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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차 고구려 역사유적 및 산성을 답사하다간도되찾기운동본부와 고구려 유적 역사탐방
이일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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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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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걸 / 한국간도학회 회장]

2008년 7월에 대전의 간도되찾기운동본부 회원들과 가족회원들의 8월 고구려역사 탐방에 대한 안내 및 지도 요청이 와서 참가하기로 하였다. 일정은 8월 13일부터 18일까지 단동페리호를 이용하여 실제 4일간의 역사탐방인 셈이었다. 참가인원은 25명으로 초ㆍ중ㆍ고생 자녀들이 7명이 포함되었다.

이번 답사일정은 학생들이 포함되어 집안 일대의 장군총, 환도산성 등 고구려 유적과 국동대혈, 환인의 흘승골성, 마창구 장군묘 등으로 계획하였다.

   
 

8월 13일 인천항에서 오후 5시에 출항하였으며, 저녁 식사를 한 후 갑판에서 둘러앉아 남자 회원들끼리 소개를 하면서 회식 시간을 가졌다. 마침 이 때가 올림픽경기가 열리는 기간이라 선내에서는 올림픽경기가 생방송되고 있었다.

이튿날 단동항에 8시에 도착하여 10시에 출국수속을 받는데 중국 직원이 나의 가방만을 열어 보자고 하였다. 그때서야 내가 블랙리스트에 올랐음을 일 수 있었다. 나의 가방 안에는 중국이 추진한 “요하문명론‘을 비판한다는 나의 시론이 들어 있기에 걱정이 되었다. 이 시론은 24명의 참가 회원들에게 나누어 주기 위해 준비한 것으로, 간도신문에 2회에 걸쳐 연재했던 “요하문명론을 비판한다”는 내용이었다.

또한 서길수의 ‘고구려성 답사기’ 및 김원용이 저술한 고고학 서적 두 권이 있었는데 이를 모두 압수하기에 직원에게 항의를 하였다. 이에 담당 과장이 와서 검토후 출국시에 돌려준다고 하였다. 가방을 검사하는 이들은 우리글을 아는 직원이었다.

그러나 4일 후 출국시에 담당과장을 만나 빼앗긴 책 등을 돌려달라고 했지만, 그들은 해당 책 등이 중앙정부에 올려가서 검토하고 있다는 등, 귀국 후 인천 세관에서 돌려준다는 등 헛소리를 하였다. 왜 당신이 4일전 약속한 것과 다르다고 항의를 했지만 못이기는 척하고 귀국했던 일이 새롭다.

특히 참가회원들에게 나누어주기로 한 “요하문명론을 비판한다”는 시론의 내용을 소개해본다. 중국은 두 해 전 2006년 6월부터 심양의 요령성 박물관에서 “요하문명전”을 개최하는 등 “요하문명론”을 전개시켰다. 이는 중국이 동아시아지역의 고대 문명 이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문명을 만들어 내었다는 점이며, 중국이 자랑하는 황하문명보다도 더 오랜 문명이라는 것이다. 중국이 새로 만든 문명은 그들의 문명이 아닌 홍산 문화 유적으로 이름만 ‘요하문명’이라고 바꾸었던 것이다.

황하문명보다도 더 오랜 서기전 7000년에서 서기전 5600년에 이르는 시기에 홍산 문화 유적에서 동북아 최고의 신석기 문화인 소하서 문화, 흥륭와 문화, 사해 문화 등이 발견됐다. 중국은 이 홍산 문화 유적 일대의 문화를 요하문명이라 이름 짓고 중국문명의 기원일 뿐만 아니라 국가형성의 전형을 갖추었다고 주장했다. 이미 중국은 2002년 동북공정의 추진을 공식화하면서 동시에 “하상주단대공정”과 “중화문명탐원공정”을 실시하여 중국의 역사적 연원을 왜곡시켰다.

