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준 / 경희대 교수·전 주유엔 대사

굳이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의 말을 빌릴 필요도 없이 코로나19 대유행은 우리 시대 최대의 글로벌 위기다. 이 같은 지구적 규모의 위기에 맞서 국가들은 평소의 갈등과 문제들을 일단 덮어놓고 인류 전체를 위해 협력해야 할 텐데,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그 반대인 것 같다. 지금은 누구 때문에 팬데믹이 초래됐는지 따지는 게 급한 게 아니고 함께 불을 꺼야 하는데, 미국과 서방 국가들은 중국을 비난하고, 중국은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이고, 중심적 역할을 해야 할 세계보건기구(WHO)는 분열의 장이 되고 있다.

20세기에도 전 세계를 강타한 재앙적 위기는 몇 번 있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그랬고, 1918년의 스페인 독감이나 1929년의 대공황도 인류 전체에 큰 영향을 주었다. 세계대전이라는 파괴적인 전쟁을 치른 국가들은 최소한 종전 후에는 화합과 협력을 추구하는 모습을 몇 년간은 보여줬다. 국제연맹이나 유엔도 그렇게 창설됐다. 그러나 대유행병이나 경제공황에 직면한 국가들은 이기적이고 분열적인 행태에 몰입한 경우가 더 많았다. 서로 죽고 죽이는 치열함이 없어서였을까? 불행히도 오늘의 코로나19 사태도 후자에 가까운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20세기의 위기 상황과 달리 이번 사태에 국가들이 단합된 대응을 하지 못하는 것은 인류의 미래에 더욱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2020년의 세계는 20세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연계되고 얽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을 세계화라고 부른다.

코로나19 앞에서 국가들이 단합하고 협력하지 못하는 데는 크게 3가지 정도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세계는 코로나19 이전에 이미 경기 침체, 불평등 증대, 기후변화와 같은 심각한 `기저질환`에 시달리고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의 재앙 속에서 국가들은 인류 전체를 생각하는 현명한 판단의 여유가 없는 것 같다. 둘째, 지난 20년간 세계에는 민주주의와 함께 포퓰리즘이 확산됐다. 오늘날 민주국가에서도 정치지도자들이 장기적 공익을 고려하기보다 눈앞의 정치적 득실에 따라 민중을 오도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셋째, 국가중심주의가 강화되고 그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전쟁과 같은 대형 위기가 오면 사람들은 정부를 중심으로 단합하게 된다.

하지만 국가의 역할이 지나치게 강해지면 지난 수십 년간 확대돼온 민간 분야, 즉 기업과 시민사회의 국내·국제적 활동과의 갈등이 불가피하다. 코로나19가 끝났을 때 국제사회가 다시 민간 중심의 세계화를 회복시키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어떤 세계가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는지 모르는 불확실성의 시대로 들어가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