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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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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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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명 / 논설위원

   
 

워터게이트 사건을 파헤쳐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을 끌어내린 워싱턴포스트의 두 기자 칼 번스틴과 밥 우드워드는 취재 후기에 해당하는 글을 1974년 단행본으로 펴냈다. 제목이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All The President`s Men)`이다. 몇 년 전 이 책 40주년판을 구해 읽었다. 스릴러 소설 같은 재미가 있다.

그런데 책 제목이 왜 그럴까. A4 용지 71장 분량의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 공소장을 읽고 나자 이 책 제목의 의미가 무슨 깨우침처럼 자명하게 다가왔다. `(미국 헌법과 민주주의를 유린한 사람들) 모두가 (헌법과 민주주의를 앞장서 수호해야 할) 대통령과 그의 사람들`이란 역설이 담겨 있다. 약 50년이 지나 한국 검찰 공소장에서 그 비슷한 역설을 읽는다.

공소장은 도입부에서 공무원의 선거 중립의무를 `헌법가치`로 규정한 뒤 "대통령이나 대통령의 업무를 보좌하는 공무원에게는 다른 공무원보다도 선거에서의 정치적 중립성이 더욱 특별히 요구된다"고 부연했다.

이후 전개되는 피고인 13명에 대한 공소사실은 2018년 지방선거 당시 이 헌법가치와 `특별한` 중립의무가 어떻게 무너졌는지 상술하고 있다. 피고인 중 한병도 전 정무수석,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 박형철 전 반부패비서관, 그 외 2명의 행정관 등 5명이 청와대 소속이다. 민정·정무수석실 등 청와대 비서실 8곳이 후보 회유, 하명 수사 지시, 공약 수립 지원 등에 동원됐다. 다른 그 누가 아닌 대통령의 사람들이 헌법과 민주주의를 거스른 범죄의 피고인이 됐다.

40주년판 후기에서 우드워드 등은 닉슨의 `5가지 전쟁`이 워터게이트와 자신의 몰락을 불렀다고 평가했다. 닉슨은 베트남전 반대 운동, 비우호적 언론, 그리고 야당(민주당)을 상대로 동시에 3개 전쟁을 벌였다. 편집증 성향의 그는 모든 백악관 회의를 녹음하게 했다. 그중엔 이런 발언도 있다. "언론은 적이야. 한잔 사면서 잘해주는 척해. 하지만 진짜 잘해주지는 마. 녀석들은 항상 우리 급소를 노린다고." 네 번째 전쟁 상대는 사법 시스템이었다.

워터게이트가 터지고 며칠 후 대통령 비서실장 밥 홀더먼이 닉슨에게 보고한다. "연방수사국(FBI)은 우리 통제권 밖에 있고 그들이 자금 추적에 들어가면 뭐가 나올지 모릅니다." 홀더먼은 국가안보 기밀을 내세워 FBI 수사를 방해할 것과 이를 위해 중앙정보국(CIA)을 동원하는 방안을 닉슨에게 제안했다. 대통령은 당장 CIA 국장에게 전화를 걸라고 지시했다. 2년 후 이 녹음이 공개되고 나흘 만에 닉슨은 사임했다.

닉슨은 역사를 상대로도 싸웠다. 사임 후 죽을 때까지 20년간 회고록과 인터뷰를 통해 워터게이트 스캔들 의미를 축소하고 본인 책임을 부인하는 데 진력했다. 워터게이트 당시 원로 상원의원이었던 샘 어빈은 이렇게 말했다. "닉슨과 측근들은 권력욕이 강했다. 그 욕망이 윤리와 법률에 눈감게 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정치란 결국 인간의 덕성 문제인데 말이다."

닉슨처럼 문재인 정권도 여러 개 전쟁을 치러왔다. 지난 정권, 그리고 야당과 싸우느라 울산 같은 무리수가 나왔을 것이다. 무리는 무리를 낳는다. 조국 사태를 기점으로 전선은 검찰이라는 사법 시스템으로 옮겨갔다. 청와대는 검찰 수사를 못 견뎌했고 담당 검사들을 갈아치웠다. 닉슨이 그랬다. 야당 선거사무실 도청 사건에서 출발했던 워터게이트는 백악관이 진실을 은폐하면서 미국 역사상 최대 정치 스캔들로 비화했다.

연초 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퇴임 뒤엔 잊히고 싶다"고 했다. 검찰 공소장을 보면 이 바람은 이뤄지기 어려울 것 같다.

그러기엔 전쟁의 판이 너무 커졌다. 무려 민주주의와 법치와 헌법이 걸린 전쟁이다. 종국엔 역사와도 싸울 것이다. 닉슨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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