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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지 못한 영혼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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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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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호 /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

   
▲ 평화디딤돌은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끌려가 강제노동에 시달리다 숨진 희생자를 추모하는 상징물로 희생자의 고향 길바닥에 설치됐다. 2016년 4월5일 서울 종로5가역 부근에 설치되고 있는 평화디딤돌.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일본 홋카이도의 작은 절에서 스님을 만났다. 스님은 그곳에서 멀리 떨어진 산중의 댐 공사 현장에서 강제동원된 조선 사람들이 많이 희생되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어 숲속에 묻힌 유골을 찾아서 절에 모시고 있다고 했다. 희생된 분들의 유족에게 한시바삐 유골을 전해드리고 싶다고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벌써 오래전 1989년의 일이다.

   
▲ 정병호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

스님과 함께 찾아간 자작나무 숲 조릿대 무성한 땅속 어딘가에 여전히 많은 유골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일본에서 가장 추운 영하 42도 혹한의 땅에 세운 슈마리나이댐 공사 중 희생된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생사조차 모르고 있을 가족들이 생각났다. 비감한 마음에 그 자리에서 한가지 약속을 했다. 내가 한국에 돌아가 인류학 교수가 되면 학생, 동료들과 함께 와서 유골을 발굴하겠다고. 여러 해가 지난 1997년에야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

유골을 찾는 발굴 작업은 지표면부터 측량하고 기록을 해가며 한층씩 흙을 파 들어가면서 진행됐다. 변색된 흙의 흔적으로 삽 자국, 발자국까지 선명하게 드러나 매장 당시의 정황을 알 수 있었다. 하나둘 유골이 드러났다. 참혹한 주검이었다. 좁고 야트막한 구덩이 속에 관도 없이 쪼그린 자세로 꺾여 들어간 주검. 두개골 파열의 흔적이 역력한 주검. 나무뿌리에 뒤엉키고 삭은 뼈마디를 보며 지난 세월에 대한 아쉬움과 아픔을 느꼈다.

희생자 발굴 작업에는 양국의 전문가, 활동가, 대학생들이 참여했다. 가해자 측과 피해자 측의 공동작업은 특히 양국 젊은이들이 역사적 사실을 함께 확인하고 일제 강제노동 진상규명과 희생자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계기가 됐다. 일본 측 대표인 도노히라 스님은 유골 발굴의 의미를 “죽은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라고 했다. 자신의 손으로 파 올린 확실한 사실을 눈앞에 두었을 때 되살아나는 역사적 진실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유골 발굴 작업은 단순히 과거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일이 아니라, 서로 다른 입장과 가치관을 이해하고, 화해와 평화의 미래를 여는 프로그램이 되었다. 양국 시민단체는 지난 20여년간 함께 희생자 유골 발굴, 유족 조사, 현장탐방, 문화이해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기억, 추모, 화해, 인권을 주제로 하는 평화운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홋카이도에서 우리가 수습한 희생자 유해는 2015년까지도 유족들에게 전달되지 못했다. 유골 송환을 협의하던 한·일 정부가 독도 문제 등으로 몇차례 충돌한 뒤 더 이상 이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베 정부는 물론 한국의 박근혜 정부조차 광복 70주년보다 한-일 협정 50주년의 의미를 강조하면서 과거보다 미래를 향하자고 했다. 강제노동 생존자와 유족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중장년이었던 형제와 자식들도 노인이 되고 있었다. 억울한 희생에 대한 기억은 점점 사라져가고 있었지만, 유족 중에는 희생 현장의 흙 한줌이라도 선산에 묻어드려야 눈을 감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해 9월 추석, 한국과 일본의 민간단체는 그동안 발굴한 115구의 유해를 모시고 ‘70년 만의 귀향’을 단행했다. 양국 정부의 무시와 방해를 뚫고 진행한 일이었다.

두번 바다를 건너 홋카이도까지 끌려간 희생자들이 절망했다던 그 바닷길을 다시 돌아와 부산항에서 진혼노제를 지내고, 서울시립묘지에 안장했다. 희생자들이 살았던 고향 집 어귀에는 사라졌던 사람의 이름과 주소를 동판에 새겨 놓았다. ‘이 동네 사람’의 늦은 귀향을 알리는 ‘평화디딤돌’이라고 했다. 일본의 강제노동 현장에도 그곳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이름과 희생 경위를 새긴 동판을 놓았다. 국가권력이 외면하고 지우려고 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역사적 희생을 일상생활 공간에서 늘 새롭게 확인하고 되새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수많은 영혼들이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희생된 혼백은 홋카이도의 수풀과 오키나와의 동굴, 사할린의 동토와 남태평양의 정글, 낯선 나라의 절과 창고에서 뼈로, 재로, 흙으로 남아 해결되지 않은 잔혹한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한-일 국교 ‘정상화’ 55년, 그동안 양국 정부는 조선인 강제동원 희생자 문제를 방관했다. 이들과 함께 강제노역을 하다 희생된 연합군 포로와 중국인 징용자의 유해는 이미 오래전 고국으로 돌아갔다. 식민지 조선 출신은 죽음 후에도 차별받고 버림받았다. 이름마저 빼앗긴 채 모호한 통계 숫자로 정치 흥정의 대상이 되었을 뿐이다. 돌아오지 못한 그 영혼들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작업은 양국 관계를 진정으로 ‘정상화’하고 화해와 평화의 미래로 이끄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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