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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은 지키되 시도는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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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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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혁상 / 정치부장

   
 

전 세계를 뒤흔들었던 북한의 1차 핵실험 당일인 2006년 10월 9일.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그날 청와대에선 노무현 대통령과 갓 취임한 아베 신조 총리의 한·일 정상회담이 열렸다. 아베는 회담에서 침략전쟁과 식민지배에 사죄를 표명한 무라야마 담화를 그대로 계승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진 회견에선 “과거 일본이 아시아 각국 사람들에게 많은 손해와 고통, 커다란 상처를 줬다. 진지한 반성 위에 일본의 전후 60년 역사가 있다”고 했다.

이듬해 총리직을 사퇴한 아베는 5년 만에 다시 총리에 오른 뒤 본격적인 우경화 행보를 걷는다. 그동안 감춰왔던 진의가 드러난 것인지, 일본 극우세력의 혐한 분위기를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인지 그 기조는 갈수록 강해졌다. 과거사 언급이 있었지만 사죄의 수준은 오락가락했다. 우리 정부의 강력한 항의에도 야스쿠니신사 참배는 심심치 않게 이뤄졌다.

그러던 아베가 2006년 이후 9년 만인 2015년 11월 한국을 방문했다. 방한 전 “박근혜 대통령과 과제(위안부 문제)를 포함해 솔직한 의견 교환을 하고 싶다”고 해 일말의 기대감을 갖게 했지만, 정작 회담에선 과거사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정상회담이었지만 오찬도, 기자회견도, 성명도 없는 ‘3무 회담’으로 끝났다. 아베의 양면성이 그대로 드러난 모습들이다. 한 달 뒤 양국 정부가 공식 발표한 2015년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는 오히려 국내에서 많은 반발을 불렀다. 피해자들이 배제됐고 최종적·불가역적 문구가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논란 끝에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이 합의는 파기됐다.

더이상 나빠질 게 없어 보였던 관계는 2018년 우리 대법원의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 일본의 한국 화이트리스트 배제로 더 악화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3·1절 기념사에서 전향적 메시지를 보냈지만 일본의 태도는 바뀐 게 없다. 1998년 21세기 한·일 파트너십 복원을 선언한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이후 양국 관계는 언제나 롤러코스터를 타왔지만, 최근 한·일 관계는 수교 이후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한·일 관계 악화의 직접적 원인 제공자는 물론 아베다. 그는 보수우익 및 혐한 분위기에 편승해 의도적으로 한국을 비난해왔다. 그러면서 지지율을 관리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맞이한 아베의 퇴진은 출구가 보이지 않던 외교적 해법을 찾을 틈을 열어준 기회다. 새 일본 총리 및 내각과 우호 협력 관계 증진을 위해 협력할 것이라는 우리 정부의 입장도 그런 기대를 나타낸 것이다.

물론 일본 정치 상황과 여론을 고려하면 누가 총리가 된다 해도 양국 관계의 근본적 변화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정부는 이번 기회를 그대로 흘려보내선 안 된다. 전문가들은 최고지도자의 톱다운식 대화가 이뤄질 여지는 충분히 있다고 본다. 대화를 통해 일본의 수출규제가 철회된다면 더 어려운 문제에 대한 접근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특히 강제징용 문제까지 해결하기엔 갈 길이 멀다. 하지만 그 과정이 험난해도 시도는 해봐야 한다. 전문가들은 일본 보수 정권의 숙원인 납북자 문제 해결을 위한 북·일 정상회담 추진에 우리가 도움을 주면 일본 새 총리도 강제징용 문제 등에 전향적으로 나올 수 있다는 의견 등 많은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있다. 정부가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배상금을 지불하고 대신 일본 기업에 구상권을 청구하는 방안 등도 내놨다. 대의명분과 실현 가능성을 따져봐야 하겠지만 이런 구상까지 꺼릴 필요는 없다.

한·일 관계의 반전은 두 나라 지도자의 적극적 의지 없이는 불가능하다. 대화가 필요하다면 원칙은 지키되 작은 발걸음부터 소통을 시작해보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만 흘려보내는 것보단 낫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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