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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관계 타개,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하다
헤럴드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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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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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준 / 국방대학교 안보대학원 교수

   
 

국제정치학, 그중에서도 국제안보 문제를 연구해온 필자는 한국의 국가안보 관점에서 일본과 관계를 협력적으로 갖고 가야한다고 생각해왔다. 정부 수립 이후 우리나라가 선택해온 안보 정책은 자주국방 태세 강화, 이를 토대로 한 대북 억제 태세 강화 혹은 남북 협력 촉진, 한·미 동맹 발전, 그리고 동아시아 지역 차원에서 협력적 질서 구축 등으로 대별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같은 4가지 축을 원활하게 추진해가는 과정에서 양호한 한·일관계 유지가 필수요건이라 생각한 것이다.

한·미 동맹 강화를 위해서는 미·일 동맹의 후방 지원 역할을 도외시할 수 없고, 이 경우 한·일 간 안보 협력이 불가피하다. 동아시아 지역 차원의 협력질서 구축에서도 중국·러시아도 물론이지만 특히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질서를 공유하는 일본과의 협력을 포함하지 않을 수 없다. 나아가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 추진 과정에서도 북·미 관계 정상화는 물론 북·일 관계 정상화가 어느 단계에선가는 반드시 필요하다. 이미 2002년 당시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와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것처럼 북·일 국교정상화 과정에서 일본이 수행할 것이라고 했던 상당 규모의 대북 경제 지원이 북한의 발전과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에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본과 사이에 역사나 영토 문제로 인한 갈등 요인이 잠복해 있다 할지라도 보다 큰 국익을 위해서는 안보와 외교 문제와 분리해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왔다. 때문에 문재인 정부가 출범 직후 일본에 대해 투트랙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을 때 기대를 걸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역사 문제로 인한 갈등이 양국 간 안보나 경제 협력을 저해하는 양상이 현저하다. 양국 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합의에 의해 만들어졌던 화해치유재단이 해산됐다. 대법원 판결에 의해 식민지시대 강제징용된 노동자에 대해 일본 기업이 배상하도록 한 판결이 내려졌다. 역사 문제로 촉발된 양국 간 갈등요인이 이미 합의된 안보협력 사안인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문제로까지 불똥이 튄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법원 판결에 따라 일본 기업에 대한 억류자산 현금화 조치가 취해진다면 한·일 관계는 아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될 것이고 안보이익도 훼손될 수 있다.

국제정세를 살펴보면 한국과 일본이 상호 협력해야 할 필요성은 더할 나위 없이 증대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속에서 미·중 관계가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 정도로 험악해지고 있는데, 한·일 관계마저 악화된다면 외교적 부담은 가중될 것이다.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을 원활하게 추진하기 위해 미국과 중국은 물론 러시아와 일본과도 양호한 관계를 조성해야 하는데, 한·일 관계 악화는 북한을 긍정적 방향으로 변화시킬 잠재적 자산을 놓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악화 일로를 걸어온 한·일 관계를 타개하기 위해 우리 정부는 국내법적 성격을 갖는 대법원 판결도 존중하면서, 일종의 국제법적 성격을 갖는 한일기본조약 체결 과정에서 암묵적으로 합의한 사항도 충족하는 길을 찾아내야 할 것이다. 국권을 상실하면서 애궂은 민초들이 타국의 전쟁 수행을 위한 강제징용공이나 위안부로 끌려간 어둠의 역사에 대해 이후 독립한 정부로서 응분의 책임을 공유한다는 결의를 새롭게 보이면 어떨까 한다. 대법원에서 배상을 명한 일본 기업들의 책임을 한국 정부가 대신 부담하며, 대신 일본 기업과 사회에 대해서는 식민 기간 발생한 위안부나 강제징용공 등 인권 침해에 관해 화해와 기억의 노력을 촉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선택이 우리가 추진하는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이나 동아시아 협력질서 건설에 일본 사회 전체를 우군으로 돌아서게 하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대통령이 지난해 광복절에 밝힌 “대륙과 해양을 아우르며 평화와 번영을 선도하는 교량국가” 비전에도 부합하는 결단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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