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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공화국’의 이면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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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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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인희 /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한국서 지위 대변하는 아파트
모두가 강남 아파트 소유 갈망
소박한 내 집 마련의 꿈 사라져
삶에서 행복 빼앗은 주범으로

   
 

연일 언론을 장식하고 있는 부동산 관련 소식을 접하자니, 2007년 프랑스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가 출간한 책 ‘아파트 공화국’이 떠오른다. 우리에겐 익숙하기도 하고 친숙하기도 한 아파트가 프랑스 지리학자의 시선을 통해 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신선하기도 했던 모양이다.

책 앞부분에 나오는 이야기다. 한국인을 만나 한국에는 왜 이토록 아파트가 많은 것인지 물어 보면 너나없이 “땅덩어리는 좁은데 인구가 많기 때문”이라는 답을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줄레조가 찾은 자료에 의하면 인구밀도가 그다지 높지 않은 지역에도 어김없이 아파트가 우후죽순처럼 들어서 있고, 실제로는 아파트의 인구밀도가 다세대나 단독주택보다 오히려 낮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과연 한국인에게 아파트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쓴 책이 바로 ‘아파트 공화국’이란 이야기였다.

한국에서 아파트가 사회적 지위를 대변하는 대표적 상징으로 부상하기 시작한 것은 대체로 1980년대 이후의 일이다.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주요 인사들을 수록한 인명사전의 주소지가 1980년대 초반부터 강북에서 강남으로 이전하는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는 현실에서 유추 가능하다.

예전에는 부모나 당사자의 직업을 통해 사회경제적 지위를 예측하곤 했는데, 지금은 ‘어디 사는지’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음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심지어 초등학교 교실에서도 아파트 브랜드와 아파트 평수에 따라 서열이 생긴다는 씁쓸한 이야기도 들려오지 않던가.

현대적 생활양식을 구현하는 아파트는 거주에 관한 우리네 의식에도 다양한 영향을 미쳤음은 물론이다.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한 남향집이 최고라는 소리를 듣고 자란 세대로선 향(向)보다 전망(展望)이 아파트 값을 결정하는 데 더욱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처음엔 낯설게 들리기도 했다.

아파트 도입 초기엔 ‘김장독을 묻을 곳이 없어 어쩐다’는 걱정에, ‘시아버지와 며느리가 어찌 한 화장실을 쓰랴’는 고민에, ‘땅의 기운이 5층 이상은 안 올라온다’는 기우(杞憂)까지, 지금 생각해 보면 웃지 못할 해프닝들이 많았던 것 같다. 이제 김장독 걱정은 김치냉장고가 해결해 주고 있고, 3세대 확대가족 대신 2세대 핵가족이 주류가 되었으니 화장실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소된 것 같다. 5~7층이 로열층(?)이던 시대가 있었지만 지금은 높이 올라갈수록 아파트 가격도 상승하고 있으니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아파트 덕분에 가족 안에서 아내의 지위가 수직상승했다는 ‘설’(說)도 들려온다. 아내의 면밀한 정보력과 동물적(?) 감각으로 아파트 투자에 성공하기만 하면, 남편의 월급은 우습게 보일 만큼 거액의 재산 증식이 가능해지면서 나타난 결과라는데, 그럴듯하게 들리기도 한다.

고향에 계신 시부모님께서 아들네 보러 올라오셨을 때, 안방을 내어주느냐 문간방을 내어주느냐에 고부간 권력관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는 우스갯소리도 떠오른다. 강남의 모아파트 단지 건너편에는 일명 ‘시부모님 호텔’이라 불리던 4층 모텔도 있다지 않던가.

한데 ‘아파트야말로 우리네 삶에서 행복을 빼앗아간 주범’이란 이야기에 이르면 가슴이 답답해온다. 예전 가장들은 평생 내 집 한 채 마련하는 소박한 꿈을 꾸었고, 그 꿈이 실현되는 순간 자신의 책임을 다했다는 안도감과 더불어 뿌듯한 행복을 느끼곤 했었다. 하지만 아파트는 소박한 내 집 마련의 꿈을 가차 없이 앗아갔다.

이제 수도권에 아파트를 구입한 사람들은 서울 진입을 원하고, 서울 중에서도 강남 노른자 자리에 있는 아파트를 원하게 되었다. 작은 평수에 사는 사람들은 조금 더 큰 평수를 갈망하게 되었고 더욱 멋진 조경에 이름값 하는 브랜드의 아파트를 간절히 희망하게 되었다. 적정 수준에서 만족하기보다 채워지지 않는 욕망이나 ‘상대적 박탈감’으로 인해 불행감이 행복감을 압도하는 슬픈 현실 속에 빠지고 만 것이다.

그럼에도 아파트 정보는 대학입시 정보와 비슷하여 ‘누구는 1년 만에 몇 억을 벌었다느니’ ‘누구는 3년 새 재산이 몇 배가 되었다느니’ 성공사례만 떠다니고 실패 사례는 가뭄에 콩나듯 간간이 들려온다. 온 국민이 부동산 열풍에서 자유롭지 못함에도 정확하고 객관적인 정보는 찾을 수 없거니와 설혹 있다 해도 신뢰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와중에 자칭 부동산 전문가들이 다양한 정보를 쏟아내며 몸값을 올리고 있는 것이 우리네 현주소 아니던가. 마치 온 국민이 대학입시의 영향권 아래 노출되어 있건만 투명하고 합리적인 정보 대신 입시 전문가들의 컨설팅이 가장 큰 신뢰를 받고 있듯이 말이다.

‘정부가 정책을 펴면 국민은 대책을 마련한다’는 뼈있는 농담이 이번 부동산 관련 사태에도 그대로 적용될 것 같다. 코로나19 위기상황에서는 밀폐, 밀접, 밀집 환경을 피해야 한다 하니, 어쩌면 정부의 정책 덕분이 아니라 코로나19 위기가 아파트에 대한 우리네 생각을 획기적으로 바꿀지도 모르겠다는 망상이 문득 고개를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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