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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동포의 통일운동 그 역사와 현장재일총련통일운동사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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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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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규상 재일조선역사연구소장 온라인특강...6.15 미국위 8.15 해방75주년 초청강연

   
 

지난 8월 15일 온라인 상에서 총련(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 연구기관인 <재일조선인역사연구소>의 오규상 소장님을 초청강사로 모시고 “재일동포의 통일운동, 그 역사와 현장 – 재일총련 통일운동사를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8.15 해방 75 주년 기념 화상(Zoom) 초청 강연회>를 6.15 미국위원회(대표위원장: 신필영) 주최로 개최하였습니다.

우리 재미동포들과 총련 동포와의 공개적 만남은 비록 영상을 통한 만남이지만 아마도 이번이 처음이 아닐까 합니다. 그 동안 6.15 미국위원회를 포함하여 소수 재미동포 통일운동단체 임원들과 성원 일부의 재일총련 등 방문은 몇 차례 있었지만 이러한 총련동포와 재미동포와의 공개 만남은 판문점선언의 시대가 가져다 준 해외동포 통일운동의 진전된 변화라 생각합니다.

더욱이 이번 화상(Zoom) 강연회의 초청강사가 재일동포 2세(1948년생)이며 총련의 역사와 거의 개인의 삶을 함께 해온 분으로서 초,중,고급조선학교, 조선대학, 김일성대학 등에서 학위를 하고 1971년부터 2004년 은퇴할 때까지 조선대학 교수로 약 35년, 은퇴 후 2004년부터 총련 역사연구소에서 소장직을 수행하게 된 올해까지 약 15년을 학문과 현장운동을 병행해 온 분이기에 우리가 총련에 대한 현실감을 더 크게 느낄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강연을 시작하면서 오규상 소장은 강연 주제와 관련하여 우선 지난 75년 간의 재일동포와 총련의 조국통일사업 활동 전반의 6가지 기본 성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하였습니다.

총련과 재일동포들에게 조국통일사업 활동은 (1) 사상(이념), 정견, 신앙을 넘어선 민족적 애국과업으로서의 활동, (2) 이북(조선)의 조국통일방안을 지지, 실현하기 위한 활동, (3) 미국의 이남(한국) 강점 반대 및 ‘두 개의 조선(분단고착)’책동 반대투쟁 활동, (4) 미국 예속정권과 군부독재정권에 저항, 투쟁한 이남동포들의 민주화운동 및 조국통일운동 지지성원 활동, (5) 조국통일을 위한 남,북,해외동포 3자 연대,연합 활동 (6) 조국통일을 위한 국제여론 환기 및 국제적 지지자, 이해자, 협력자 구성 등 국제연대 활동 등 6가지 성격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였습니다.

오 소장은 이러한 6 가지 조국통일사업 활동을 기본 골격으로 하여, 재일동포들의 통일운동 역사를 시기별로 3단계로 구분하였습니다. 1단계(1945~1979)는 1945년8월 해방 직후부터 박정희 독재 정권이 끝난 1979년까지 35년간의 활동 시기이며, 2단계(1980~1999)는 전두환 군부독재정권이 시작되고 광주민중항쟁이 있던 1980년부터 6.15 선언 직전 해인 1999년까지의 시기이며, 3단계(2000~2020)는 최초의 남북정상간의 만남이 이루어진 2000년 6.15 선언 때부터, 비록 현재 교착상태에 처해 있지만 남북통일의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고 분석되는 2018년 판문점선언, 평양공동선언의 현재까지의 활동 시기입니다.

   
 
   
 

재일동포 통일운동 역사의 시기적 구분에 따른 3 단계를 요약 설명한 강연의 전체 내용은 링크해 드린 강연회 사진 26번에서 94번까지가 그 내용 입니다.