즉 중국 역사의 시작은 ‘사기 12제후연표’에 의하면 기원전 841년 서주 말 공화원년이다. 그런데 중국은 하(夏) 왕조의 시작을 기원전 2070년으로 확정하여 기존의 역사를 무려 1229년이나 앞당겼다. 또 상나라는 기원전 1600년에 건국하였고, 주나라는 기원전 1046년에 건국하였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중국은 중화문명탐원공정까지 추진하여 중국문명의 역사는 5000년 안팎이 아니고 1만년, 1만2천년이 되어 세계문화의 정통성이 중국에 있으며 중국문명이 세계 최고 문명임을 주장하려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주변 국가들의 역사를 무시하는 역사 패권주의인 동시에 문화 패권주의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런데 왜 중국은 새삼스레 요하문명론을 들고 나오는가. 그 밑바탕에는 황하문명보다도 더 오랜 홍산 문화 유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홍산 문화 유적을 그들은 중국문명의 시원이라고 치켜세우고 있으며, 이 요하일대가 중국문명의 발생지라는 것이 요하문명론이다. 특히 1973년 요령성 객좌현에서 대량 발굴된 청동기 유물 중에 나온 세칭“기후방정(箕侯方鼎)”과 “수이홤환뢰(獸耳銜環罍)”에 새겨진 명문을 “기후(箕侯)”와 “고죽(孤竹)”으로 잘못 해석하여 상말주초(商末周初) 시기의 “기자”와 “고죽국”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즉 상(商)의 멸망 후 기자가 5천명을 이끌고 조선으로 갔다는 문헌의 기사를 원용하여 마치 이 유물들이 기원전 11세기 전후의 유물인 양 둔갑시키고 있다. 이와 같은 허구의 ‘기자동래설’에 우리나라 일부 학자들도 호응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다.

지금까지 중국은 황하문명보다 선진화된 문화가 다른 지역에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었다. 그러나 출토된 홍산 유적의 고고학적 연대 수치로 볼 때, 홍산 문화가 중원의 다른 문화보다 훨씬 발전하였음을 입증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은 황하문화보다 앞선 이 홍산 문화를 중국의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에 의거 자신들의 문화로 만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중국은 요하문명론을 제기하면서 기존의 고대 민족 분포도를 재편성하였다는 점이다. 즉 5제 시대 3대 집단을 우하(虞=夷 夏) 집단과 신농씨화족(神農氏華族) 집단 및 황제(黃帝) 집단으로 구분하였으며, 우하(虞=夷 夏) 집단은 대문구 문화와 양자 문화가 대표적이며, 동남연해 도작(稻作) 농업지역이 활동 범위였다. 신농씨화족(神農氏華族) 집단은 앙소 문화가 대표적이며 중원의 속작(粟作) 농업지역이 주요 활동 범위였다. 황제 집단은 홍산 문화가 대표적이며, 연산남북지역이 활동 범위이며 어업과 수렵이 주요 경제활동이었다.

이와 같은 중국의 고대 민족분포도의 재편성은 새로운 민족공정인 것이다. 왜냐하면 과거 전통적인 중원 중심의 화하족(華夏族)과 산둥 반도-장강 하류-발해만 일대의 동이족(東夷族) 분포를 부정하고 발해만 일대의 연산남북지역을 황제 집단으로 규정함으로써 고조선, 부여, 고구려를 대표하는 한민족(韓民族)과 선비. 거란, 여진 등 북방계의 동이족도 황제의 후손으로 규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동이족을 하족(夏族)의 일부분으로 규정하였다. 결국 한민족(韓民族)도 저들이 주장하는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에 의거하여 한순간에 중화민족으로 변화하였다.

더구나 홍산 문화 유적 중 우하량의 여신묘에서 출토된 “여신두상”을 두고 “중화민족의 공동 조상”이라 기술하고 있으니 놀라울 일이다. 본래 황제 집단인 중원의 화하족(華夏族)과 동남 연안지역에서 북방에 이르는 동이족(東夷族)은 엄연히 다른 문명권이었다. 즉 비파형 청동검, 청동 거울 등의 분포도가 고조선의 영역임이 입증되었다. 상(商)을 세운 민족도 홍산 유적지의 동이족이 남하하여 세운 국가임이 기존의 학설이다.

