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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률성이 온다
연변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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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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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영춘 / 논설위원

   
 

<중국인민해방군 군가>의 우렁찬 선율을 타고 중국인민해방군 육해공군 의장대의 지축을 울리는 발걸음소리와 더불어 우리의 정률성이 오고 있다.

얼마 만이더냐. 34년 전 북경과 연변에서 ‘정률성작품음악회’가 열리면서 이 탁월한 생령과 우리를 잇는 감동의 만남이 이뤄졌지만 무더운 여름날의 소나기처럼 우리의 가슴을 시원하게 적셔주고는 가뭇없이 사라졌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번에 정률성은 가지 않고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한다고 한다.

일전에 격정으로 넘치는 연변대학 예술학원 음악 홀에서 자치주 당정과 연변대학은 공동으로 ‘정률성음악연구센터’의 출범과 더불어 ‘천자호’ 오리지널 대형 가무극 《정률성》을 무대화한다고 세상에 선언하였다. 가무극 《정률성》은 이미 수차의 수정을 거듭하면서 시나리오, 음악편곡, 무용창작, 무대 세트설계에서 본격적인 완성단계에 들어섰다. 이에 힘입어 바야흐로 ‘정률성박물관’, ‘정률성음악재단’도 일사불란하게 발족되면서 정률성이 우리와의 동행을 일상화시킨다는 야심찬 기획이 포석으로 깔려있음이 잘 드러나고 있다. 참으로 대서특필할 멋진 발상시리즈가 아닌가 싶다.

정률성, 이름 그대로 그는 음률로 대성하여 섭이, 선성해와 더불어 새 중국 ‘3대 악성(乐圣)’의 한 사람으로 추대되는 걸출한 영재이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지금까지 <중국인민해방군 군가>, <조선인민군 군가>, <연안송> 작곡자로서의 음악천재성에 많이 편중하다 보니 가슴 뭉클한 정률성 혁명생애의 눈물겨운 고난의 여정을 외면하고 살아오지 않았나 생각될 때가 많다. 말하자면 ‘예술가로서의 정률성’에 의해 ‘혁명가로서의 정률성’의 정체가 아쉽게 가리어져있었다는 유감을 안고 있었다는 것이다.

천재음악가에 앞서 정률성은 오랜 시련을 이겨낸 걸출한 혁명가이요, 공산주의 신념을 굽히지 않은 우수한 공산당원이였으며 불요불굴의 혁명 전사였다.

그가 창작한 <연안송>, <연수요>, <팔로군행진곡(후에 중국인민해방군 군가로 됨)>과 같은 불후의 명곡들은 중국혁명에 대한 뜨거운 격정과 중국인민에 대한 따뜻한 사랑, 혁명성지에 대한 절절한 정감이 그의 음악천재성과 일체화되었기에 중국인민과 중국인민해방군 장병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정률성의 파란만장한 혁명경력이 그의 음악을 낳게 한 촉매제로 되었다.

이런 감동적인 실화가 있다. 1977년, 정률성 서거 1주기에 즈음하여 수도에서 개최된 첫 정률성음악회에서 연안시절 정률성의 로전우들로 무어진 60여명 규모의 연안로전사합창단이 정률성이 작곡한 <팔로군 군가>, <연안송>, <중국인민해방군 행진곡>을 불렀는데 무대와 관중석이 모두 눈물바다가 됐다. 합창단이 무대에서 내려오는데 연안시절 항일군정대학 부교장이였던 라서경(새 중국 창건 후 초대 공안부장, 국무원 부총리, 중앙군위 비서장을 역임)이 휠체어에 앉아 뒤늦게 도착하여 공연을 보지 못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문화대혁명> 기간에 라서경 부부는 ‘4인무리’에 의해 감옥에 갇혔었는데 서로를 고무격려하며 매일 <연안송>을 불렀다고 한다.

“<연안송>을 다시 부르면 안 되겠습니까?” 라서경의 간절한 청탁에 로전사합창단 성원들은 기꺼이 다시 무대에 올라 라서경과 함께 정률성의 <연안송>, <팔로군 군가>, <중국인민해방군 행진곡>을 불러 또 한번 감동의 장면을 연출하였다.

