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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과 문화 강국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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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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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휘 /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 

‘기생충’ 이어 BTS의 성공 이면
개인기에 기반한 우수함 아닌
제도적 뒷받침 받은 한류 존재
한국의 문화 역량 인정 의미로

   
 

오늘은 두 개의 에피소드로 얘기를 시작하고자 한다. 80년대 중후반 대학을 다닌 필자에게는 지방에서 올라온 동기들이 유난히 많았고, 자연스레 학교 근처 하숙집에 들렀던 기억이 많다.

그 시절 대학생 하숙방 환경이 다 고만고만할 때이지만, 유독 부산에서 온 친구들은 뭔가 달랐다. 책꽂이에 일본 잡지도 많이 꽂혀있고, 옷 입는 스타일도 세련되고, 전반적으로 나름의 문화가 느껴졌다. 시간이 지나서 그 시절 부산은 일본 문화에 일찍 노출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어느 문화가 더 앞섰다는 게 ‘문화적으로’ 맞는 말은 아니지만, 부산에서 온 친구들은 시각적으로 분명히 달랐던 것은 사실이었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몇 해 전에 외교부로부터 스웨덴 주재 한국문화원장 공개 채용에 심사위원을 의뢰받은 적이 있다. 갔더니 다른 심사위원이 한 분 계셨는데, 내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내심 ‘대화보다는 다른 평가요소를 선호하나 보다’ 하고 있었는데, 마지막 면접자의 의욕적인 한마디가 들렸다. “스웨덴 하면 세계적 팝 뮤지션 아바(ABBA) 아닌가요? 제가 아바 음악을 사랑하듯이, 온 열정을 다해서 한국 문화를 스웨덴에 심겠습니다.” 이때부터 조용히 앉아 있던 옆자리 심사자의 말문이 열리기 시작했고, 잠깐 두 사람의 열띤 대화가 이어졌다.

심사를 마치고 그 외부 심사자가 이렇게 인사를 건넸다. “저는 자라섬 페스티벌을 기획한 사람입니다. 더 쉽게 말씀드리면, 재즈 가수 나윤선의 남편입니다. 제가 잘 모르는 걸 물어보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서요. 아바는 제가 가장 자신 있거든요.”

서론이 너무 길었다. 한국의 방탄소년단(BTS)이 그야말로 대단한 뉴스를 전해왔다. BTS는 지난주 토요일(9월 5일)자 빌보드 싱글차트에서 당당히 일등을 차지했다.

62년 빌보드 역사에서 1109번째 1위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올 초 오스카상을 휩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의 기세를 이어서, 가히 우리도 이제는 문화 강국으로의 입지를 다졌다는 자신감이 생겨나고 있다.

물론 한국의 문화 예술적 역량이 하루아침에 등장한 것은 아닐 것인데, 이미 오래전에 강수연씨가 베니스 영화제의 주인공이 되었고, 이영애씨의 ‘대장금’은 전 세계 92개 나라로 수출된 기록을 가지고 있다. 다만 과거의 업적이 상대적으로 개인기에 기반을 둔 우수함이었다면, BTS와 기생충은 일종의 제도적 차원의 뒷받침이 전제되었기 때문에, 종합적인 의미에서 한국의 문화 역량이 인정받았다는 평가가 가능한 것이다.

보통 국제정치학자들은 강대국의 능력은 군사·경제·문화, 이렇게 세 개 영역에서 압도적인 힘을 보유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문화’는 할리우드, 루브르 박물관, 만리장성은 물론 법치를 추진하는 힘이나 다른 국가들이 따르게 만드는 매력 등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곰곰이 따져보면 이 세 개 영역에서 균형감을 가지고 국력을 두루 갖춘 나라는 극히 드물다. 물론 나라마다 고유한 외교·안보 상황이 있겠지만, 미국, 중국, 유럽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군사·경제·문화’의 국력을 고루 겸비한 나라는 찾아보기 힘들다.

캐나다, 스위스, 북유럽, 호주, 중동의 부자 국가들은 물론, 특수한 배경이 있긴 하지만 일본 역시 진정한 강대국으로 보기는 어렵다. ‘평화 지향 주의’를 오랫동안 강하게 내걸고 있는 한국이 이제 분야별 역량을 갖춘 나라로 차츰 등장하고 있다.

부산에서 올라온 친구에게 자꾸 눈길이 갔던 이유는 결국은 당시로선 앞선 문화적 힘을 가진 일본에 대한 시선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아바 음악 하나만큼은 확실하게 알고 있다며 다른 분야에서는 말을 아낀 자라섬 기획자 인재인 감독 역시 글로벌 문화 역량을 갖추기 위한 바람직한 자세라고 생각한다.

BTS의 리더인 RM이 1994년생이니까 우리 나이로 이제 27살,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하나의 곡’으로 선정된 비틀스의 ‘예스터데이’가 빌보드 1위를 차지한 게 1965년, 당시 폴 매카트니의 나이가 23살이었고, 폴은 아직 세계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으니, 방탄소년단이 음악사에 길이 이름을 남길 시간은 아직 너무도 많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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