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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이 필요한 이유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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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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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기 / 산업부장

   
 

아무리 중요한 기사도 마감시간을 지키지 못하면 다음날 신문에 실리지 못한다. 그래서 마감시간에 임박해 큰 사건이 터지면 신문사 편집국은 호떡집에 불난 것처럼 난리가 난다. 지난 7일 스웨덴 노벨위원회의 노벨 화학상 수상자 발표를 앞두고도 마감시간 때문에 크게 긴장을 해야 했다.

노벨상 수상자 발표는 한국시간으로 저녁 7시쯤 이뤄지는데, 첫번째 판 마감을 1시간 반 정도 앞둔 시점이다. 우리 국민들의 관심이 크지 않은 외국인 수상자라면 기사 한 꼭지 정도를 쓰는 데 크게 무리가 없는 시간이다. 하지만 이날은 해외 유명 학술정보 분석기관이 한국인인 현택환 서울대 석좌교수를 유력한 수상 후보로 지명한 터라 상황이 좀 심각했다. 현 교수가 수상한다면 밤 11시쯤인 마지막 판 마감시간까지 1면은 물론 안쪽의 몇 개 면을 채울 관련 기사들을 취재하고 작성해야 한다. 대한민국 최초의 노벨 과학상(생리의학·물리·화학상) 수상은 나라엔 큰 경사지만 담당 기자와 데스크에겐 매우 힘든 시간이 되는 거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 교수의 수상은 다음을 기약하게 됐고, 우리가 잔뜩 긴장하며 기다렸던 힘든 상황도 발생하지 않았다.

노벨상 수상이 나라의 지상목표가 될 필요는 없다. 학교에서 우수상을 많이 받았다고 행복한 삶이 보장되는 것은 아닌 것처럼. 그럼에도 노벨상을 많이 받은 미국(385명), 영국(134명), 독일(109명), 프랑스(69명), 스웨덴(32명), 일본(28명) 등을 보면 노벨상 수상이 그 나라의 국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분명하다.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세계 12위(2019년 기준)로 나름 경제 강국의 반열에 오른 셈이다. 그런데 노벨상 수상자는 김대중 전 대통령(평화상) 단 한 명으로, 국가 순위가 공동 52위에 처져 있는 것은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다.

노벨 과학상 수상자가 한 명도 없다는 것은 한국의 과학기술 기반이 취약하다는 얘기다. 기초과학 분야인 노벨상은 타지 못해도 실질적으로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국민들을 먹여살릴 산업(또는 산업기술)은 발전돼 있지 않으냐고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자랑하는 산업 부문에서도 속을 보면 원천기술 부족으로 모래 위의 성 같은 것들이 많다. 반도체 산업의 경우 메모리반도체는 삼성전자를 필두로 하는 한국 기업들이 세계 1위를 달리고 있지만 생산 단계에서 없어서는 안 될 장비와 소재의 국산화율은 각각 20%와 50% 정도에 불과하다. 지난해 일본이 반도체 핵심 소재 수출규제를 하자 한국 반도체 산업의 위기론이 불거진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지상 123층에 높이 554.5m로 서울 강남에 우뚝 서 있는 롯데월드타워도 세계에서 5번째로 높은 건물로 한국 건축의 자부심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이 건물을 지을 때 측량은 스위스 회사가, 토목설계는 영국 회사, 건축 및 구조설계는 미국 회사들, 풍동설계는 캐나다 회사, 외벽공사는 일본과 미국 회사가 담당했다. 고부가가치 영역인 핵심 설계와 작업은 모두 외국(모두 노벨상을 많이 받은 나라들이다) 회사가 했다.

물론 짧게는 100여년, 길게는 200여년 전부터 기초과학과 원천기술을 연마해 온 유럽과 미국, 일본에 비해 1990년대 이후에야 정부의 과학기술 발전 지원이 본격화된 한국은 아직은 격차가 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단기 성과주의에 매몰돼 있는 한국 정부와 기업들의 과학기술 정책도 노벨상 수상을 늦어지게 하는 주요 요소로 지적되고 있다.

한강의 기적으로도 불리는 한국의 경제성장은 놀라운 성과임에 분명하다. 이를 통해 우리 국민들의 삶도 크게 개선됐다. 하지만 그동안 우리의 성장은 선진국에 대한 모방과 추격을 바탕으로 이뤄져 왔고, 이제는 이런 성장 전략이 한계에 달하고 있다. 중국 등 다른 나라들이 우리가 성공했던 많은 분야를 추격해 이미 상당부분 추월한 상태다.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계속 하락하며 위기가 거론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위기를 극복하고 우리 경제가 새로운 성장동력을 얻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는 하지 못하는 첨단 고부가가치 산업을 일으켜야 하고, 이는 노벨상을 탈 정도의 독창적이고 혁신적인 기초과학과 원천기술의 토대에서만 가능하다. 그래서 노벨상 때문에 편집국이 한밤중에 불난 호떡집이 되는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란다. 노벨상이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이어서가 아니라 한국의 미래에 대한 희망의 불씨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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