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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자들이 해야 할 일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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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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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진 / 정책사회부장

처음 혼자서 5·18민주묘역을 찾았던 날을 기억한다.

   
 

광주에 가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영국으로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였다. 오랫동안 별러왔던 영국 여행이었건만 여행 전체를 통틀어 가장 인상 깊게 남은 것은 노팅힐도, 템스강도 아닌, 기내에서의 무료함을 이겨내기 위해 별 생각 없이 들고 간 책 한 권이었다.

소설가 한강의 <소년이 온다>의 마지막 장을 덮은 순간, 이제 막 출발한 참이었지만 앞으로의 여행 따윈 아무래도 상관없어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불현듯 내가 태어나 한번도 광주에 가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광주에도 가지 않은 내가 런던에 간다니. 때아닌 자책감마저 밀려들었다.

2017년 5월 말, 뒤늦게 찾은 광주는 무척 더웠다. 1980년 5월의 광주도 그렇게 더웠다고 한다. ‘518버스’를 타고 도착한 국립5·18민주묘지는 생각보다 한산했다. 군데군데 놓인 꽃다발들은 봄과 어울리지 않는 뙤약볕 아래 벌써부터 조금씩 말라가고 있었다.

각 묘지 앞에 세워진 묘비의 앞면에는 안장된 분의 이름이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유족들이 남긴 비문이 새겨져 있다. 전할 수 없지만 전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다 보니, 작은 글씨로 빼곡히 채워 여백을 찾기 힘든 묘비가 많았다.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 돌아올 줄 알고 그렇게도 애타게 기다렸는데 정말 갔느냐, 막둥아. 지금 어디에 있느냐. 어머니 부르며 오는 것만 같구나. 못다 핀 인생, 하늘나라에 가서 장미꽃처럼 영원히 이여다오.” 돌아오지 않을 걸 알면서도 여전히 자식을 기다리는 부모의 마음.

“전두환이가 우리 대학생들 다 죽인다고 집을 나와 시민군에 가입해서 죽을 때까지 싸워야 한다고 5월18일 나가서 5월27일까지 열심히 용감히 싸웠음.” 죽은 이의 희생이 얼마나 의로웠는지 기리고 싶은 가족의 마음.

“가난하고 세상 보는 눈은 좁지만 참되고 바르게 살리라.” 떠나간 이의 유지를 받들어 살겠다는 굳은 각오.

“가는 이 말이 없고 사는 이 고통과 번뇌로 만신창이가 되었네. 나 또한 지쳐 쉬고 싶노라.”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후 평생 회한 속에 살아온 남겨진 자의 슬픔….

그 어느 것 하나 쉽게 발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비문들을 읽고 있노라니, 11살 어린 나이에 계엄군의 총에 맞아 숨진 전재수군의 묘비가 궁금해졌다. 1980년 5월24일 동네 뒷산에서 친구들과 놀고 있었던 전군은 총소리에 놀라 뿔뿔이 도망치던 중 고무신이 벗겨져 주으러 돌아섰다가 총에 맞았다. 사인은 우측 늑골 하부에서 좌측 늑골 하부로 관통 총상. 전군이 겁에 질린 상황에서도 끝까지 챙겨가려 했던 고무신은 며칠 전 부모님이 주신 생일선물이었다. 그 가족들이 남긴 비문은 얼마나 절절하고 애끊는 사연일 것인가.

하지만 전재수군의 묘비 뒷면을 본 순간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비문에 적힌 글은 아버지가 남긴 고작 여섯 글자뿐이었다.

“고이 잠들어라.”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었겠는가. 삶을 기리기에는 생이 너무 짧았고, 슬픔을 나열하기에는 몇 뼘 되지 않는 묘비의 크기가 너무나 작다. 자식이 죽고 나서 엄마도 시름시름 앓다가 4년 후 아들 곁으로 갔다고 한다.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을 들여다볼 때, 혼도 곁에서 함께 제 얼굴을 들여다보진 않을까.” <소년이 온다>에 나오는 구절이다. 비문들을 읽어가다 보면 ‘역사의 비극’이라는 말만으로 담아낼 수 없는 개별적인 비통함의 심연을 들여다보게 된다. 단 하나의 비문에 담긴 애통함과 슬픔의 무게조차 가늠할 길이 없는데, 그것들이 쌓인 ‘역사의 비극’이란 도대체 어떠한 무게란 말인가.

오늘은 5·18민주화운동 40년인 날이다. 40년이 흘렀지만 실종자들은 아직 시신조차 찾지 못했고, 헬기사격의 진실을 규명해야 하는 숙제도 남아 있다. 광주학살의 주범으로 꼽히는 전두환은 지금까지도 사과 한마디 하지 않은 채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그럼에도 산 자들이 해야 하는 일은 1980년 5월의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마지막까지 눈을 뜨고 응시하는 것이다.

“(시민군이) 희생자라고 생각했던 것은 내 오해였다. 그들은 희생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 남았다. 학살이 온다, 고문이 온다, 강제진압이 온다 (…) 하지만 지금, 눈을 뜨고 있는 한, 응시하고 있는 한 끝끝내 우리는….”(<소년이 온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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