중국혁명과 호흡을 함께 한 위대한 혁명전사만이 터칠 수 있는 불타는 음악격정의 필연적 소산임을 단적으로 시사 한 대목이라 생각한다.

정률성은 중국조선족의 걸출한 아들이다. 연변이 정률성 음악연구와 그의 열렬한 애국심 전승의 종가집으로 돼야 함은 너무나 당연하다. 조금은 늦었지만 이번에 ‘정률성음악연구센터’의 오픈과 《정률성》 가무극의 시동은 그런대로 우리가 정률성정신 전승의 종가집으로 되기 위한 ‘자격’을 인정받는 중대한 움직임이고 향후 발족하게 될 ‘정률성박물관’과 ‘정률성음악재단’은 연변을 우리나라 정률성 연구의 구심점으로 부각시키려는 미래지향적인 전략적 시도가 꿈틀거려 우리 모두를 흥분시키고 있다. 연변대학 예술학원의 담찬 기획이 국내외의 열띤 호응을 얻으리라 기대된다.

이에 앞서 리혜선 작가가 펼쳐낸 《정률성평전》이 조선문과 한어문으로 발행되면서 국내외에서 처음으로 정률성을 완벽하게 조명할 수 있는 문화적 기틀이 마련될 수 있었고 따라서 이렇게 출판 발행된 《정률성평전》 조, 한문 도서가 인기몰이를 하고 있어 정률성 붐을 형성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아놓고 있다는 점이다.

정률성을 기획 조명하고 그의 애국주의 정신의 전승을 일상화시키는 것은 오늘날 중국조선족사회에서 상당히 값진 시대적 과업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선족은 다른 소수민족처럼 민족의 구심점을 이루는 그 어떤 특정된 종교도 없다. 그리고 그 어떤 전통적인 정신적 기둥이나 지향점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150여년의 이주역사에서 별처럼 빛나는 걸출한 영걸들이 수많이 배출되었다. “이런 영걸들이야말로 조선족의 사표(师表)이고 정신적 지주나 지향점이 된다. 조선족의 구심점은 바로 이런 영걸들에 있다. 그들의 혼과 정신에 있다.”(우상렬)

영걸이 없는 민족사회는 오아시스가 없는 황량한 사막과 같다. 영걸들은 있는데 재조명되지 못하고 발굴, 복원되지 못했을 때 그것은 없는 거나 진배없으며 그 책임은 당연히 우리 학계와 문단의 몫으로 남을 것이다. 조선족 영걸의 삶을 조명하고 복원시키는 것은 우리 조선족의 삶을 조명하고 복원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개인이 역사적 개인일 때 그 개인의 일대기를 다루는 일은 역사의 주요사건을 조명하는 일이 된다. 정률성의 일대기를 형상화, 무대화, 박물관화 하는 것은 중국조선족사회의 민족적 긍지감을 극대화시키고 우리 민족 선인들의 우수한 DNA를 이어나간다는 깊은 의미가 깔려있다.

특히 글로벌화의 세계적 흐름에 조선족의 대이동이 본격화되고 있으며 조선족사회가 출렁이고 있는 오늘날 중국조선족의 사표— 정률성을 복원, 부각시키는 것은 우리 민족 정체성을 살리고 21세기 중국조선족의 삶의 자세를 보다 확실시하는 데 중요한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정률성은 우리 민족의 걸출한 아들이며 중국인민이 키워낸 자랑스러운 영걸이다. 연변대학 예술학원 《정률성》 가무극 창작간담회에서 정률성의 딸 정소제는 이렇게 토로했다.

“정률성은 저의 가정에 국한된 어른이 아닙니다!”

그렇다! 우리는 정률성이라는 중국조선족의 걸출한 아들이 있음에 긍지감을 가져야 하지만 중국조선족이라는 작은 울타리가 아닌 중국 나아가서 세계라는 넓은 공간에서 중국의 정률성을 부각시켜야 한다.

연변대학에 뿌리를 내린 ‘정률성음악센터’가 이 성스러운 사명을 잘 감당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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