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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를 기억하는 나라, 지우는 나라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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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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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연 / 객원논설위원·서울대 명예교수

한국과 닮은 ‘고난의 역사’ 이스라엘
물가 잡고 벤처산업 키운 지도자들
역사에 이름 남겨 功過 모두 기억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기 마련
과거 부정하며 미래 만들 수 없다

   
 

대한민국과 이스라엘은 1948년 같은 해에 독립했다. 이스라엘의 초대 총리 다비드 벤구리온은 두 번에 걸쳐 모두 13년 동안 집권했고, 우리나라의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12년 동안 집권하며 각 나라의 기초를 쌓았다. 지정학적 여건은 동병상련이었다. 우리는 6·25전쟁이라는 골육상잔을 치렀고 이스라엘은 주변국들과 열 번에 가까운 전쟁을 겪었다.

유대 민족사는 우리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극심한 고통이었다. 유대인들은 로마 침략군에 의해 2000여 년 전 예루살렘에서 추방된 후 세계 각지를 떠돌며 살아야 했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오로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나치에 의해 수백만 명이 처형되었다. 이런 형언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유대인들은 스스로를 하늘의 선택이 아니라 저주받은 민족으로 여기지 않았을까?

이스라엘은 그렇게 기약 없이 오랜 세월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이 다시 모여 세운 국가다. 현재도 900만 인구의 절반 정도는 다른 나라에서 태어난 뒤 이민 온 사람들이다. 특히 1990년대 초반, 구소련이 해체되는 과정에서는 100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한꺼번에 이주해 왔다. 낯선 땅에서 시작하는 삶은 누구에게나 도전적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국민들이 끊임없이 도전하면서 이제는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고 있는 나라다.

현재 이스라엘의 1인당 연간 국민소득은 4만3000달러에 이르지만, 1970년대 중반부터 10여 년 동안은 한 해 인플레이션율이 300%를 훌쩍 넘는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택시를 타고 내리는 틈에도 화폐가치가 크게 떨어지기 때문에, 먼저 요금을 내고 타는 버스보다 택시가 더 저렴했다는 시절이다. 이런 국가 존망의 위기를 이스라엘은 어떻게 극복했을까?

1984년 9월, 연 350%의 인플레이션율을 기록하던 무렵 총리로 취임한 시몬 페레스는 우선 경제 운영을 기업들의 자유경쟁 체제로 바꾸었다. 이스라엘은 키부츠라는 집단농장의 예에서 알 수 있듯 사회주의 특성이 강한 나라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당 출신 페레스는 노사 모두를 치열하게 설득해 노동임금과 제품의 시장가격을 동결하고 정부 지출을 대폭 삭감했다. 노사정(勞使政) 협상이란 단어는 이때 만들어진 것이다. 그가 총리직에서 물러난 1987년 인플레이션율은 20% 미만으로 안정되었다.

페레스는 1995년 다시 총리로 취임했는데, 이렇게 일하며 정성을 기울인 정책은 기술혁신과 벤처산업 육성이었다. 이를 위해 그는 투자 위험의 대부분은 정부가 떠안지만 보상은 철저히 창업자들에게 돌아가는 요즈마(Yozma) 펀드를 발족시켰다. 이는 청년들의 도전정신에 불을 지폈고, 이를 계기로 이스라엘은 소위 창업국가로서 확실하게 자리 잡았다. 페레스는 팔레스타인과의 평화를 이룬 공로로 1994년에 노벨 평화상도 받았다. 이스라엘 국민들은 페레스가 평생 추구했던 두 가지, 즉 ‘평화와 혁신’을 그의 기념관 명칭으로 남겨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대기업 경쟁력이 상당히 취약한 나라다. 대기업 발전은 당연히 세계 시장 확보가 그 관건인데, 이스라엘은 이에 어려움이 많은 듯싶다. 예를 들어 ‘메이드 인 이스라엘’ 자동차가 있다면 많은 국가들은 석유를 지닌 아랍권의 눈총 때문에 수입을 주저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제품 외양에는 나타나지 않는 소프트웨어나 부품 산업에 이스라엘이 매진하는 이유다. 그런 측면에서 이스라엘은 대한민국의 삼성이나 현대 같은 대기업을 몹시 부러워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도 경제를 이끄는 이런 대기업들에 대한 긍정적인 견해가 훨씬 더 많아지면 좋겠다.

벤구리온은 1952년 2차대전 피해 보상협정을 독일과 체결했는데, 그 과정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치열했던 국민저항으로 남아있다. 경제적 지원을 받기 위해 나치 범죄에 눈감았다는 비판은 아직도 남아있지만, 이스라엘을 찾는 외국인들은 모두 ‘벤구리온 국제공항’에 착륙한다. 그리고 ‘국립 벤구리온대’는 이스라엘이 자랑하는 세계적 교육연구 기관이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이다. 요즈음 우리 세태는 과거 지도자들의 그림자를 들추어 그 이름을 지우는 데만 힘을 쏟는 듯하다. 우리도 지난날의 리더십을 기려야 한다. 미래는 과거의 연장이다. 과거를 송두리째 부정하면서 밝은 미래를 만드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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