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0.7.3 금 17:23
재외선거, 의료보험
> News Wide > 교포뉴스
대한민국 최초 여군으로 6.25전쟁에 참전한 재일교포 송순자씨
강혜민 기자  |  oktimes@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20.06.17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 도쿄 거주 6.25 참전 유공자 송순자씨

일본 도쿄도(東京都)에 거주하는 송순자(89) 씨는 대한민국 여군의 뿌리인 여자의용군 창설 멤버다.

1950년 8월, 6·25전쟁 초기 제주도 서귀포시의 한 학교에서 임시 교사로 근무하던 중 송준자씨는 조국의 부름을 받고 19세의 나이에 군인이 되었다.

인민군의 남침으로 전선이 낙동강까지 밀리자 당시 제주도에선 젊은 여성들도 징집 대상이 되어 어쩔 수 없이 참전하게 되었다.

경남 진해의 여군 훈련소에서 기초군사 및 사격 훈련 등 교육 훈련을 수료 후 490명의 전우와 함께 1950년 9월 26일 대한민국 최초의 여군이 되었다.

당시 여군은 전투 현장에 투입되기보다는 사령부 등에서 행정 업무를 담당했다.

송씨도 사령부에서 고위 장교의 비서로 일했고, 전투병 위문을 위한 연극 등을 준비했다.

1951년 8월 병장 계급으로 전역해 제주도로 돌아왔다. 임시 교사로 다시 근무하던 중 결혼하여 남편과 함께 이듬해 자신이 태어난 곳이며 오빠가 살던 일본 오사카(大阪)로 이주했다.

처음에는 오빠 친구가 운영하는 오사카 공장에서 일했고, 도쿄(東京)로 이사한 뒤에는 가방 만드는 공장에서 일했다. 남편이 모래 운반선 사업을 하다 파산을 하는 등 일본 정착 과정에서도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송씨는 민족 상쟁의 비극을 피해 이주한 일본에서도 분단 조국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

일본에서 살던 오빠와 언니 가족이 재일조선인 북송사업에 참여해 북한으로 이주해 일본에서도 이산가족이 되고 말았다.

195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북송사업으로 일본에서 북한으로 건너간 이들은 '사회주의 지상 낙원'이라는 북한의 선전이 매우 과장됐다는 점을 깨닫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후 송씨는 북한으로 이주한 오빠와 언니 가족을 위해 생활비를 송금했다.

일본인으로 귀화하지 않고 한국 국적을 유지하던 그는 2016년 6·25 참전유공자 자격으로 '호국영웅기장'을 받았다.

우리 정부는 당시 국외 거주 6·25 참전유공자 4천407명에게 호국영웅기장을 수여했다.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회사소개광고문의기사제보구독신청찾아오시는길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 110-888 서울시 종로구 종로 19 B동 1118호 (종로1가, 르메이에르종로타운) | Tel 02)2075-7141~3 | Fax 02)2075-7144
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아 01003 | 등록일자 : 2009. 10. 24 | 발행인 : 이구홍(전 재외동포재단 이사장)
개인정보취급담당자 : 최유정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유정
Copyright 2008 세계한인신문. All Rights Reserved.mail to oktime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