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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非산유국 노동자, '코로나 사태'로 대량 해고·집단 감염 시달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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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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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남식 / 국립외교원 교수·중동정치

   
 

중동 지역에서 코로나19 확산 속도가 무섭다. 한풀 꺾이는가 싶더니 다시 치솟고 있다. 바이러스의 공포는 질병과 싸우는 병상에서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감염을 막기 위한 봉쇄는 경제까지 막았다. 감염의 공포만큼이나 추락하는 경제를 지켜보는 두려움 역시 크다. 중동이 마주하는 경제 추락의 공포는 빈부(貧富)에 따라 양태를 달리하며 드러난다. 하나는 유가 하락으로 인한 산유 부국들의 위기다. 다른 하나는 나라를 근근이 지탱하는 수입원이 끊기는 가난한 아랍 나라들 고통이다.

코로나, 중동 貧國에 더 치명적

먼저 산유국을 보자. 지난 4월 20일 국제 유가는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사상 초유의 일이다. 바이러스로 수요가 급감, 매일 1억 배럴 원유 수요 중 3000만 배럴이 줄었지만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물론 극단적인 요인들이 겹치면서 일어난 일회적 현상이라 이내 회복했다. 그러나 배럴당 40달러 위로 올라갈 기미는 좀체 안 보인다.

부유한 걸프 왕정 국가들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저유가로 인한 재정난이 확연히 예상되기 때문이다. S&P는 걸프 산유국의 석유 수입이 작년 3260억달러에서 올해 2000억달러로 곤두박질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세계은행은 올해 쿠웨이트 -20%, 카타르 -17%, 사우디 -12% 등 수입 감소를 추정하고 있다. 앞다퉈 국가 개조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었던 걸프 왕정 국가들은 당황하고 있다. 사회 인프라 프로젝트 중단이 이어지고 있다. 각국 왕실은 고강도 구조조정을 통해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막대한 금융 파생 상품이 석유와 맞물려 있기에 국제사회는 걸프 지역 변동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하지만 산유국보다 더 심각한 곳이 있다. 가난한 아랍 나라들이다. 관광 수입에 의지했던 나일 문명 거점 이집트나 페트라의 땅 요르단, 지중해 해상 무역의 후예 튀니지, 그리고 사하라 방문의 요충 모로코는 직격탄을 맞았다. 국제사회가 모두 어렵다 보니 원조도 기대하기 쉽지 않다.

   
 

더 치명적인 건 해외 송금액 급감이다. 이주 노동자로 외국에 나간 자국민들이 부치는 돈이 줄고 있다. 아랍에서 일하는 해외 노동자 2300만명 중 대다수는 주로 걸프 산유국에 몰려있다. 이 중 일부는 유럽이나 동아시아 국적의 고임금 전문 직군이지만, 다수는 중동과 남아시아 등지에서 이주해 일하는 토목·건축 현장 근로자 또는 가사 도우미들이다. 수출할 상품이나 원자재도 마땅치 않은 이집트, 요르단, 팔레스타인, 레바논, 예멘 사람들은 부유한 아랍국으로 직접 건너가 힘겹게 돈 벌어 고국으로 부쳐왔다.

국가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저소득 이주 노동자들은 한 달에 대략 한화 35만~75만원가량을 받는다. 많게는 수입의 절반 가까이 고국의 가족들에게 송금한다. 이집트의 경우 작년 해외 송금액은 268억달러로 전체 GDP의 8.9%에 해당한다. 팔레스타인의 해외 송금 수입은 16.3%에 육박한다. 중동 비산유국의 경우 GDP 대비 해외 송금 비율을 평균 내면 14%를 차지한다. '해외 송금 의존 국가'라는 용어가 어색하지 않다. 2020년 전체 해외 송금의 20% 정도가 줄어들 것으로 추산된다. 가난한 국가 경제에 직격탄이다.

바이러스는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전파된다. 하지만 여파는 빈곤층에서 더 치명적이다. 산유국은 프로젝트를 중단하면서 인근 아랍이나 남아시아 출신 비숙련 저임금 노동자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직장을 잃었지만 고국에 돌아갈 길도 막막하다. 오도 가도 못하는 이들은 한방에 8~12명씩, 최대 1만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집단 거주촌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불행히도 이런 이주 노동자 집단 시설에서 감염자 발생이 속출했다. 확산의 근원지가 되면서 현지 국민들 질시까지 받고 있다. 코로나 이전 이들은 부유한 아랍 걸프 국가에서 위험하고 비위생적인 작업 환경을 감수하며 허드렛일과 거친 일을 도맡았다. 그러나 지금은 불투명한 미래에 불안해하고 있다.

가난했던 50년 전 우리 자화상

런던정경대 마다위 라시드 교수는 가난한 아시아인들 노동력과 고유가가 만들어낸 걸프 산유국의 민낯이 드러나며 중동의 버블이 꺼지고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인구의 70~80%에 육박하는 이주 노동자들을 기반으로 나라를 운영해 온 UAE나 카타르가 이들을 본국으로 돌려보내고 있지만 이는 자국 경제 기반을 허무는 일이다. 자국민만으로는 국가의 정상적인 기능이 유지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산유국은 코로나로 자국 경제도 어렵지만, 지금이야말로 같은 아랍권, 이슬람권에서 온 이주 노동자들을 전향적으로 품을 때다. 그래야 코로나 이후 산유국 경제 회복과 도약의 가능성을 높인다.

중동 출장이 잦은 편이라 두바이나 아부다비 공항에서 고향과 일터를 오가는 이주 노동자들을 자주 본다. 그들 얼굴엔 삶의 신산(辛酸)함이 새겨져 있다. 어느 날 연결편 비행기 시간이 빠듯해 서두르고 있었다. 무빙워크에 서 있는 한 청년에게 "익스큐즈 미" 하며 살짝 지나치려 했다. 그때 재빨리 한쪽으로 붙으면서 허리를 굽혀 "소리, 서"라 말하던 그를 잊을 수가 없다. 모르는 이가 지나가며 잠깐 양해를 구하는 상황인데도 그의 몸은 무의식중에 서비스 태세로 반응한 것이다. 반사적으로 '서(sir)'라는 경칭과 함께 몸을 굽히는 생활이 몸에 배어있던 그의 모습이 짠했다. 50여 년 전, 가난한 나라 한국에서 뜨거운 중동 사막으로 달려가 일하던 우리 부모 세대가 떠올랐다. 가족을 그리워하며 이역에서 일했던 그때 그 어른들은 바로 오늘 이 이주 노동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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