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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에게 보여지는 가치란난 한국으로 역이민 왔다
코리아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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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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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 / 오늘의 한국 기자

   
 

나는 매년 뉴질랜드에 간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여름만 되면 하나 둘 사라져 바닷가다 호캉스다 신나게 여름휴가를 즐기고 와도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난 뉴질랜드의 한여름에 맞춰 연말에 휴가를 떠날테니 말이다. 내게 있어 매해 연말 뉴질랜드에 가는 것은 일이 고돼도 연말까지 버틸 수 있는 이유이자 다시 한국에 돌아와서 1년을 살아낼 수 있는 원동력이다. 그렇게 해서 연말에 뉴질랜드 땅을 밟으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와~ 드디어 고향에 온 것 같다’도 아니요, ‘그리웠던 조지파이 실컷 먹어야지’는 더더욱 아니다. 비행기가 오클랜드 국제공항에 착륙했다는 기내 방송이 흘러나오는 순간 ‘아, 나 이제 자유다’ 라는 생각이 절로 스친다. 내가 여기서 말하는 ‘자유’는 일상생활을 벗어난 일탈 같은 그리 대단한 자유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사람들의 시야에서 벗어나 입고 싶은 옷을 입고, 신고 싶은 신발을 신고 거리를 활보할 수 있는, 그런 소소한 자유를 말하는 거다.

한국은 보이는 것에 상당히 민감한 나라다.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 역시 보이는 것에 근거를 둔다. 한국에 사는 상당수의 젊은층이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외제차를 모는 것 역시 이에 대한 방증이기도 하다. 좋은 차를 타면 그들에 대한 평가마저 달라지기 때문이다. 면접용 이력서를 위해 잘 갖춰입고 프로필 사진을 찍어야 하며, 믿기 힘들겠지만 백화점에서 그럴듯한 손님 대접(?)을 받기 위해서도 잘 차려 입고 쇼핑에 나서야 한다.

뉴질랜드는 어떠한가. 한겨울에 반팔티와 반바지만 입고 퀸스트리트를 활보해도 사람들의 눈초리를 받지 않아도 되는 그런 자유가 있고, 길에서 기타치며 노래하고 싶으면 노래하고, 반바지를 입고 출근을 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그런 자유가 있다. 머리를 이삼일 감지 않은 채 외출해도 아무도 수근대지 않는다. 비가 오더라도 굳이 우산을 쓰고 싶지 않으면 쓰지 않아도 된다. 어느 누구도 비를 맞고 가는 사람을 보며 ‘저 사람 우산 살 돈이 없나봐’ ‘저 사람 실연당했나봐’ 등의 평가를 쏟아내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은 다르다. 매 순간 타인의 눈을 의식해야 한다. 매 순간 보이는 것으로 평가를 받아야 한다. 하루는 아는 동생이 대치동 과외가기 전 시간이 남는다며 잠시 보자고 연락을 해왔다. 동생을 만나러 나갔더니 과외수업을 간다던 애의 옷차림이 범상치 않았다. 명품 가방에, 명품 귀걸이에, 엄청 힘을 주고 나온 게 아닌가. 놀려주고 싶은 맘에 “너 어디 땅 보러 가니? 부동산에 가?” 하지만 그 동생은 오히려 정색하며 “언니, 모르는 소리하지 마세요. 대치동 어머니들은 과외 선생님 옷차림도 엄청 신중하게 봐요. 심한 경우는 과외 선생님이 몰고 다니는 차종까지 묻는 어머니들도 있어요.”

그때는 이게 대체 무슨 소린지 미처 몰랐다. 말도 안 되는 동생의 말을 그냥 흘려버렸고, 그 후 몇 년이 지난 지금 나는 퇴근 후 과외 수업을 다닌다. 퇴근 후, 서둘러 집에 돌아와 편안하고 깨끗한 추리닝 바지로 갈아입고 수업에 갔다. 내가 굳이 추리닝 바지를 입은 건 세 가지 이유에서였다.

첫 번째 이유는 편안함 때문이었다. 한 집에 가면 형제나 자매를 차례대로 가르치기 때문에 짧게는 두 시간, 길게는 세 시간을 바닥에 앉아서 수업을 해야 한다. 그렇게 때문에 하의는 편안한 복장이 필수적이다. 두 번째 이유는 일반 니트나 티셔츠와 함께 입으면 추리닝 바지인지 별로 표시가 나지 않는다(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ㅜ.ㅠ). 마지막 이유는 내가 추리닝을 입고 가르친다고 해서 잘 차려 입었을 때보다 덜 열성적으로 가르친다거나 내게 있는 지식이 사라진다거나 하지 않기에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는 동생의 말이 맞았다. 내 복장은 문제가 됐다. 그리고 심지어 그런 지적을 어머니가 아닌 학생한테 들었다.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왜 한국 사람들은 보이는 것들에 집착하며, 보이는 것들에 근거하여 사람을 판단하는지. 왜 한국에서는 보이는 것이 이리도 중요한지, 왜 누가 어느 아파트 몇 평에 사는 것이 궁금하며, 왜 누가 입는 옷이 어느 브랜드의 얼마짜리 옷인지가 알고 싶은지.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한국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말하면서도 그들의 요구에 맞춰 추리닝을 버리고, 이제 출근할 때에도 과외 수업에 갈 때에도 잘 갖춰 입으려 노력하는 내 모습은 과연 맞는 건지.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보이는 것의 가치는 사실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나 역시도 이곳 한국에서 타인을 보고 나도 모르게 평가하고 판단하고 있는 건 아닌지. 잘 모르겠다. 분명한 건 연말에 뉴질랜드에 가면 추리닝을 입고 쇼핑도 하고, 음식점에도 가고, 편하게 친구들도 만날 수 있는, 그런 소소한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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