(사진 26~94 –
https://www.dropbox.com/sh/h31tqcxh8wmsgm8/AACAIeMbiuIfolVPImutpPVBa?dl=0)

약 한 시간에 걸친 강연을 통해 재일동포들의 해방직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조국통일운동을 시대사적으로 개괄 할 수 있었으며 질의응답 기회를 통해서 재일동포들의 운동과 삶을 현장감 있게 접할 수 있었습니다.

오규상 소장의 설명 중, 마음 아팠던 이야기는 재일동포들에게 회자(膾炙)된다는 “재일동포는 살아서 살 곳이 없고 죽어도 묻힐 곳이 없다”는 탄식조의 표현이었습니다. 우리 대부분의 재미동포들처럼 자신의 의지와 희망에 따라 해외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닌, 일제 식민통치의 결과로 강제적으로 일본에 살게 되었고 대부분 이남에 고향을 두고 있는데 이남이 제국주의 일본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새로운 제국주의 미국에 의해 지배 받는 꼭두각시 이승만 분단정권의 나라가 되어버려 고향에 돌아갈 큰 의미가 없어졌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주적인 통일조국이 건설되면 그때 가겠다고 결심하고 통일조국 건설을 바라며 보낸 세월이 벌써 75년 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현재 총련동포의 98%가 고향이 남측(한국)인 이유가 거기에 있다 하였습니다. 따라서 재일동포들에게 자기의 주권, 자기의 나라, 통일된 조국을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절실한지, 왜 재일동포들에게 조국통일문제가 민족최대의 과제, 민족최대의 숙원인지 그 절절함이 우리들에게 그대로 전해지는 듯 하였습니다. 우리 재미동포들처럼 통일운동을 조국애, 민족애, 역사의식, 정치사상의식, 정의감 등의 차원에서 하는 것뿐 아니라 자신들의 뿌리와 생존, 존재의 문제를 위해서 하는 것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질의응답 시간에 몇 분의 참가자들이 민단과 총련의 관계에 대한 질의를 하였습니다. 오 소장의 설명에 의하면 민단과 총련의 갈등은 원래 그리 크게 부각된 문제가 아니었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민단과 총련 사람들이 사적으로 가까이 지내기도 하는데 민단의 극소수의 지도급 인사들에 의해 갈등이 부각된 경향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한 예로, 남측(한국)국적을 가진 사람을 민단이라 하는데 현재 조선대학교 5천 명의 학생 중 50퍼센트가 대한민국 국적이며 민단 소속의 상당수 자녀들이 조선학교에 재학 중이라 합니다. 따라서 3세, 4세들에게는 민단과 총련의 구분이 그리 크지 않다고 합니다. 

다만, 민단과 총련이 함께 못 가는 근본 이유가 있는데 민단측은 박정희, 전두환 등 군사독재정권과 친미예속정권의 분단정책(두 개의 조선 정책)을 지지하고 미군의 이남 강점을 수용하기에 이를 반대하는 총련측과 연대, 연합이 어려운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7.4 남북성명의 때, 6.15 공동선언 때는 민단과 총련 공동주최로 대규모 동포대회를 개최하는 등 통일을 지향하는 남측 정책이 현실화 될 때는 민단과 총련의 연대 연합 활동이 활발해 지기도 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도 알듯이, 박정희가 유신헌법을 공포하였을 때 민단 내에 유신헌법 반대세력과 지지세력의 갈등이 노골화 되었고 결국 반대세력이 한통련을 결성하여 민단에서 나오게 되었는데 현재까지 민단과의 갈등이라는 것이 그러한 연장선에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질의응답 중 관심을 갖게 한 내용은 1959년 이북으로 10만 여명의 재일동포들이 귀국을 하게 되는데 그 이유가 당시에 재일동포 자녀가 동경대를 졸업해도 차별로 인해 일반 회사에 취업이 안되고 소위 파칭코 경리 자리 같은 곳만 일자리를 얻을 수 있고 일본 일반 실업률의 8배가 넘는 실업률로 생존 자체의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합니다. 따라서 재일동포들 사이에서 이왕 고생하는 것 조국에서 고생하자는 귀국 분위기가 형성되어 귀국 운동이 일어났는데 이남이 고향 땅이지만 제국주의 미국의 지배를 받는 이승만 독재정권이 있는 이남으로는 가고 싶지 않아 같은 고국인 이북(조선)으로 지원하여 가게 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재일동포 사회는 친인척들의 이북으로의 귀국 이후 이북 소식을 많이 듣게 되어 자연스레 이북에 대한 더 큰 관심을 갖게 된 변화가 있었다 합니다. 그 중, 이북을 지상낙원이라고 속여서 데려갔다는 말이 있는데 1959년이 6.25 전쟁이 끝난 후 6년 정도 밖에 지나지 않은 시기였기에 미군이 초토화시킨 이북이 지상낙원이라고 믿고 있던 재일동포는 한 명도 없었다 합니다. 단지 사회주의 국가인 이북이 사회주의 지상낙원 건설이라는 국가적 목표를 일반적으로 표현한 데서 그 표현이 악의적으로 와전(訛傳)된 것이라 설명해 주었습니다.

