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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코로나 확산, 기뻐할 일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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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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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호 / 논설위원

일 경제 멈추면 부품 조달 힘들어
일본계 대부업체, 자금 뺄 수도
한·일 손잡고 코로나 해법 찾아야

   
 

일본 내 코로나19 확진자가 폭증하면서 관련 기사에 반일 댓글이 줄을 잇는다. “지옥문이 열려 1만 명 돌파는 시간문제” “절대 도와줘선 안 된다” 등 섬뜩한 내용 투성이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 560억원 이상의 성금을 모아줬던 한국인의 심성이 어찌 이리 살벌해졌는가.

5년 뒤인 2016년 구마모토에 강진이 덮쳤는데도 일본을 돕자는 목소리가 실종된 적이 있다. 대지진 이후 한·일 간에 불거진 위안부·독도 갈등 탓이었다. 그러자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길원옥 할머니가 성금 130만원을 내며 호소했다. “우리의 상대는 (아베) 정부이지 일본 사람과 싸우는 게 아니니 도와주자”고.

일본 내 코로나 확산을 걱정해야 하는 건 인도주의 때문만은 아니다. 당장 재일교포만 60만 명에 일본 유학생도 1만7000명이다. 한쪽에선 코로나로 일본 경제가 꺼질 경우 한국 측이 반사이익을 볼 거란 기대도 있는 듯하다. 일본 업체가 헤매면 경쟁자인 한국 회사 측 해외 점유율이 높아질 거란 논리다. 하지만 다른 외국 경쟁자들이 득실대는 세상이다. 일본 몫을 죄다 한국 회사들이 챙긴다는 보장이 없다.

도리어 일본의 심각한 침체로 우리 경제가 볼 피해부터 우려하는 게 옳다. 최대 고민은 반도체·디스플레이·화학제품 등 많은 전략 품목들의 핵심 소재·부품들이 여전히 일본제라는 점이다. 부품을 대던 일본 회사들이 멈춰 서면 이들 품목은 물론 수소차·인공지능·배터리 등 미래의 먹거리 산업도 결정적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이뿐 아니다. 서민들의 마지막 자금 조달처인 대부업계에선 일본계 기업들이 큰손이다. 2018년 말 기준으로 17조3000여억원에 달하는 대부업계 대출금 중 근 40%인 6조6000여억원이 일본계였다. 일본의 돈줄이 마르면 이들 대부업체가 국내 자금을 회수해 갈 게 뻔하다. 서민들의 급전 마련 창구마저 막히게 되는 것이다. 코로나 확산에 따른 일본 경제의 마비는 우리에게 희소식이 아닌 비보라는 얘기다.

지난 10일 미국의 저명한 싱크탱크인 외교위원회(CFR)는 눈길을 끄는 좌담회를 열었다. ‘코로나의 지정학:일본과 한국’이란 주제로 두 나라의 대응책과 양국 관계를 살펴보는 자리였다. 이날 가장 가슴에 와 닿은 대목은 “양국이 협력하길 국제사회가 바라고 있다”는 CFR의 실러 스미스 박사의 당부였다. 그는 “한국과 일본은 처음으로 코로나를 접한 민주국가들로 지금도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많은 경험을 쌓은 양국 전문가들이 힘을 합치면 중요한 성과를 낼 수 있다”고 기대했다.

지난 8일 예멘에서는 친이란 성향의 후티 반군과 싸워온 사우디아라비아 중심의 아랍 연합군이 휴전을 선언했다. 코로나 때문이었다. 역사적으로 지독한 전염병이 돌면 하던 전쟁도 멈추는 게 통례였다. 1350년 백년전쟁 중이던 영국과 프랑스가 무기를 내려놓은 것도 페스트 때문이었다.

이렇듯 한국과 일본이 그간 어떤 갈등을 벌여왔든, 지금은 싸움을 멈출 때다. 아베 정부가 초기 대응에 실패해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지만 일본은 분명한 기초의학 선진국이다. 2012년 이래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를 4명이나 배출했다. 지난 10일에는 코로나로 수요가 급증한 ‘에크모’(ECMO·체외막산소공급장치)의 휴대용 모델이 오사카에서 공개됐다.

지금 전 세계의 눈은 코로나를 먼저 겪은 동북아에 쏠리고 있다. 이 지역에서 뭔가 해법을 찾아내 주길 바라는 전 세계인의 기대가 간절하다. 그러니 정부가 앞장서 한·일 전문가들이 협력할 수 있도록 길을 터 줘야 한다.

최근 마다가스카르·카메룬·케냐·필리핀 등에 갇힌 한국 교민들을 데려오기 위해 보낸 전세기에 일본인들을 태워준 것은 대승적으로 잘한 일이다. 무슨 이유에서건 한 해 1000만 명 이상이 오갔던 옆 나라가 전염병 소굴로 변하는 것은 불행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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