벌벌 떨리게 만든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가로본능’ 이야기를 하고 싶다. 스마트폰 이전 핸드폰 시절, 세로인 폰 화면이 90도 수평으로 드러눕던 풍경 말이다. 핸드폰 화면조차 기어코 돌려서 눕히더니 스마트폰 시대엔 이제 화면이 자동으로 가로로 바뀌게 해뒀다. 위아래를 두루 둘러보는 시선이 아니라 자기가 서 있는 위치에서 좌우로 살피는 이 가로본능은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절대화한다. 하필 기택네 반지하 창문 또한 가로로 길쭉하니 나 있다.

‘기생충’을 불평등 문제로만 읽어내면 민중이란 대체 무엇인가, 라는 조금 지겨운 질문에 부딪힌다. 기택 일가의 천연덕스런 취업 사기 행각이나 충동적 살해 행위 같은 걸 설명할 뭔가가 필요해지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 거부감을 드러내는 이들은 대개 이런 부분을 불편해한다. 이 부분을 애써 외면하는 이들은 ‘기생이 아니라 공생이잖아요’처럼 진부하고 뻔한 도덕적 교훈이 이 영화의 주제라고 우기기도 한다. 공생은커녕 ‘영악한 기생’을 그려내는 영화를 두고 말이다.

도덕적이고 이상적인 ‘민중’을 단출한 농경사회 시절 빈농에서 추출한 일종의 로망으로 간주하고, 복잡한 현대 산업사회에 이상적 민중 그 자체를 찾아내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보면, 좀 더 접근이 편해진다. ‘기생충’을 그저 제가 서 있는 위치에서 저마다 약자를 자처하는 가로본능의 화신들이 벌인 소동극으로 보면, 거부감이 들만한 지점들은 저절로 사라진다. 동시에 불평등을 다루는 영화임에도 이 영화가 선악 단순 이분법으로 환원되지 않는 이유다.

물론 ‘기생충’ 최고의 캐릭터는 동익(이선균)이다. 동익은 죽는 그 순간까지 단 하나도 제대로 아는 게 없다. 운전기사 기택이 왜 자기에게 흉기를 들이대는지, “당신 나 알아요?”라 되물어야 했던 근세(박명훈)가 왜 자기에게 “리스펙!”를 외치는지, 지금 자기 눈 앞에 벌어지는 이 아수라 지옥도가 대체 무엇인지, 그 무엇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

선을 침범당할까봐 그렇게 노심초사했건만 그에게 이 세상은 그저 ‘알 수 없음’으로 남았을 뿐이다. 포인트는 흉기에 맞아 쓰러질 때 동익이 짓던 ‘대체 이게 뭐야’라던 표정, 그것은 자격을 갖춘 자들만 선을 넘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능력주의 신화, 공정성의 맨 얼굴이라는 점이다. 요즘 우리 사회 화두라는 공정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꽤 괜찮은 대답이라 생각한다.

   
▲ 조태성 문화부장

‘기생충’의 힘은 이처럼 쉽지 않다는 데서 온다. 동익에게 분노하는 게 제일 손쉽지만 동익이 디디고 선 능력주의, 공정성 신화는 우리 모두가 내면화한 발판이기도 하다. 우리의 영원한 피난처 ‘민중’ 기택네는 생각보다 영악할 뿐 아니라, 문광(이정은)과의 생존투쟁에선 잔혹하기 이를 데 없다. 실실 웃어대는 기우(최우식)만이 꿈꾸는 자로 남지만, 그 꿈이라는 건 보는 이에게 그저 헛웃음과 쓸쓸함만 자아내게 할 개꿈일 뿐이다. 저마다의 가로본능에만 충실한 자들의 세계란 그렇게 서글픈 것이다.

우리나라 시간으로 10일 오전 10시 아카데미상 시상식이 시작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에도 불구하고 ‘기생충’의 수상 가능성을 두고 들썩댄다. 외국어영화상은 확실시되고 나머지 부분은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고 한다. ‘기생충’이 많은 상을 받는다면, 그저 한국의 쾌거이자 저력을 보여줬다기보다, 가로본능 한국사회에 대한 돋보기로 쓰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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