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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봄
미주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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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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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선 / 수필가

요즈음 우리는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한 두려움과 마주하고 있다. 갑자기 암전이라도 된 것처럼 도시의 기능이 한꺼번에 멈추었고, 우리는 숨죽인 채 지켜볼 뿐이다.

동네 상가들은 이미 며칠 째 셔터를 내린 채 굳게 닫혀 있고, 가끔씩 눈에 띄는 행인들은 발걸음을 재촉하며 총총히 사라진다. 간혹 ‘오픈(OPEN)’ 사인을 내건 가게가 보였으나 표정 없는 얼굴로 손님을 기다리는 주인의 모습은 굳게 닫힌 상점을 보는 것만큼이나 안쓰럽다. 사람들의 불안한 모습과 적막감마저 감도는 거리의 풍경을 보며 그동안 누렸던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했었는지 새삼 느낀다.

불과 두어 달 전에 이탈리아를 여행 했었다. 아직 사진 정리도 채 하지 못했는데 가족사진의 배경이 되어주던 아름다운 로마의 거리는 슬픔과 탄식으로 가득 찬 도시가 되어 긴급 뉴스의 무대가 되어 있다.

관중이 없는 경기가 중계되는 게 낯설었으나 이제는 그나마 더 이상 열리지 않게 되었고, 크루즈 승객들이 하선하지 못한 채 바다 한가운데 섬처럼 떠있는 뉴스도 더 이상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않는다. 인근의 크고 작은 마켓의 화장지나 냉동식품 등이 놓여 있던 진열대는 오랫동안 비워진 채 있었고, 다시 쉽게 채워지지 않았다.

사람들 사이로 파고든 공포는 코로나바이러스라는 신종 전염병 보다 더 빠르고 무섭게 퍼져 나갔다. 이웃과의 문이 닫히고, 국가와 국가 간의 교류가 막히는 표면적이거나 물리적인 단절보다 사람들은 스스로 유폐 되었고 더 견고한 벽을 쌓았다.

때때로 벽 사이로 소문이 묻어 나오면 사람들은 서둘러 더욱 굳건한 벽을 쌓았고, 다시 벽 너머의 소식에 귀를 기울였다. 어쩌면 그래서 미디어나 SNS에 더 집착했는지도 모르겠다.

인터넷이 있어 내가 만날 수 없는 세상을 내가 원하는 순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이 시대에 큰 위로임에 틀림이 없었다. 나는 오늘 하루도 온 세상의 읽을거리들을 찾아 나섰고, 소풍 나온 아이처럼 호기심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루를 온전히 소비했다.

이야기는 끝이 없었고, 다시 그 이야기들은 드라마틱하게 재생산되어 내 눈길을 붙잡았다.

그런데 컴퓨터를 끄고, 화면을 채우던 뉴스들이 사라지고 나니 내가 고약한 덫에 걸려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디어나 인터넷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본 것도 사실이지만 결국은 빅 데이터 안에서 나에게 정형화된 정보를 따라 가느라 마우스를 바쁘게 움직였을 뿐이었다.

결국 나는 코로나바이러스를 피해 현실의 오프라인에서 봉쇄 되었고, 출구로 찾아낸 온라인에서 스스로 갇혀 있었던 것이었다.

 

햇살 좋은 아침이다. 겨우내 삭막하게 비어있던 뒤뜰에도 어느새 봄이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지난해 태풍에 쓰러진 늙은 벗 나무에서도 새순이 올라왔다. 수선화가 수줍게 피었고 목련은 가지마다 꽃봉오리를 품었다. 활짝 핀 노란 개나리가 눈치 없이 화사하다.

한 밤중에 봄을 몽땅 도둑맞은 느낌으로 나무 주위를 맴돈다. 아쉬움을 넘어서 왠지 억울한 느낌이지만 그래도 잠시나마 눈부신 즐거움을 주었으니 지친 마음에 내려준 선물처럼 고맙기도 하다.

당장은 ‘지금’ 의 무게에 짓눌려 ‘내일’의 기쁨을 품을 여유가 없을 지라도 오늘 하루만이라도 겹겹이 격리된 나 자신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 잔인하지만 그래도 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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