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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선언 20년, 자주와 신뢰를 생각한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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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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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학순 / 세종연구소장

불신·대결에서 화해·협력으로
2000년, 남북의 역사적 대전환
이후 2018년 9·19군사합의까지
믿음 위에 이뤄진 서로의 ‘약속’
근본적 열쇠는 언제나 ‘신뢰’다
 

올 6월은 매우 특별한 달이다. 15일은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이고, 25일은 6·25전쟁 발발 70주년이다. 70년 전인 1950년, 강대국들 간의 동서냉전이 그들이 갈라놓은 한반도에서 6·25전쟁으로 터졌다. 우리 민족은 대량 학살당하고 ‘불신과 대결’의 질곡 속에서 반세기를 살아오다 2000년 6월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과 6·15 남북공동선언을 통해 ‘화해와 협력’으로의 대전환을 이뤄냈다.

오늘 우리는 6·15 공동선언 20주년을 맞는다. 6·15 공동선언의 의의는 무엇이며, 그것이 현재 우리에게 주는 정책적 시사점은 무엇인가? 올 6월 들어 심각하게 악화되고 있는 남북관계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

6·15의 핵심적인 의의는 공동선언 제1, 2항에 잘 나타나 있다. 첫째, 남북한은 한반도 통일문제의 ‘주인’으로서 서로 협력하여 ‘자주적’으로 통일문제를 해결해나가자. 둘째, 무력통일이나 흡수통일이 아닌 ‘평화통일’만이 유일한 통일의 길이고, 통일은 ‘과정’으로 이뤄나가되, 현재의 통일단계는 ‘연합제’ 단계이다. 이러한 공동 인식을 바탕으로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해나가자는 것이었다.

위의 의의가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1945년 남북 분단 이후 고통받아온 ‘한반도 문제’를 남북한이 협력해 해결하기 위해서는, 상호 경쟁자인 남북한 간에 통일의 현주소와 방안에 대해 공동인식과 합의를 갖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공동인식과 합의 없이는, 민족 화해와 남북관계 개선, 한반도 평화 정착 등에 대해 진정성을 갖고 논의하기도 어렵고 합의를 제대로 실천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한편 한반도 문제는 민족문제와 국제문제가 결합되어 있어 자주성(민족주의)과 국제성(국제주의)의 힘이 함께 작용하고 있다. 2000년 6월 남북 지도자들은, 국제질서는 기본적으로 강대국 이익 중심의 질서임을 인식하면서 통일문제 등 우리의 운명은 당사자인 우리가 주도적으로 해결해나간다는 ‘자주’의 원칙에 합의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우리 민족이 최초로 자신의 문제를 자신의 손으로 해결하는 기회를 갖게 됐다는 것을 6·15의 가장 중요한 의의와 성과로 꼽기도 했다.

김 대통령에게 있어 자주는 ‘민족 대 외세’라는 기계적인 이분법에 얽매인 ‘배타적 자주’가 아니라, ‘민족 공조를 바탕으로 주도적으로 국제공조를 확보’해나가는 ‘열린 자주’였다. 회담 초기에 배타적 자주를 주장했던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결국 열린 자주에 동의했다.

그렇다면, 6·15가 현재 우리에게 주는 정책적 함의는 무엇인가? 그것은 6·15 이후 역사상 유례없는 폭과 깊이로 진행된 남북관계 개선, 한반도 전쟁 위협 완화와 평화프로세스는 다름 아닌 위에서 설명한 6·15의 ‘약속’ 위에서, 보다 직접적으로는 그러한 약속을 한 상대방에 대한 ‘신뢰’, 상대방이 약속을 지키리라는 ‘믿음’ 위에서 이뤄졌다는 것이다. 그 덕분에 역사적인 6·15시대가 열렸던 것이다.

최근 탈북민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와 북한의 강력한 반발로 인해 남북관계가 문재인 정부 들어 최악의 상황으로 빠져드는 모습이다. 북한은 대남사업을 철저히 ‘대적사업으로 전환’한다면서, 정상 간 핫라인, 군사통신선 등 남북 간 모든 통신선을 끊었다. 남한 정부에 대한 ‘신뢰’가 산산조각 났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번 대남 적대행동은 총참모부의 군사적 행위가 될 것임을 예고했다.

북한은 왜 이렇게 강하게 나오고 있는가? 추측컨대, 북한 지도부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미국 강경파들의 리비아식 비핵화 요구를 보면서 그들이 북한 정권교체의 꿈을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또 지난 4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태양절 참배에 불참하자, 외부 세계가 이를 김정은 사망, 김여정 후계자, 북한의 급변사태, 작계 5029 이행 준비 등으로 이어가면서 상황을 북한 정권교체 쪽으로 몰아가는 것을 심각하게 지켜봤을 것이다. 이런 와중에 탈북민 단체까지 나서 북한 지도자 및 정권교체를 목표로 한 대북전단을 더욱 과감하게 살포했다. 이에 북한은 전단 살포 중지를 약속한 판문점선언의 당사자인 문재인 정부가 전단 살포를 적극적으로 막지 않았다고 보고, 그동안 북한 나름대로 쌓였다고 주장해온 불만을 터뜨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북한도 한반도 문제의 해결 당사자이고,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 9·19 군사합의서의 당사자라는 점이다. 남한에 대한 불만이 있으면 우선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다. 그런데 정반대로 나오고 있어 크게 실망스럽다. 북한이 군사적 강공으로 나온다면, 남한 사회에서 대북 적대감이 어떻게 증폭될지 가늠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현재의 이 상황을 어떻게 풀어야 하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남북 정상, 남북 정부 사이에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다. 6·15시대를 열 수 있었던 신뢰, 10·4 정상선언, 판문점선언, 9월 평양공동선언, 9·19 군사합의서를 가능케 했던 그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판문점선언에서 합의한 ‘민족 자주의 원칙’을 재인식하고 공유해야 한다. 남북관계를 제대로 진전시키지 못하면 우리 민족이 한반도의 주인인데도 불구하고 한반도 문제 해결에서 주도권을 상실하게 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교훈의 실천을 주도하고, 북한에도 이 교훈을 실천토록 요구해야 한다. 우리 정부가 조속히 비공개 대북 특사를 파견해 남북 지도자 차원에서 신뢰를 회복하는 일에 나설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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