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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이드’를 대하는 일본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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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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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구치 지로 / 호세이대학 법학과 교수

   
 

미국 미네소타주 경찰관이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의 목을 무릎으로 눌러서 사망하게 한 사건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사건 뒤 보름 이상 지난 지금도 미국뿐 아니라 유럽과 오스트레일리아 등 여러 나라에서 항의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간의 생명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흑인이라는 이유로 벌레처럼 취급받아 목숨을 잃었다는 불의한 일을 보고 양식 있는 사람들의 분노가 끓어올랐다.
일본 뉴스도 이 사건을 다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사건이 차별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일본인이 재확인하는 기회가 되지 않고, 일본 사회는 차별을 방치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

<엔에이치케이>(NHK) 방송이 국제문제 해설 프로그램에서 흑인 항의 시위의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 내보낸 애니메이션이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흑인에 대한 선입관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은 게 대표적 예다. 이 애니메이션에선 흰 탱크톱 차림의 근육질 흑인 남성이 등장해 “우리가 화를 내는 배경에는 우리 흑인과 백인 사이 빈부 격차가 있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어 백인 자산 평균이 흑인의 7배인데다 코로나19의 영향에 따른 실업으로 흑인이 타격을 입었다는 점을 들며 ‘이런 분노가 여기저기서 분출했다’고 시위 배경을 설명한다. 애니메이션 속, 길거리에서 주먹을 치켜드는 캐릭터들은 모두 피부가 검은 사람들이다.

경제적 격차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번 항의 시위대가 호소하고 있는 것은 흑인의 생명과 존엄을 똑같이 존중해달라는 것이다. 이 주장에는 여러 다른 인종 사람들도 찬성하고 있다. 사회 정의 문제가 흑인의 불만으로 대체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 프로그램은 이름값을 하지 못한다. 조지프 영 주일미국 임시대리대사가 “(방송에) 사용된 애니메이션은 모욕적이며 무신경하다”고 항의했고, <엔에이치케이> 방송은 사죄했다. 일본 저널리즘의 질이 문제가 되고 있다.

일본은 인종 차별 문제를 남의 일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이 기회에 일본 사회에 존재하는 차별에 대해서 재인식하고 차별을 해소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1923년 9월1일 간토(관동)대지진 때 학살당한 조선인 희생자를 추도하는 운동을 둘러싼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의 대응을 예로 들고 싶다.

해마다 이날이면 뜻있는 단체가 위령비가 있는 공원에서 희생자를 추도하는 의식을 열어왔다. 역대 도쿄도지사는 이 추도식에 추도문을 보내왔지만, 고이케 지사는 2017년 이후 보내지 않고 있다. 심지어 올해는 학살 자체를 부정하는 극우 단체가 근처에서 선전전을 할 예정이란 이유로, 추도식 실행위원회와 극우 단체 양쪽에 혼란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공원 사용을 허가하지 않는다는 통고까지 했다.

고이케 지사의 이런 논리는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란 구호를 비웃기 위해서 ‘모든 인간의 생명은 소중하다’(All lives matter)고 외치는 미국 백인들의 변명을 떠올리게 한다. 흑인뿐 아니라 차별당하는 소수자 권리 존중을 위해 노력한다면 ‘모든 인간의 생명은 소중하다’는 구호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흑인의 생명이 소중하다는 주장을 부정하기 위해, 자신도 믿지 않는 일반론을 외치고 있는 것이다.

고이케 지사도 학살 희생자에 대한 추모를 피하기 위해, 모든 희생자를 추도한다는 핑계로 도망치고 있다. 차별을 반성하고 인간의 존엄을 호소하는 주장과 타민족을 차별하는 헤이트 스피치를 동렬로 늘어놓고 양자에게 규칙을 지키라고 요구하는 것은 극히 불공평하다. 민주주의 정치인은 차별을 퍼뜨리는 주장은 절대로 지지하지 않는다는 강한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

고이케 지사는 7월 선거에서 재선될 기세다. 그러나 인기 있는 정치인이 차별에 대해서 모호한 태도를 취함으로써, 일본 사회에 차별의 해독이 확산되고 있다. 미국 사건은 일본에 남의 일이 아니다.

   
▲ NHK 방송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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