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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과 꿀이 흐르는 땅, 대한민국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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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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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화 / 한신대 교수

   
 

나의 종교적 정체성은 선명하지 않다. 세례를 받은 신자이기도 하지만 불교의 연기론에 끌리고, 평소엔 무신론에 가까운 과학 기반의 서적을 주로 읽는다. 아라비안나이트를 그림책으로 만난 유년 시절부터 이슬람의 건축과 문화에 매혹되어 지금도 중동과 북아프리카, 스페인 남부 여행의 추억에 자주 젖어들고, 고대 이집트 종교의 무덤 벽화, 콥트교, 힌두교, 티베트 밀교 등등의 소소한 상징물들을 간직하고 있기도 하다. 신비와 오컬트, 영적 세계에 늘 흥미가 있지만 정확히는 인류학적인 관심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기독교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되는데, 특히 모세가 광야에서 보낸 40년에 대한 부분이다. 최단거리로 약 2주, 안전 경로로 이동해도 두세 달이면 도착했어야 한다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을 가까이 두고 유대 사람들이 그토록 오랜 시간 헤맨 이유가 무엇일까. 신학 전문가들이나 신앙심 깊은 분들은 신을 제대로 믿지 못한 자들에 대한 천벌이라거나 그들이 더욱 강해지도록 연단하는 과정이었다고 해석한다. 종교적으로 지당한 추론이라 생각하지만, 광야의 시기에 대한 나의 관심은 요즘 한국 사회가 마치 애급에서 탈출한 유대인들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봉건시대의 잔재와 강력한 독재의 시기에 갇혀있던 대한민국이 민주주의로 들어서기까지의 과정은 고통스러웠다. 무수한 이들이 애급 땅에서의 유대인들처럼 위대한 권력자와 재벌들을 위한 건설의 역군이 되어 성전을 쌓았고, 채찍보다 더한 고문으로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메시아에 대한 믿음과 같은 더 나은 사회로의 열망이 결국 민주화의 선지자들과 함께 고난의 땅을 탈출하게 했고, 희망을 향한 행군이 시작되었다. 한데 손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으리라 생각했던 성스럽고 아름다운 민주주의는 세월이 흘러도 그 위치가 묘연하기만 하다.

가나안으로 가는 길에도 끝없이 새로운 우상을 섬기던 자들처럼, 예수의 이름으로 이웃과 국민을 위험에 빠뜨리는 사이비 종교인들이 난립한다. 애급에서 노예로 살던 시기가 훨씬 나았다고 끝없이 불평불만을 쏟아내던 자들처럼, 차라리 독재 시대가 나았고 일제강점기 때가 고마웠다는 이들이 언론과 거리를 누빈다. 인간은 참으로 망각의 동물이구나. 10대들이 군 출신 교관에게 총검술과 제식훈련을 배우고 대학 캠퍼스에는 형사와 경찰들이 진을 치던 시대, 노랫말 가사를 트집잡고 맥락 없이 영화를 가위질해도, 무고한 국민들이 죽음을 당해도 말 한마디 못하던 시대가 그리울 수도 있구나.

그뿐인가. 지구가 둥근 것을 직접 본 적이 없기에 믿을 수 없다는 ‘지구 평평론자들’처럼, 코로나19가 정치적 음모라는 이들도 나타난다. 온 세계 지도자들과 언론, 의료인들이 연대한 지상 최대의 바이러스 쇼라니. 음모론의 스케일과 다양성도 ‘어벤져스급’으로 진화하는데, 웃어 넘기기엔 폐해가 극심하다.

민주주의란 무엇일까. 다름을 넘어서는 이기심과 극도의 어리석음을 목도하면서도 법적 조치도 분노도 자제하고 견뎌내야 하는, 지난한 득도의 과정인 것일까. 모세는 광야를 헤매는 동안 일어나는 온갖 천태만상을 보며 끝없이 기도하고 설득했다고 한다. 비겁하고 나약한 인간이란 존재는 예나 지금이나 무자비한 자 앞에 한없이 약하고, 관대한 자 앞에서만 발톱을 드러낸다. 그도 인간이라 신께 빌어 불벼락이라도 내리고 싶었을 텐데 끝없이 인내하며 스스로를 성찰했다고 한다. 모세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자 중 하나로 불리는 이유일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어디쯤에 있는 것일까. 교인이 비교인을 박해하고, 하고 싶은 말과 행동, 하면 안 될 말과 행동을 다하면서도 독재국가라 우길 수 있는 역설적 세계. 이곳은 광야일까 소돔일까. 민주주의가 가장 화려하게 꽃핀 시기일까. 고생 끝에 도착하니 젖도 꿀도 없었다는 가나안의 종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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