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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유럽 민주주의 약화와 중동 카오스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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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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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향 /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센터장

미국·유럽 중동정책 실패로
이란·터키 온건세력 힘잃어
바이든이 대통령 당선돼도
새바람 일으키기 어려울듯

   
 

최근 미국·유럽의 민주주의 후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매년 전 세계 민주주의를 측정하는 프리덤하우스는 2020년 보고서에서 안정된 선진 민주주의 20여 개국의 민주주의 약화에 주목했다. 해당 나라의 지도자는 개인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인종 차별주의와 국수적 민족주의를 선동했다. 세계주의 대신 자국 우선주의를 당당히 외쳤다. 위로부터 몰아친 포퓰리즘으로 표현의 자유, 법치, 정부의 기능이 훼손됐다.

미국 민주주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집권기 빠르게 후퇴했다. 2017년 이래 프리덤하우스지수가 4포인트 하락해 현재 라트비아, 슬로바키아보다 낮은 등급을 기록하고 있다. 이탈리아, 스페인, 오스트리아, 헝가리, 폴란드에서도 반이민을 내세우는 우파 포퓰리즘과 안보 우선주의가 확산되면서 시민 자유와 정치 권리 수준이 내려갔다.

미국·유럽의 민주주의 약화는 분쟁 취약지대 중동의 카오스로 이어졌다. 2018년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적 이란 핵협정 탈퇴와 고강도 제재 부활은 서막에 불과했다. 2020년 새해 벽두 미국은 이란 군부의 최고 실세 가셈 솔레이마니 사령관을 이라크 바그다드 공항에서 드론으로 살해했다. 대통령의 깜짝 결정이었고 별다른 대안도 없었다. 미국의 솔레이마니 제거작전 이후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예멘, 가자지구 내 친이란 꼭두각시 조직은 역내 미군시설과 미 동맹·우방국을 상대로 보복 공격을 시작했다. 이미 예멘 후티 반군은 사우디아라비아 정유시설을 수차례 공격했고 아랍에미리트 핵심시설마저 위협해 국제 원유시장이 요동쳐왔다. 이스라엘도 레바논 헤즈볼라, 가자지구 하마스의 잦은 로켓 발사에 맞대응 공습 수위를 높였다.

이란 강경파는 때를 놓치지 않고 핵합의 파기를 선언했다. 당시 이란 내에서는 민생고 시위대 유혈진압을 지휘한 솔레이마니 사령관에 대해 비난 여론이 거세게 확산되고 있었으나 미국의 제거작전 이후 분위기는 역전됐다. 솔레이마니 폭사 이후 이란 강경파는 대미 복수를 천명했고 핵합의를 지지한 개혁파의 입지는 추락했다.

유럽마저 난민 문제 앞에서 보편 가치를 외면했다. 2016년 유럽연합은 터키에 유럽행을 희망하는 시리아 난민 관리를 맡겼다. 대신 파격적 액수의 지원금과 유럽연합 가입의 빠른 추진을 약속했다. 프랑스, 그리스, 키프로스가 난민 인권침해를 우려해 반발했으나 유럽연합과 터키 간 난민협정은 전격 성사됐다. 첫 이행은 그리스에 머물던 시리아 난민의 터키 송환이었다. 헝가리,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가 난민 유입을 막기 위해 국경을 차단하고 오스트리아도 이를 적극 지지하면서 유럽행 난민 4만여 명이 그리스에 발이 묶였다. 이들을 터키로 되돌려 보낸 후 터키 정부에 난민 선별과정을 일임한 것이다. 위험한 발상이었다. 터키의 민주주의 지수는 지난 7년간 30포인트 떨어졌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일인체제 강화로 인해 현재 터키의 민주주의 등급은 중동의 대표적 장기 독재국가 알제리보다 낮다.

터키는 유럽연합과의 합의를 지키지 않았다. 유럽연합은 난민 처우개선 지원금 60억유로를 건넸으나 터키는 시리아 국경지대 강화 군사비로 전용했다. 놀랍지 않았다. 터키는 최근 패권주의 성향을 드러내며 일탈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2019년 시리아 쿠르드계 자치지역에 기습 군사작전을 감행했고 2020년 리비아 내전에 자국군과 용병을 보냈다. 이어 리비아의 이슬람주의 통합정부와 그리스의 배타적 경제수역을 침범하는 협정을 일방적으로 체결했다.

다가오는 미대선 결과가 중동의 획기적 변화로 이어지긴 어려울 것이다. 지난 몇 년간 역내 강경파의 장악력이 견고해졌기 때문이다. 조 바이든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어 중동에 새바람을 일으키고 싶어도 이에 응해줄 이란과 터키의 온건 세력은 힘을 잃은 지 오래다. 미국과 유럽 실책의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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