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0.9.16 수 18:01
재외선거, 의료보험
> 오피니언 > 본국지논단
한국인의 민족주의는 왜 유난스러운가
한국일보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20.09.14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이철우 /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1년 넘게 경색된 한일 관계가 지겹지만 사정이 좋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국내에서도 과거사에 집착하는 한국인의 민족주의가 지나치다는 여론이 있다. 많은 나라가 식민지 지배를 받았지만 이렇게 강렬히 그 기억을 떠올리며 과거의 경험을 부정하려는 민족이 있느냐고 묻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렇다면 한국인은 왜 그토록 일본의 지배를 받은 사실을 못 견뎌 하는 것일까? 그렇게 물으면 나는 세계 지도와 역사 부도를 펼쳐 보인다.

   
이철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차 대전 종전 후부터의 지도를 보면 많은 나라가 새로 태어났지만 소멸한 나라는 매우 드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집트와 시리아가 통일아랍공화국을 만들었을 때처럼 그리고 분단국 통일 같은 사정으로 소멸한 예는 있지만 다른 나라에 강제 병합되어 소멸한 경우는 없다. 나라가 아무리 엉망이고 타국의 위협이 아무리 심해도 주권은 존중된다. 이렇게 크든 작든 각국의 주권을 존중하는 가운데 평화를 도모하는 세계 질서를 흔히 '베스트팔렌 체제'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 체제가 1648년 베스트팔렌주 뮌스터와 오스나브뤼크에서 체결된 두 조약으로 갑자기 생긴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 후 300년에 걸친 우여곡절을 거쳐 형성되었다. 19세기 말까지 그 질서는 서유럽의 소위 '문명국'에만 허용되었다. 그것이 비서구 사회로 확대된 중요한 계기의 하나가 1899년과 1907년의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였다. 1899년 회의에는 불과 26개국이 참가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 중국, 태국, 페르시아만이 참가했다. 대한제국은 참가하지 않았으나 회의에서 채택된 3개 협약 중 두 개(헤이그 제2협약과 제3협약)에 1903년 가입함으로써 헤이그 체제의 일원이 되었다. 국제인도법의 시발점을 이루는 1864년의 첫 제네바협약에도 같은 해 이미 가입했고 이듬해 병원선협약에도 서명했다. 대한제국은 이로써 전쟁법을 준수하는 주권국가 공동체의 일원이 됐다. 그에 따라 1907년 만국평화회의에 초청되었으니 일본의 방해로 회의 참석이 저지된 것이 천추의 한이 된 것은 당연했다.

20세기 들어와 주권 국가로 존재하다가 타국에 병합된 사례로는 1936년 이탈리아에 강점된 아비시니아(이디오피아의 옛 이름)와 1940년 소련에 편입된 발트 3국, 나치 독일에 병합된 체코슬로바키아와 오스트리아가 있다. 이들의 병합은 모두 불법 무효로 귀결되었다. 베스트팔렌 체제의 일원이었다가 주권의 행사를 저지당한 한국이 인지하는 자국의 경험은 그와 유사하다.

그러한 자의식이 대한민국 외교의 원칙을 만들어냈다. 1965년 박정희 정부가 한일기본조약을 체결하면서 일본의 지배를 가져온 조약들이 처음부터 무효라는 입장을 견지했음은 잘 알려져 있다. 1986년 전두환 정부는 대한제국이 체결한 국제인도법 협약들이 여전히 효력을 지속함을 확인하면서 일본에 의한 병합의 불법 무효 및 대한제국과 대한민국 사이의 동일성과 계속성을 확언했다.

한국인의 지독한 반일 감정의 뿌리를 단군의 자손이라는 혈연 민족주의에서 찾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의 민족주의는 혈연의 신화보다는 주권의 기억에 터잡고 있다. 한국인의 의식을 구성하는 데 종족적 정체성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더 강력한 동력은 조선-대한제국-대한민국으로 이어지는 국가 계속성에 대한 믿음에서 나온다. 그 믿음은 과도한 민족주의로 비판받는 문재인 정부에 앞서 박정희, 전두환 정부가 확고히 선언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러한 인식에 바탕한 컨센서스가 유연한 대일외교를 가져오는 조건을 이룬다.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전체기사의견(0)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전체기사의견(0)
회사소개광고문의기사제보구독신청찾아오시는길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 110-888 서울시 종로구 종로 19 B동 1118호 (종로1가, 르메이에르종로타운) | Tel 02)2075-7141~3 | Fax 02)2075-7144
등록번호 : 서울특별시 아 01003 | 등록일자 : 2009. 10. 24 | 발행인 : 이구홍(전 재외동포재단 이사장)
개인정보취급담당자 : 최유정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유정
Copyright 2008 세계한인신문. All Rights Reserved.mail to oktime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