기자가 동천하여 평양부근에 수도를 정하였다는 그들의 주장은 허구이며, 결코 기자는 요하를 넘지 않았다. 기자조선의 시조는 “기후방정” 24자 명문에 나타나는 오씨(吳氏)이며, 이 오씨(吳氏)를 순(舜)이 요(堯)와 작당하여 북경지역으로 축출해버린다. “기후방정”의 명문은 5제 시기의 요(堯)와 순(舜) 그리고 이들의 장형(아저씨)인 오(吳)와의 관계를 나타내는 내용이다.

저들이 주장하는 바는 세칭 “기후(箕侯)”두자의 명문만 해석했을 뿐 그 내용의 해석이 틀렸을 뿐만 아니라 아래의 글자인 오(吳)의 의미조차 해석하지 못하였다. “기후(箕侯)”의 고금문 내용은 순(舜)의 시기에 일어난 사건이며, 이때 제작된 것으로 본다면 저들이 주장하는 세칭 상말주초(商末周初)의 기자조선의 시기와는 약 천 여년의 착오가 생긴다.

또한 저들이 주장하는 세칭“고죽(孤竹)”의 명문 해석도 틀린 것이다. 이 명문은 하(夏) 왕조를 세운 계(啓)와 계의 아버지 우(禹) 및 어머니 사모무(司母戊), 그리고 사모무의 사위인 백익(伯益)의 관계를 나타낸 것이다(후에 우의 아들인 계는 어머니인 사모무와 백익 일행을 아버지 우의 제삿날에 몰살시킨다). 즉 “사모무의 사위인 백익이 임금(왕)이 되어 나아가 대를 이어라”는 내용이다.

이와 같이 고금문에 담긴 글자의 내용을 전혀 모르면서, 세칭 고죽(孤竹)의 명문조차 왜곡시키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변방의 소수 민족들이 애초부터 대중화민족의 일원이었으며, 이들 민족의 역사와 문화도 현재 중국 영토 내에 있기 때문에 중화민족의 역사이며 문화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주장의 근거로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을 제기하였던 것이다.

이제는 중국의 문화 원류마저 왜곡시키고 우리 한(韓)민족의 문화를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내세운 것이 바로 요하문명론이다. 즉 중국인들이 아시아에서 가장 오랜 문명인 우리 민족의 고대문명인 홍산 문화를 그들의 문명으로 왜곡시켜 이 지역이 고대로부터 역사적으로 중국의 영토라는 것을 홍보하기 위한 전략인 것이다.

이와 같이 중국이 새로 만든 ‘요하문명’의 본질은 우리 선조들이 만들어낸 ‘홍산 문화’를 빼앗기 위한 것이다. 서기전 6세기에 공자는 ‘논어’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천리 북쪽에 군자국이 있는데 그곳에서 살고 싶은 것이 나의 소원이다.” 공자가 말한 군자국이 바로 홍산 지역이었다.

우리 일행은 단동시 압록강변의 ‘조선대주점’에서 한식으로 점심을 먹은 후 압록강을 따라 집안시에 도착하였다. 광개토대왕릉비와 장군총과 고구려 고분 오회분 4호, 5호를 관람하였다. 그런데 우리 일행이 가는 유적지 마다 중국 공안원이 2명이 승용차를 타고 따라 오는 것이 보였다. 단동에서 나의 가방을 검사하고 난 후 그들이 취한 조치로 보인다.

우리가 관람했던 4호분 고분 벽화는 십 여 년 전에 본 시기보다 검게 퇴색된 점이 아쉬웠다. 장군총 역시 북쪽의 받침돌이 없는 부분의 쌓은 돌들이 제법 기울어져 보인다. 중국 측의 고구려 유적 보존이 매우 소홀해 보였다. 이미 그들은 동북공정을 추진하면서 고구려의 흔적지우기를 동시에 실행하고 있는 것이다. 

집안지역도 네 번째 답사로 왔기에 남다르게 애착이 간다. 우리 동포 부부가 운영하는 한식당인 ‘고향촌’에서 식사를 하였다. ‘고향촌’ 식당은 지난 2001년에도 들린 곳이다. 이 식당에 다녀간 인사들의 명함이 수없이 꽂혀있다. 내가 아는 지인들도 보인다. 나의 명함을 주고 나왔다. 우리 일행은 숙소인 호텔에서 다과회로 오늘의 하루를 되돌아보는 등 간단한 토론회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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