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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퍼디’와 아메리칸 드림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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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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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섭 / 기자

   
▲ 지난 8일 '제 퍼디'퀴즈 쇼 진행자 알렉스 트레벡이 췌장암으로 사망한 뒤 할리우드 명예의 전당 거리에 그의 사진이 걸려있다.[AP 연합뉴스]
   
▲ 정지섭 기자 

지난해 11월 미국 국민 퀴즈쇼라는 ‘제퍼디’에 K팝 관련 문제가 나왔다. “이 K팝 그룹은 2017년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에서 ‘DNA’를 부르면서 미국 TV에 공식 데뷔했습니다.” 1984년부터 진행을 맡은 사회자 앨릭스 트레벡이 문제를 읽자 한 참가자가 잽싸게 ‘BTS’라고 답하며 문제에 걸린 2000점을 얻었다. 이 장면은 인터넷을 타고 곳곳에 퍼졌고 K팝 위상을 다시 확인해준 장면으로 화제가 됐다.

1984년 출범부터 이 퀴즈쇼 사회를 맡은 진행자 트레벡은 췌장암 투병 끝에 지난 8일 80세를 일기로 숨졌다. 조 바이든의 대통령 선거 승리와 도널드 트럼프 현 대통령의 선거 불복 소식이 언론을 장식했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트레벡 부고와 제퍼디 관련 뒷얘기는 미국 사회를 다채로운 추억의 세계로 이끌었다. 출연자들이 긴장해 있을 때 트레벡이 편안하게 이끌어줬다는 참가자 후일담, 어린 시절 이 프로를 보며 시사 상식 공부를 했다는 중장년들 추억담이 온라인과 소셜미디어에 쏟아졌고, TV와 신문들은 암 투병 중에도 끝까지 마이크를 놓지 않은 그의 직업 정신을 조명했다.

트레벡이 돋보인 것은 그와 퀴즈쇼가 보여준 정신 때문이다. 단순히 장수 진행자의 타계를 추모하는 게 전부는 아니다. 교양지 스미스소니언 매거진은 “제퍼디의 장수 요인은 그 안에 깃든 ‘아메리칸 드림’ 정신이었다”는 트레벡의 생전 인터뷰 기사를 내보냈다. 인종·빈부·학벌 등에 상관없이 정직하게 노력해 실력을 쌓으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고, 경쟁자는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는 아메리칸 드림 정신이 구현된 프로그램이었다는 얘기다.

제퍼디의 형식은 36년간 거의 변화가 없었다. 우승은 오로지 실력과 기본기가 좌우한다. 어려운 문제일수록 배점이 높고, 부저를 빨리 눌러야 답변 기회가 온다. 오답이 많을수록 벌어놓은 점수를 까먹으며, 최종 라운드에서 걸 수 있는 판돈 한도는 얻은 점수 내에서 제한된다. 출발선이 공정하니 우승자 중엔 여성이나 흑인, 아시아계 등 소수 인종이 적지 않다. 말투나 몸짓으로 짐작하건대 활발한 사회생활이 쉽지 않았을 듯한 출연자가 종종 결승선을 통과했고, 경쟁자들은 기꺼이 따뜻하게 축하하는 가운데 엔딩 타이틀이 올라갔다.

이런 모습은 퀴즈쇼 바깥 속 미국 현실과 딴판이다. 최악의 인종 갈등과 날로 벌어지는 빈부 격차, 막말과 말 끊기로 점철된 후보 토론과 가짜 뉴스, 음모론이 판친 선거판은 미국인을 넘어 세계인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미국인들은 트레벡이 제퍼디를 진행하며 보여준 실력·공정·승복의 정신이야말로 지금 미국 사회에 필요하다고 본 건 아닐까. 방송국은 트레벡이 사회를 본 마지막 녹화분을 오는 크리스마스에 방영한다. 정쟁에 지친 미국인들에게 “아메리칸 드림을 꿀 수 있던 예전으로 돌아가자”는 희망의 메시지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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