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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만이 바꿀 수 있는 ‘전근대적 삶’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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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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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수 /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

“인구를 줄이려면 사망률을 높여야 하고, 그러려면 빈민에게 청결교육을 하지 말고, 그들이 사는 도시의 골목길을 좁게 만들고, 집집마다 사람들이 북적대게 해 전염병이 돌게 해야 한다.” 맬서스 목사가 <인구론>에서 퍼부은 악담이다. ‘코로나19’ 상황에선 그의 말을 뒤집으면 바로 질병관리본부의 대책이 된다. 청결을 유지하고, 사람이 북적대지 않게 하는 것, 곧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하면 된다.

한국인은 연고주의와 집단주의, 체면의식이 유난히 강해 전염병을 다스리는 데 아주 취약하다. ‘사회적 거리 두기’는 이런 문화와 관습, 의식구조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까? 국민의 삶을 옥죄는 전염병이 어쩌면 우리의 전근대적 삶을 성찰하고 바꾸는 계기를 만들어줄지 모른다는 기대감이 있다.

결혼문화: 한 동창생은 3월의 딸 결혼식을 6월로 연기했다. 그는 이참에 가까운 친지만 모시고 ‘작은 결혼식’으로 치르고 싶었는데, 위약금 때문에 예식장 결혼식을 할 수밖에 없다고 푸념했다. 잔치는 원래 베푸는 자리였는데 과시용이 돼 버렸다. 한국은 세계에서 청첩장을 많이 보내고 결혼비용을 많이 지출하는 나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것이다. 세계에서 신혼여행 가는 거리가 제일 먼 나라로 조사되기도 했다.

장례문화: 정치부 기자 출신 후배 문상을 하러 이대목동병원에 갔더니 “조문객이 준 것 같다”는데도 정치인 등 꽤 많은 이들이 왔다. 병원 곳곳에 ‘문병을 삼가달라’는 공지문이 붙어 있었지만 ‘문상을 삼가달라’는 건 없었다.

회식문화: 한국 노동자는 일과 후에도 회식이 있는 날은 주야간 근무를 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2·3차로 이어지는 노래방문화는 술과 노래를 잘 못하는 이들에게는 고역이다. 직장이 서울이면 출퇴근에도 두세 시간 걸리니 가족과 어울리거나 독서와 취미생활을 할 여유가 거의 없다.

예배문화: 유럽에 6년간 체류할 때 놀란 것은 성당과 교회 어디를 가봐도 많아야 100여명이고 수십명 신도가 예배를 보는 광경이었다. 세계문화유산이 된 곳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신도 수 기준 세계 최대 교회는 56만명의 순복음교회를 필두로 줄줄이 서울에 있다. 성경에도 예수는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했는데, 우리 개신교는 거대한 교회를 짓고 메가이벤트처럼 예배를 진행한다. 국민은 종교집회의 한시적 전면금지까지 76%가 찬성하는데, 연세중앙교회와 전광훈 목사의 사랑제일교회 등 서울에 있는 교회 33%는 교회당 예배를 강행했고, 중단했던 광림교회마저 15일 재개했다. 결국 성남 은혜의강교회는 목사 부부와 신도 51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신천지교회에 이어 개신교회들이 바이러스 배양접시가 되고 있다. 신천지는 교주의 영생론이나 포교방식 등에 문제가 많지만, 그런 ‘이단’에 청년들이 왜 의탁하는지 기성 교회는 성찰할 필요가 있다.

선거문화 : 우리 선거제도는 대중 동원 능력이 월등한 거대 정당에 의석을 몰아준다. 정책보다는 이미지 정치에 치중하느라 ‘서민 코스프레’가 선거운동의 단골 메뉴다. ‘알바생’을 동원해 거리에서 소음에 가까운 음악을 틀고 춤을 추며 세 과시를 하는 것이 우리 특유의 선거문화가 됐다. 영국 케임브리지에 살 때 시의원 후보가 혼자 자전거를 타고 집집이 전단을 돌리는 걸 보고 감동한 적이 있다. 돈 안 드는 정치의 전형이 거기 있었다.

일상생활은 물론이고 결혼과 장례에서 종교와 정치에 이르기까지 우리 몸에 밴 관습과 문화는 바이러스가 창궐할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한다. 자연 파괴와 생태계 교란으로 신종 전염병이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다면 전근대적 삶의 방식도 바꿀 때가 되지 않았을까?

그렇다고 방역의 수단인 ‘사회적 거리 두기’가 자칫 ‘사회적 연대’나 공동체정신의 약화로 이어져서는 안된다. 빈부·지역 격차와 세대·성별·종교 갈등이 극심한 사회를 만들어 인간이 서로를 배제하고 혐오하는 것은 바이러스에 패하는 길이다. 전국의 의료진이 대구로 달려가고, 광주의 병원이 대구의 확진자들을 수용하고, 대기업이 연수원을 치료센터로 내주는 모습을 보면, 배제가 아닌 배려가 최고의 백신임을 느끼게 한다. 거리 두기와 연대는 둘 다 ‘배려’라는 점에서 뿌리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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