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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간 도덕의 간극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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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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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수 / 논설위원

피해·가해자 상반된 기억탓
옳고 그름의 판단도 달라져
정치인들은 표를 얻기 위해
그 간극 키운 행태 반성 필요

   
 

정부가 한일 관계 개선 의지를 보이고 있다. 지난달에 박지원 국정원장을 일본에 특사로 파견한 데 이어 일본통인 강창일 전 의원을 주일대사로 임명했다. 이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정책 방향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은 한·미·일 동맹 강화를 위해 한일관계 개선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양국 관계 개선은 험난하다. 두 나라 간에 `도덕적 간극`이 너무 크다는 게 문제다. 두 나라는 과거에 대한 기억이 너무 다르다. 그 과거와 연결된 현안에 대한 도덕적 판단 역시 매우 다르다. 우리 눈에 옳은 게 그들의 눈에는 틀린 것이고, 그들의 눈에 옳은 게 우리 눈에는 원통하기 짝이 없다.

도덕적 간극의 뿌리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서사가 다르다는 데 있다. 심리학자 바이어마우스터는 실험 참가자들에게 남을 화내게 했던 사건과 남 때문에 화가 났던 사건을 떠올리게 했다. 피해자들의 서사는 이랬다. "상대의 행동은 오랜 학대의 역사에서 최근의 사건이었을 뿐이다. 가해자의 행동은 비합리적이고 무분별했다. 그가 입힌 피해는 막대하고 고칠 수 없다. 그도 나도 결코 그 일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가해자의 서사는 완전히 달랐다. "당시에 나는 그렇게 행동할 이유가 있었다. 피해는 쉽게 고쳐지는 것이었고 나는 사과했다. 이제 그 일은 잊고 과거는 과거로 남길 때다."

나는 양측의 서사를 읽고 깜짝 놀랐다. 지금 한일 국민의 정서를 상당 부분 반영하고 있어서였다. 우리에게 일제 만행의 피해는 너무나 막대하다. 잊을 수가 없다. 반면 일본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피해를 갚았고, 역대 총리들이 충분히 사과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인식의 격차는 옳고 그름의 판단을 완전히 다르게 한다. 징용 피해자 배상이 그런 경우다. 한국 대법원은 "청구권협정은 일본의 식민지배 배상을 청구하기 위한 협정이 아니다"라며 일본 기업은 한국인 징용 피해자에게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반면 일본은 `청구권 문제가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는 청구권협정 조항에 따라 법적 배상 책임을 부인한다.

현실적으로 한일 간 도덕적 간극을 완전히 없애는 건 불가능하다. 가해자의 후손은 선조의 잘못을 지우고 싶다. 반면 피해자의 후손은 그 잘못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다. 그 과정에서 가해의 기억은 흐릿해지고 피해의 기억은 강화된다. 도덕적 간극이 더욱 커지는 원심력이 작용하는 것이다. 그 결과, 양측 간의 불신과 미움이 커지면 양국 관계는 악화 일로로 치닫게 된다. 과거에 발목 잡혀 미래가 희생당한다.

양국의 정치 지도자들은 이런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도덕적 간극을 관리할 책임이 있다. 불신과 미움 대신 화해와 용서를 추동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정치인들은 종종 그 정반대로 행동한다. 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해 피해자와 가해자의 서사에 동조한다. 상대에 대한 불신을 부추긴다. 일본이 한국에 수출규제 조치를 취했을 때 여권에서는 `이적 대 애국` 프레임이 튀어 나왔다. 일본 정치인들도 극우파의 표를 얻기 위해 한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는 말을 반복했다. 지금 최악이 된 양국 관계는 도덕적 간극에 편승한 정치인들 탓이 크다.

고(故) 김대중 대통령은 1998년 일본 의회에서 이런 연설을 했다. "역사적으로 일본과 한국의 관계가 불행했던 것은 약 400년 전 일본이 한국을 침략한 7년간과 금세기 초 식민지배 35년간입니다. 이렇게 50년도 안 되는 불행한 역사 때문에 1500년에 걸친 교류와 협력의 역사 전체를 무의미하게 만든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두 나라의 선조들에게, 그리고 장래의 후손들에게 지탄받을 일이지 않겠습니까?" 김대중 대통령이 살아 있다면 최근 10년의 역사를 어떻게 평가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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