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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우물에 독을 풀었나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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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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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효정 / 대학은 누구의 것인가 저자

   
 

“저기요” 하고 부르면 열에 여덟은 성난 얼굴로 돌아본다는 곳, 한국 사회가 그렇다고 한다. 조금만 건드려도 어디서든 빵하고 터져 나올 만큼, 그만큼 억압된 것이 있다는 뜻이다. 이번에는 바이러스가 우리를 불렀다. 누가 감염된 자인가? 코로나19 사태가 터지고 바이러스보다 빠르게 확산된 혐오와 불안을 보면서 계속 떠오르던 말이 있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 간토(關東)대지진 당시 일본에서 분노의 표적이 되었던 그 조선인은, 중국인이 되었고, 다시 대구 사람들이 되고, 이제 ‘신천지’가 되고 있다. 그들을 격리하고 제거하면 우리 모두 안전해질 수 있을까?

위험한 존재를 ‘안전한 공간, 건강한 사회’로부터 제거하는 방식은 어디서나 비슷하다. 바이러스를 퇴치하는 방식은 소독과 방역, 의심과 격리, 배제와 추방이다. 그들은 흑인이거나, 무슬림일 수도 있고, 중국인이거나 한국인일 수도 있다. 독일의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코로나19의 세계적 전파를 알리면서 마스크를 쓴 사진과 함께 ‘메이드 인 차이나’를 표제어로 내걸었다. 미국의 CNN뉴스는 중국 소식을 전하면서 한복 입고 마스크 쓴 한국인들을 자료화면으로 내보냈다. 극우정치의 공통 문법인 인종주의가 전 세계적으로 발화하는 것은 불길한 신호다. ‘유색인종’은 난민이나 트랜스젠더가 될 수도 있고, 반지하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이나, 폐쇄병동에 갇힌 정신장애인이 될 수도 있다. 전염병 이전에 이미 기피되었던 존재들은 다시 병리학의 법정으로 불려 나온다.

내가 사는 강원도 접경지역에서는 아프리카돼지열병 이후 멧돼지 포획 작전이 계속되고 있다. 어느 날 마을 전체가 멧돼지를 막는 철조망으로 둘러싸였다. 포수들이 산에 들어갈 때는 인근 주민들에게 입산금지를 알리는 문자가 온다. 그럴 때 멧돼지의 심정이 되곤 한다. 멧돼지는 열병과도 싸우고 사냥꾼과도 싸워야 한다. 멧돼지를 막으면 돼지들이 안전해질까? 돼지들에게 살처분과 상품화를 위해 도살당하는 것 중 어느 쪽이 안전한 것일까?

2018년 한 해 동안 노동현장의 사고 사망자 수는 971명, 산재로 죽은 노동자는 2142명, 자살로 숨진 사람은 1만3670명이었다.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의 노동현장은 바이러스 감염 지역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 그래도 그건 불안하지 않았다. 남의 일이었으니까. 작년 한 해 한국에서 도축된 돼지는 약 1800만마리, 닭은 무려 10억마리에 이른다. 그건 무섭지 않았다. 먹히는 자가 아니라 먹는 자니까.

하지만 아무리 모르는 척해도, 사람들은 모르지 않는다. 이 세계가 켜켜이 쌓이는 죽음 위에서 만들어진 풍요로운 세계라는 것을. 누적된 불안이 임계점에 다다르면 미칠 듯이 터져 나와 때릴 곳을 찾기 마련이다. 광기는 언제나 약한 곳을 향해 터져나간다. 그 마지막에 파시즘과 전쟁이 기다리고 있다. 그걸 막는 길은 마땅히 증오해야 할 대상을 향해 분노의 방향을 돌리는 것이다. 그때 정치의 물음이 필요하다. 왜 가난한 사람들은 정치가 아니라 종교에서 구원을 찾고, 왜 장애인과 노약자들이 폐쇄병동에서 일생을 보내야 하는가?

 

병든 닭을 10억마리씩 소비하고, 매년 500만마리의 가축을 살처분하는 사회가 건강할 리 없다. 재난이 그 일상을 중단시키면 사람들은 비로소 묻게 된다. 우리가 얼마나 연결되어 있는 존재인지,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이 생겼는지. 이 재난은 함께 살자는 물음을 가지고 돌아오는 추방자들의 귀환이자, 일상을 중단시키는 ‘자연의 파업’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 물음에 답하지 않는다면, 자연은 계속 더 강력한 경고를 보낼 것이다. 우리 공동의 세계에 풀려진 독은 무엇이며, 어디서 온 것인가? 과잉생산, 과잉소비, 거대한 낭비 위에 굴러가는 성장의 경제를 멈추지 않으면 재난도 멈추지 않는다. 우리는 자본주의에 너무 오래 감염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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