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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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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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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용구 / 객원논설위원·연세대 산업공학과 교수

정책 결정과정 잘 발효되면
사회를 이롭게 만들지만
부동산 문제처럼 모순 남발
시간 지날수록 상한 냄새 가득

   
 

사방으로 최소 서너 시간을 운전해야 바다를 구경할 수 있는 시골에서 어릴 적에 먹어본 생선이라면 자반고등어나 겨울에 오는 동태와 양미리가 다였다. 그런 내가 홍어란 이상한 음식에 매료된 때는 삼십 대 중반 즈음이었으며, 그 후로는 외국에서 연구년을 지낼 때도 우연히 본 홍어를 사다가 삭히기까지 할 정도로 즐기고 있다.

홍어의 맛은 좋은 말로 하면 발효의 맛이고, 다른 말로는 부패의 맛일 것이다. 발효와 부패는 무슨 차이일까? 둘 다 비슷한 과정을 통해서 진행되지만, 미생물이 만든 그 결과물이 받는 이에게 유익하면 발효이며, 해로우면 부패로 간주한다. 유익함과 해로움을 결정하는 과정은 적당한 온도와 습도 그리고 시간의 싸움으로, 잘 발효된 홍어는 천상의 맛으로 거듭나게 되지만 온도나 습도, 시간이 제대로 되지 못한 것은 역겨운 부패의 맛으로 변질한다. 다시 말해 발효는 환경, 시간과의 싸움이다.

발효처럼 공공 문제에 대한 의사결정 또한 환경과 시간과의 싸움이며, 그 결과물이 사회에 이로우면 잘된 발효와 같이 혜택을 받는 사회에 최상의 결과를 가져오지만 반대의 경우는 부패의 맛과 같다. 공공의 의사결정은 사회문제를 푸는 과정이다. 문제 해결을 위한 2단계 접근법은 `첫째, 문제를 파악한다. 둘째, 해결책을 찾는다`로 누구나 다 아는 방법이다.

하지만 지난 시절 정책집행자들이 실제 문제 해결을 위해 행한 의사결정 과정을 보면 대부분이 첫 번째 단계인 `문제를 파악한다`를 생략하고 바로 두 번째 단계인 해결책의 기술적인 부분에 집착했다. 문제 파악을 생략하면 문제를 둘러싼 환경을 무시하고 문제의 본질도 망각하게 된다. 따라서 환경 내 요인을 고려하지 않은 해결책은 시간이 지나 부패의 맛으로 변해간다. 그러한 부패의 맛을 숨기고자 다시금 기술적인 해결책에 집착하게 되니 모순되고 다양한 기술적인 정책만 남발되고 그것으로 감춰지지 않는 냄새를 또 다른 정책으로 덮으려고 시도한다.

이러한 의사결정 과정은 공공 문제의 본질은 해결하지 못하고 둘러싼 환경적인 부분만 악화시켜 부패한 음식물이 가스에 의해 부풀어 오르는 것처럼 문제만 더 확장한다. 대표적으로 지난 수년간 정부의 다양한 부동산 정책을 통해 우리는 문제의 본질 해결보다는 정책이 초래한 복잡성을 보았고, 그 복잡성이 일으키는 각종 부패의 냄새와 맛으로 사회는 고통받고 있다.

제대로 된 발효와 같은 과정을 거친 의사결정은 사회를 한 걸음 더 전진시킨다. 코로나19에 대한 의사결정으로 우리 사회의 내부 역량은 더 커졌고 성숙함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그 의사결정 과정을 보면 문제를 둘러싼 환경과 문제의 본질에 대한 전문가의 충분한 검토, 때에 맞는 결정, 그리고 항상 앞에 서 있는 책임자가 있었다.

하지만 서로 다른 생각으로 분열이 갈수록 심화하는 한국 사회 내에서 공공을 위한 정책들이 앞으로도 제대로 된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 이루어질지 걱정이다. 지금의 정책결정자들은 `일모도원(日暮途遠)`을 외치며 결정의 당위성만 말하고 초래될 결과에 대한 책임에 눈을 감고 있다. 부패가 예정된 정책을 당당히 밀어붙이는 태도는 우리 사회가 지난 시절, 정책 결정의 과정과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았던 관행과 관계가 있다. 책임을 묻지 않는 사회에서 어설프게 책임지는 사람은 도리어 바보로 여겨진다. 이게 우리 수준이다.

책임을 제대로 묻지 못하는 사회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듯이, 진일보를 위해서 부패의 역겨움을 초래한 자들에게 사회는 제대로 책임을 물어야 한다. 날이 저물고 갈 길이 멀다고 해도 `도행역시(倒行逆施)`는 아니다. 그래도 하려면 최소한 `The buck stops here(책임은 내가 진다)`를 말하고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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