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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리원량을 들어줄 가슴이 있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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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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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 중앙일보 대기자 칼럼니스트

촛불 정부 4년차 뭐가 달라졌나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한가
가까운 사람부터 쳐야 원칙 선다
국민을 부끄럽게는 하지 말아야

   
 

리원량(李文亮) 이야기는 가슴이 답답하다. 중국 우한(武漢)의 의사였던 그는 지난 연말 친구들에게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발생을 알렸다가 공안으로부터 조사를 받았다. 반성문까지 썼다고 한다. 그 역시 환자로부터 감염돼 사망했다.

그의 어머니는 “과거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아들의 결정을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교수들은 성명을 내 “리원량의 이야기를 유언비어로 여기지 않고 시민들이 진실을 이야기할 수 있었다면 지금 같은 국가적 재난은 없었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위기는 불통(不通)에서 온다. 박근혜 대통령은 ‘불통’으로 비판받았다. 장관조차 대통령과 독대할 수 없었다. 기자가 이 문제를 지적하자 그는 장관들을 돌아보며 “독대가 필요합니까”라고 물었다. 그 빈틈에 최순실이 끼어들었다.

집권당, 정부와도 소통하지 못하는 대통령…. 그 문제가 터지기 전 이미 여러 차례 경고가 있었다. ‘정윤회 사건’이란 이름으로 민정수석실 내에서 이른바 박관천 보고서가 만들어졌지만 묵살됐다. 그 보고서를 만든 사람만 쫓겨났다. 이석수 청와대 특별감찰관이 우병우 민정수석과 최순실의 재단 문제를 조사했지만 그 역시 비밀 누설 혐의로 쫓겨났다.

촛불을 든 사람마다 원하는 바가 다 다를 수 있다. 그렇지만 백만 인파를 모아들인 가장 큰 공감대는 낡은 체제, 반민주적·제왕적 통치 행위를 바꾸어야 한다는 갈망이었다.

그 여망을 안고 새 정부가 출범한지 4년차다. 그런데 뭐가 달라졌나? 와이셔츠를 입고, 종이 커피잔을 들고 참모들과 청와대 뜰을 거니는 사진을 한번 보여주면 소통이 이루어지나. 1년에 한 번 기자들 질문에 답하는 건 박정희 시대보다 나은 게 없다. 장관이 소신, 책임행정을 하고 있나. ‘청와대 정부’라는 말이 왜 나오나. 직급에 상관없는 실세가 아직도 설치고 있는 것 아닌가.

검찰 공소장에 드러난 청와대의 선거개입은 심각하다. 대통령 친구를 울산시장으로 만들기 위해 대통령 비서실이 모두 나섰다. 자유당 시절로 돌아간 건지 혼란스럽다. 정부 예산을 퍼붓는 것이 고무신·막걸리 선거보다 더 나은가. 공직이 후보 사퇴 대가라니 말이 되는 일인가.

공소장은 “청와대 비서실의 역할은 엄격히 제한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순간에 민주주의의 근본을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혐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박근혜 정부의 직권 남용이 무색하다. 이명박 정부의 민간인 사찰은 유치한 수준이다. 경찰을 동원해 정적(政敵)을 수사하고, 혐의를 퍼뜨려 낙선시켰다. 민주주의의 기본인 선거를 조작한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소추당한 건 “민주당을 뽑으면 한나라당을 도와주는 것”이란 발언 때문이다. 비교가 안 된다.

물론 아직은 공소장 내용이다. 재판을 받아봐야 한다. 그렇지만 이 정도면 대통령이 직접 국민에게 해명해야 도리 아닌가. 검찰과 어떤 마찰을 빚었건, 야당과 어떤 공방을 벌였건 그것과는 다른 문제다. 적어도 국민에게는 성실히 의심을 해명하는 게 국민이 뽑아준 대통령의 의무다.

공정한 수사도 보장해야 한다. 오얏나무 이야기까지 할 것도 없다. 집권 세력을 수사하는 검사는 모두 지방으로 쫓아냈다. 그들이 바로 ‘리원량’이고, 박관천이고, 이석수가 아닌가. 수사를 마무리하게 해주지 않으면 의혹을 풀 수 없다. 국민이 바보가 아니다. 무조건 믿으라는 건가.

촛불은 제도에 의한 통치를 만들자는 것이다. 집권당보다 정부, 정부보다 비서실, 비서실보다 비선에 기댄 기형적 시스템을 버리자는 것이다. ‘촛불정부’를 자처한 이 정부는 ‘의리’를 내세웠다. ‘대깨문’이 뭔가. ‘대가리가 깨져도 문재인’이라니…. 논리도 상식도 다 버리고, 조폭 같은 의리만 내세운다. 조금만 다른 목소리를 내도 ‘배신’ 프레임을 씌운다. ‘문팬’들만이 아니다. 정치권도 눈치를 보고, 거기에 휘둘린다.

문재인 대통령은 왜 대통령이 됐을까.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꿈이 있었다고 믿는다. 벌써 1008일이 지났다. ‘나라다운 나라’가 되고 있는가. 시행착오가 있다면 귀를 열어야 한다. 고집이 좋은 결과를 만들지 않는다. 기회는 평등한가. 과정은 공정한가. 결과는 정의로운가. 조국으로 모두 무너졌다. 가까운 사람부터 쳐야 원칙이 선다.

조선시대 당파 간에는 유치한 다툼을 벌였다. 상대 당파가 제사상에 과일을 홀수로 놓으면 우리는 짝수로 놓고, 상대가 생선 머리를 왼쪽으로 놓으면, 우리는 오른쪽에 놓았다. 같은 편은 무조건 비호했다. 옳고 그름이 편가름에 있는데, 조정 논의가 제대로 이뤄질 리 없다.

나를 찍지 않은 국민도 끌어안겠다는 다짐은 언제 적 한 것인가. 그나마 집권당이 버티는 건 야당 덕분이다. 아직 탄핵 문제도 소화하지 못했다. 야당 역시 의리와 배신의 논리 밖에 없다. 조그만 떡 하나 놓고 서로 더 차지하려는 욕심들이다. 이러려고 촛불을 들었나. 또 다시 정치권에 속아야 하나. 국민을 부끄럽게는 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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