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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살게 된 한국이 왜 ‘헬조선’인가?
김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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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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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오 / 커뮤니케이션학 박사, 전 국립호주한국학연구소 수석연구원]

   
 

호주의 국영라디오(ABC Radio National)가 “한국인은 왜 자기 나라를 지옥이라고 부르는가?라는 질문으로 말문을 연 30분 분량의 특집 방송을 2월 1일자로 내 보냈다. 마이크 월리엄스(Mike Williams) 기자가 한국에 나가 현장 취재한 보도다. 날짜가 조금 지났으나 하루 이틀로 끝나는 시사 이슈가 아니므로 늦지 않다고 생각한다. 현지 거주자의 입장에서 단상(斷想)을 적어 보고자 한다.

청소년 세대가 자기 나라를 비하하느라 쉽게 쓰는 대명사인 ‘헬조선'이란 말을 모르는 한인은 드물 것이다. 방송 내용에서도 잘 묘사된 대로 경제적 불평등, 청년 실업, 1등만 생존 가능한 끝없는 경쟁, 연애, 결혼, 출산을 모두 포기한 절망적인 ‘3포 세대’ 등으로 특징 지어지는 잘 사는 나라의 어두운 속사정이다.

사람들은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을 보게 되어 있다. 잘 나가는 강남의 부자들에게 ‘헬조선’이란 허구다. 그들은 외국 언론이 한국을 시기해서 이런 보도를 한다고 말하기 쉽다. 그러나 내가 이론과 실제를 해봐서 아는데 영미 언론은 자기 나라든 외국에 대하여서든 비판적인 보도에 더 관심을 쏟는다. 잘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못 사는 사람들을 대변하는 게 언론의 역할이라고 믿는 것이다.

해외 한인들에게 한국은 저 멀리 떨어져 있지만 고국이다. 그렇더라도 그 사회의 어려움은 거기에 사는 한국인, 말하자면 우리의 부모와 형제자매들만이 알면 되고 그들만의 노력으로 좋아질 일이 아니다. 그 뿌리는 한민족의 고질적 행태에 있어 그 이슈는 민족이라는 총체적 틀 안에서 이해되고 논의되어야 할 국가적 과제다.

더욱 모두가 목전의 이해에 파묻혀 눈이 멀기 쉬운 고국의 혼란상을 생각할 때, 밖에서 사는 동포들의 참신한 시각과 모범으로 기여가 필요한 때다. 하지만 남한 인구의 얼추 15%를 차지하는 디아스포라지만 그 사회가 그런 역할을 할만한 지적 구심점과 힘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회의적이 아닐 수 없다. 그런 복잡하고 방대한 문제의 논의는 다음 기회에 미루기로 하고 짧게 몇 가지만 적어 본다. 그래서 단상이다.

모든 사회 문제에는 과학적 원인이 있기 마련이다. 그 원인을 찾아야 단기적이든 장기적이든 해결책이 나온다. 그게 사회과학의 존재 이유다. ‘헬조선’ 신드롬과 같은 심각한 문제라면 더 그렇다. ‘시간이 해결하겠지요’라고 말하는 건 대안이 아니다.

그런데도 한국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공갈에 떨고 안보와 경제 논리에 밀려 북한 전문가와 경제학자들의 목소리만 들리지, 사회를 좀 먹는 악재들을 깊이 연구하고 널리 알리는 인문사회과학자가 전혀 없어 보인다. 요즘은 코로나 바이러스 공포로 아예 정부나 국민의 관심일 수 밖에 없다.

앞에서 행태란 말을 이미 썼지만, 그 악재는 바로 사람이다. 나는 최근 <선진국이 되겠다면 선진 매너와 에티켓부터 배워야지>라는 이름의 책을 출간을 앞두고 있다. 사회 평론이 아니고 평생의 반을 해외에서 보낸 한 원로의 현장 수기다. 왜 뜬금없이 자기 책 홍보를 하나? 그건 아니다. 실은 ‘이 책의 후기로 쓴 내용이 ‘헬조선’ 대안 연구에 한 가지 단서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미래지향적?

후기는 오래 전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추모사로서 혹독한 가난 속에서 어머니의 뼈를 깎는 회생으로 대학을 마쳤으나 그런 분의 기대에 맞게 ‘높은 자리’를 못 한 무능한 불효자(?) 이야기와 그간의 우리 사회의 잘 못 된 실상을 적은 것이다.

우리의 위정자들은 미래지향적이란 그럴듯한 말로 불편한 과거에 대하여는 덮자고 말한다. 그러나 대부분 우리의 사회 문제는 과거를 돌아보지 않고는 문제 해결을 위한 혜안이 나올 수 없다.

1950-60년대의 한국은 ‘보릿고개’라는 대명사로 불리듯 지독하게 가난했었다. 어감이 안 좋아 덜 쓰지만 그 때의 빈곤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또 다른 대명사는 미군 기지촌에 구름과 같이 모여든 일명 ‘양색시’ 매춘부들이다. 어디 기지촌뿐이 아니다. 전국적으로 널려 있었다. 대학 1년 때인 1954년에는 안암동 대학교 정문 바로 앞 양가집에도 그런 여성들을 들여 놓아 주말 미군 트럭이 군인들을 싣고 들어 닥치면 이불을 옮기느라 들고 여기 저기 뛰어 다니는 가정부들을 볼 수 있었다.

1967년 보건사회부를 출입하면서 자주 만났던 여성인 주정일 부녀아동국장의 1차 걱정이 이것이었는데, 그때 현재도 공식 숫자는 적어도 1백만 명이라고 밝혔었다.왜 기억하기도 싫은 과거를 들추는가? 이들도 모두 가정의 귀여운 딸이고, 누나며, 동생이며, 손녀다. 얼마나 살기가 어려웠으면 이들이 가출하여 이런 지옥에 가도록 내버려 두었을까?

그보다 더 중요한 의문은 이렇게 처참한 세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지금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이다. 두 가지 시나리오 가능하다. 하나는 아픈 과거를 거울삼아 밝은 사회를 위하여 걱정하는 경우고, 다른 하나는 그 가난과 불행의 원수를 갚겠다며 얼마고 더 갖고, 얼마고 개인의 이익과 안위를 누리겠다는 경우다. 후자가 지금의 현실이고 그래서 우리가 ‘헬조선’을 또 만들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가설이다.

핵심은 우리 민족의 유달리 강한 탐욕이다. 생계조차 꾸리지 못하는 층을 나무라고 싶지는 않다. 출세했다는 고위층, 성공했다는 대기업, 그만 하면 먹고 사는 건 근심 안 해도 되는 일반 시민들을 보자, 국가에 이렇다 할 기여 없이 3선, 4선 국회의원을 지내고 나서도 더 하고 싶어 꼼수를 일삼는 정치인, 작은 기업이라도 건실하게 키우기보다 재벌이 되고자 연줄을 찾아 뛰어 다니는 기업가, 부동산 투기 현장으로 역시 구름과 같이 모여드는 소시민들을 보면 ‘헬조선’은 영원히 갈 것 같아 보인다. 기자의 말대로 그 속에서 희망의 싹이 트일까? ‘시간이 해결할 겁니다’와 같은 안일한 생각이거나 외국 사회에 대한 예우로 한 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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