현재 재일동포 인구수는 일본정부 통계에 의하면 약 50만 정도이고 그 중, 총련 소속은 약 10만 정도로 판단한다고 하였습니다. 90년대 말 총련 신용조합 회원이 약 20만 이었는데 현재는 약 10만 회원이 있음을 그 근거로 생각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재미동포들도 200만 동포라 하는데, 한국국적은 약 90만 명(영주권자, 주재원, 유학생, 서류미비자 등)이고 미국국적이 약 100여만 명임을 볼 때, 재일동포들 경우도 일본국적자가 약 50만 정도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어 재일동포는 일본국적자 포함 현재 약 100만 정도 된다고 합니다.

전체 강연과 질의응답 시간을 통해 우리 재미동포들이 평소에 궁금해 하던 재일총련의 결성 배경, 형성 과정, 지난 70여 년의 활동 역사뿐 아니라, 오랜 동안 남측 미디어를 통해 그 관계가 부정적으로 그려져 왔던 민단과 총련 관계의 실제모습, 민단과 총련이 왜 분리 결성되었는지에 관한 역사적 배경, 현재 재일동포의 40퍼센트를 차지하는 연령층이 높은 2세들과, 60 퍼센트를 차지하는 3세, 4세들의 조국통일에 대한 견해와 감정, 세대 별 인식의 차이 등에 대한 강연과 답변은 그 동안의 잘못 이해하고 있던 부분들의 실상을 알게 되었고 또한 모르고 있던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조국통일운동에 대한 재일총련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다고 해도 무방할 총련 직속의 역사연구소 소장이신 재일총련동포와 재미동포들과의 이번의 공개적인 만남은 8.15 해방 75주년 기념의 자리로서 그 의미가 맞닿는다 생각합니다. 미완의 광복인 8.15 해방을 광복이 완성될 조국통일의 그날까지, 재일동포, 재미동포, 해외동포 모두, 그리고 우리 남북해외동포 다 함께 지치지 말고 조국광복의 완수를 위해, 조국통일을 위해 끝까지 나아가길 염원해 봅니다.

끝으로, 이번 강연에 대해 지역위 대표위원장 중 한 분의 말씀처럼 “역사 현장의 목소리로 재미동포들의 마음에 새로운 각오를 다지게 하신 오규상 소장님”께, 그리고 재일총련본부 및 6.15 해외측위사무국에 6.15 미국위 대표위원장님과 성원들의 감사 인사를 전해 드립니다.

그럼, 다시 소식 드리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6.15 공동선언실천 미국위원회 사무국 김동균 국장 드림

   
 

[글쓴이 : 김동균 6.15 공동선언실천 미국위원회 사무국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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