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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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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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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현 / 산업1팀 차장

   
 

딱 이맘때였다. 17년 전 북한 개성 땅을 밟았을 때 가장 놀란 건 김동인의 소설 제목처럼 나무 한 그루 없이 붉은 황토가 드러난 송악산의 모습이었다. 전날까지 내린 장맛비로 포장도 안 된 도로에 붉은 고랑이 깊게 팼다.

당시 초선이던 ‘기자 선배’ 이낙연 의원이 중소기업 출입 기자들과 함께 다녔는데, 구수한 입담으로 분위기를 띄웠다. 농담을 던지던 이 의원이 갑자기 먼 산을 바라보며 “반세기 만에 찾은 북녘땅에 나무 한 그루 없는 붉은 산이 안타깝다”며 금세라도 눈물을 흘릴 듯한 표정을 지었다.

돌아보니 모 방송사 카메라가 이 의원 옆에 와 있었다. 카메라맨이 떠나자 이 의원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기자들에게 우스갯소리를 던졌다. 이 의원의 모습은 그날 저녁 9시 뉴스에 큼지막하게 나왔다.

이 의원과 무리 지어 다니던 기자들은 송악산에 나무가 없는 까닭이 “90년대 고난의 행군 흔적 아닐까”라고 추측했다. 초근목피로 연명해야 했던 상황이 아니고선 나무 한 그루 없는 산의 모습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자남산 여관에서 오찬이 열렸는데, 간도 안 된 닭백숙이 식탁에 올라왔다. 오래 키운 닭이어서 몹시 질겼는데 살도 많지 않았다. 들쭉술 한 잔씩을 반주 삼아 점심을 먹고 흑백사진으로만 보던 선죽교와 개성 박물관을 돌아본 뒤 서울로 돌아왔다.

2003년 6월 30일 개성공단 착공식의 풍경은 드문드문 기억에 남아있다. 이낙연 의원의 구수한 농담과 비쩍 곯은 닭백숙, 선죽교 바닥에서 정몽주의 핏자국을 발견하기 어려웠던 것만 기억난다. 그렇게 17년이 흘렀다.

북한이 개성공단 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불과 2년 전 ‘봄날’이 올 것 같았던 남북관계는 단숨에 빙하기로 접어들었다. 개성공단에 청춘과 재산을 바친 중소기업인의 희망은 신기루가 될 처지다.

17년 전 착공식에서 김윤규 당시 현대아산 사장은 “장맛비가 착공식에 맞춰 화창하게 갰다. 하늘도 개성공단의 성공을 돕는 것”이라고 했다. 그날 이후 개성공단은 온갖 우여곡절을 겪었고 2016년 가동을 중단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지금 내리는 비가 언제쯤 그칠지 도무지 가늠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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