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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가 기회였던 한국 기업들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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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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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임숙 / 산업1부장

위기가 지나면 기회가 온다는 믿음… 괴물 같은 창의성으로 위기 돌파하길

익숙한 고통이라 해서 덜 아픈 건 아니다. 오히려 다음 단계의 통증을 알기에 더 아플 수 있다.

1998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큰 고통을 겪은 한국 사회는 이번 코로나19로 인한 위기를 더 큰 공포로 느낄 수밖에 없다. 당시 얼마나 많은 크고 작은 기업들이 쓰러졌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실직했으며 자산가치 급락으로 인한 고통을 겪었던가.

이번에도 세계적으로 자산가치 급락의 흐름이 이미 시작됐고 대량 실직의 공포가 떠다니고 있다. ‘아직은 예고편에 불과하다’ ‘일자리 감소가 대공황에 준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항공, 정유, 호텔, 여행, 외식, 공연업계가 먼저 타격을 입기 시작했다. 수출 기업들도 차례로 영향권 안에 들어갈 것이다.

이럴 때 과거의 사례로 희망을 생각해 본다. 단단하다고 생각했던 기반이 다 무너질 듯한 위기마다 괴물 같은 창의성으로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단단해지고 세계 시장에서 비약적으로 도약했던 한국 기업들 말이다.

지금은 명실상부한 글로벌 기업인 현대자동차는 사실 외환위기 이전에는 대우자동차, 기아자동차, 쌍용자동차와 함께 한국이라는 작은 내수시장을 놓고 박 터지게 싸우던 내수용 기업이었다. 그러던 현대차가 세계 자동차 메이커 10위권에 이름을 올린 게 외환위기를 넘긴 뒤인 2000년이었고 이후 5대 자동차 메이커가 된 해가 글로벌 금융위기를 지난 2011년이었다.

현대차의 도약은 1998년 기아차 인수에 성공했던 게 계기가 됐다. 여기다 다음 해 미국 시장에서 엔진 및 동력계통 부품에 대해 ‘10년 10만 마일 보증’을 시작한 게 결정적이었다. 당시 경쟁사들은 대부분 ‘2년 2만4000마일 보증’을 내세웠으니 얼마나 무모한 시도였겠는가. 현대차는 품질에 비해 브랜드 가치가 낮으니 파격적 행보를 보일 수밖에 없었고 이게 먹혀 판매량을 늘려갔다. “미친 짓”이라고 비웃었던 도요타, 혼다 같은 경쟁업체들이 나중엔 따라 했다. 현대차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미국 자동차 수요가 급감하자 구매 후 1년 안에 실직하면 차를 되사주는 ‘어슈어런스 프로그램’을 내놓았다.

현대차가 위기마다 이런 선택을 한 이유는 2016년 러시아를 방문한 정몽구 회장의 말로 짐작해볼 수 있다. “기회는 다시 온다.” 당시에도 루블화 폭락 등으로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이 러시아에서 철수하던 때였다.

삼성전자는 또 어떤가. 1993년부터 D램을 중심으로 한 메모리반도체 1위가 된 삼성전자는 외환위기 때 심각한 재무위기를 겪다 구조조정을 통해 살아난 뒤 2002년부터는 낸드플래시에서도 세계 1위가 됐다. 이건희 회장이 “앞으론 디지털 융복합 시대”라며 세트보다는 부품에서 기회를 찾으라 한 혜안이 바탕이 됐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지난 뒤인 2012년부터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부문에서도 세계 1위를 유지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등 한국의 조선산업이 2000년부터 수주량, 건조량 등 모든 분야에서 세계 1위를 휩쓸게 된 것도 우연이 아니다.

코로나19는 기존 질서를 통째로 바꿔 놓을 것이다. 언택트 소비 사회, 재택근무는 일시적 현상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데이터센터 수요가 급증할 것이며 5세대 이동통신(5G)과 인공지능이 결합된 다양한 형태의 소비가 촉진될 것이다. 한국은 이미 5G 강국에다 변신에 능한 ‘빨리빨리’ DNA를 가진 나라다. 취약한 부품산업을 도와 산업 생태계가 깨지지 않도록 정부의 적절한 지원이 있다면 그동안 보여준 창의성이 이번에도 발휘되지 않겠는가. 누가 이번엔 퀀텀점프를 이뤄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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