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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복하면 더 강해진다” 위기에 진화하는 뉴욕의 힘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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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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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동 / 뉴욕 특파원

   
 

얼마 전 뉴욕 센트럴파크를 걷던 중이었다. 공원 한복판에서 청년들이 갑자기 말을 걸어오길래 ‘누가 호객 행위를 하나’ 싶었다. 하지만 고개를 돌리자 예기치 못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일렬로 서 있던 청년들이 각자 앞에 오는 ‘손님’에게 즉석 공연을 무료로 한 토막씩 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마침 셰익스피어의 유명한 소네트 18번을 낭송해 주겠다는 한 백인 청년이 있어서 그의 앞에 섰다. 대학 시절 좋아했던 작품을 뜻밖의 장소에서 오랜만에 듣고 있자니 여름날의 상쾌함으로 이만한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 낭송이 끝난 뒤 궁금해서 물어봤다. 어쩌다가 이런 이벤트를 하게 됐느냐고 말이다. 학창 시절 연극을 공부하고 극단에서 활동했다는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올봄부터는 아무런 공연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흘려보내는 시간을 견디다 못해 얼마 전부터 동료들과 거리로 나와 길 가는 사람들을 관객 삼아서 연기 연습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팬데믹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재능 기부’를 하겠다는 뜻도 담겨 있다고 했다.

요즘 뉴욕을 걷다 보면 수많은 사람이 죽고 직장을 잃은 전대미문의 비극 속에서도 이런 작지만 뭉클한 순간을 종종 경험할 수 있다. 이날 만난 청년처럼 수개월째 공연다운 공연을 하지 못한 예술가들은 밀폐된 공간에서 벗어나 보다 안전한 거리에서 관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인 뉴욕필하모닉 단원들도 최근 시 전역을 돌며 버스킹 공연을 시작했다. 사람들의 대화 소리, 차 소리, 때론 빗방울 소리와 섞여 들리는 클래식 음악은 장엄하고 조용한 실내 공연장에서 듣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을 준다. 브로드웨이에서 인기가 있었던 스탠드업 코미디언도 이제 센트럴파크 야외무대에서 관객들에게 웃음을 선사하고 있다.

이처럼 사람 간의 모든 접촉을 야외에서 하려는 경향은 오래된 도시의 풍경과 이미지를 송두리째 바꿔놓고 있다. 요즘 웨스트빌리지나 소호 같은 맛집 거리를 가면 테이블이 차도를 점령한 채 줄지어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실내 영업이 여전히 금지돼 있는 탓에 우연치 않게 뉴욕의 ‘시그니처’가 된 노천 식당들의 모습이다. 헬스장 대신 공원에서 필라테스 수업을 받는 뉴요커들, 벽거울과 간이의자 하나로 영업하는 거리의 이발사들 역시 평소엔 이 도시에서 쉽게 접하지 못하던 볼거리다. 이런 풍경들이 지난 수개월간 이어진 슬픔과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작은 활력소가 되고 있다고 시민들은 말한다.

역대 최강의 바이러스가 만든 비극이 한편으로는 오히려 도시를 활기차고 낭만적으로 보이게 하는 요인이 됐다니 이런 역설이 없다.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어떻게든 함께 이겨 나가겠다는 의지가 고층빌딩 빽빽한 맨해튼을 모처럼 ‘사람 냄새’ 나는 도시로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한때 지옥 같은 경험을 했지만 변화를 모색해 살아남은 최근 뉴욕의 모습은 결국엔 어떤 고난도 극복하거나 적응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주고 있다. “이 어려움을 극복하면 우리는 더 강해질 수 있다”는 앤드루 쿠오모 뉴욕 주지사의 호소는 미국 시민뿐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도 필요한 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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