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창수/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일찍이 해럴드 니컬슨은 `민주주의 외교는 무책임, 무지, 선입견 등의 감정이 합리적인 외교를 방해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고 지적하였다. 최근 한일관계의 상황은 니컬슨이 경고했던 `외교의 정치화`에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번 한국에 대한 일본의 입국제한 조치는 아베 신조 총리가 정치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서는 그 어떤 것도 불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최근까지 아베 총리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방일을 추진하기 위해 중국인 입국제한 조치를 시행하지 않았다.

아베 총리는 벚꽃을 보는 모임(벚꽃회) 스캔들 등으로 정치적인 위기에 몰리자 그동안 주저했던 한중 입국제한 조치라는 독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것은 코로나19의 위기관리에 실패했다는 여론의 비난과 정권의 구심력 저하를 두려워한 아베 총리가 정치적 승부수를 던진 것이었다.

외교가 정치적 희생물이 된 것이다. 게다가 한국 입장에서는 아베 총리가 중국과는 사전 조율을 하면서도 한국을 전혀 배려하지 않았다는 것에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2002년 월드컵 공동개최를 계기로 시작되어 한일관계 발전에 기여한 상호 비자면제 조치조차 아베 총리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헌신짝처럼 버렸다.게다가 무비자 입국의 중지로 발생할 악영향에 대한 우려는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한국의 대응 또한 `외교의 정치화`의 모습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문재인정부는 코로나19에 민주적이고 개방적이며 투명하게 대처한다고 자처하면서 중국에 대해서는 입국제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런 문재인정부가 일본에만은 자신의 원칙조차 내팽개치면서 감정을 드러낸 것이다. 일본에 비판적인 지지 세력만을 생각하여 취한 조치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코로나19 사태로 100개 넘는 국가가 한국에 빗장을 걸고 있는 현실에서 유독 일본에만 대응조치를 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특히 아무런 사전 설명 없이 한국인을 격리 조치한 중국에 대해서는 문재인정부는 항의 한번 제대로 못했다. 누가 보더라도 `힘센 중국에는 할 말을 못하다가 만만한 상대(일본)에 화풀이하는 꼴`이 된 것이다.

한일 양 정상은 지난해 12월에 서로 대화하고 협력하겠다고 선언을 하면서도 국내 정치를 우선하여 상대방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민낯을 이번 조치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이 과정에서 양국 국민들은 피해를 입고 고통만 받건만, 정작 양국 정부는 감정에 치우쳐 이에 대한 고려는 애당초 하지 않았다.

또한 문재인 정부는 일본 외교의 한계를 국제사회에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지만,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차라리 한국이 중국처럼 도쿄올림픽을 위한 일본 입장을 이해하면서 코로나19 협력 체제를 주장했다면 국제사회는 한국 외교에 갈채를 보냈을 것이 틀림없다. 일본 국민들 또한 한국을 새롭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한일이 협력하였다면 한·중·일 협력의 꽃을 피울 수 있었건만, 문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서로 이웃집 불구경하듯이 한 것이다.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19에 대한 동북아 국가들의 협력은 필수적이라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그 예로 유럽에 가면 중국, 한국, 일본은 같은 취급을 당하면서 경원시되는 것을 보더라도 한·중·일 삼국이 힘을 합쳐 코로나19에 대응을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명제가 되고 있다. 넓은 시야에서 한일관계를 고려하면서 동북아 협력을 이끌어내는 실용 외교가 필요한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