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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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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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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 / 전 독일 뮌스터대학교 사회학 교수

   
 

‘잃어버린 1년’이라는 말이 나도는 이 한 해의 끝자락에 우리는 와 있다. 코로나19의 대유행으로 올해 봄에 있었던 1차 록다운에 이어 성탄절과 연말을 코앞에 두고 유럽 곳곳에서 2차 록다운이 시작되고 있다. 내가 반세기 넘게 살았던 독일은 물론, 1년 전에 이주해서 사는 포르투갈도 그렇다. 한국의 사정은 이보다 낫다고 하지만 낙관만 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닌 것 같다. 오랫동안 과도한 소비문화와 결합한 축제지만 기독교 문화권에서 성탄절이 지니는 특수한 의미를 생각할 때 록다운의 충격은 역시 작지 않다. 가톨릭의 전통이 강한 포르투갈에서 성탄절은 가족과 친지가 만나는 일 년 중 가장 귀하게 여기는 축제의 시간이다. 이 시간을 놓칠세라 노인들은 이른 아침부터 코로나 무료검진을 받기 위해서 보건소 앞에 줄을 선다.

<전염병과 사회>의 저자 프랭크 스노든은 전염병은 우리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지적하면서 이를 통해 우리는 장래를 어둡게도, 밝게도 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는 일찍이 사마광(司馬光)이 치정(治定)의 거울로써 과거를 뒤돌아본다는 뜻에서 그의 역사서를 <자치통감(資治通鑑)>이라 했던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

세계화, 정보혁명, 4차 산업혁명처럼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의 징표를 보여주는 몇 가지 화두는 이미 우리에게 매우 친숙해졌다. 그런데 코로나 위기와 함께 ‘뉴노멀’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지금까지는 비정상적인 상태로 보였던 것들이 정상적인 것처럼 여겨지는 새로운 상황을 맞았다는 뜻이다. 2008년의 금융위기와 더불어 시작된 저성장과 저금리 시대의 경제생활을 주로 지칭했던 이 단어는 코로나 시대에 들어서 생긴 우리 생활의 전반적인 변화를 압축적으로 표현하는 새로운 화두가 되었다. 중국에서는 ‘신상태(新常態)’라고 번역하지만 한국과 일본에서는 영어 발음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오랫동안 익숙했던 우리의 생활세계가 지난날처럼 지속될 수 없을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 예년 같으면 성탄절에 가족과 친지가 둘러앉아 큼직한 통거위구이를 나누어 먹는 독일에서도 올해에는 참석자의 숫자가 핵가족 외에 성인은 네 사람으로 제한되었다. 대가족 전통이 아직 살아있는 포르투갈에서도 ‘바칼라우’라 불리는 전통적인 대구포 요리를 먹는 성탄절에 통금은 해제되지만 같은 가구에 속하지 않으면 최대 다섯 명까지만 자리를 함께할 수 있다.

금년 초만 해도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이러한 제약들을 유럽 사회는 2차 록다운을 맞으면서 대부분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그만큼 코로나 위기가 절박해졌다. 물론 이런 사회적 통제를 여전히 ‘코로나 독재’라고 비판하면서 개인의 자유는 결코 포기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어떤 국가나 정부도 개인의 쾌락과 행복을 강제로 뺏을 수 없다는 이런 견해는 다양한 개인들이 모여 사는 공동체를 위한 규율을 부차적인 문제로 본다. 그래서 강한 집단주의적인 정치문화를 지닌 동아시아권의 나라들이 코로나 위기를 개인주의적 전통이 오래된 서양 문화권에 속하는 나라들보다 더 잘 대처할 수 있었다고 자주 이야기된다.

자유가 개인이 자신의 쾌락만을 추구하는 행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둘러싼 논쟁은 동아시아가 서구의 문물을 만나면서부터 계속 있었다. 일본 메이지유신 시기의 계몽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가 유럽을 둘러보고 쓴 <서양사정(西洋事情)>에서 자유를 뜻하는 네덜란드어 ‘프라이하이드(vrijheid)’는 제멋대로 행동해도 되는 방종(放縱)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누누이 강조했다. 동아시아 문화권에는 그가 비판한 자유에 대한 이런 몰이해나 오해를 오랫동안 각인(刻印)시켰던 유교적인 전통도 있지만, 열반(涅槃)의 경지에 이르려는 마음의 평정한 상태를 자유로서 이해한 불교나 인위적인 도덕이나 법제를 비판한 도가(道家)의 흐름도 있었다.

어떻든 개인의 자유나 권리 이해에 있어서 서양과는 다른 동아시아의 특이한 정치문화가 코로나 위기에 대한 효과적인 대처에 끼친 긍정적인 역할은 분명하지만 이 지역에서 2003년의 사스(SARS) 때 얻었던 방역 경험도 큰 도움이 되었다. 사스로 인해 당시 8500여명의 감염자가 생겼고 이 중에 80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백신이 개발되지 못한 상황에서도 7개월 만에 사스 위기는 종식되었다. 그러나 이번 코로나 위기는 이와는 도저히 비교할 수 없는, 말 그대로 대재앙이다. 지구촌에서 오늘까지 7600만명의 감염자가 발생했고 165만명이 숨졌다.

모두가 긴장 속에서 기다렸던 코로나 백신이 드디어 개발되고 이에 이은 접종이 영국과 미국에서 얼마 전 개시되었다. 러시아와 중국도 자기 나라가 개발한 백신의 접종을 이미 시작했다. 모든 문제가 백신만으로 해결될 수도 없지만 안전성과 효능, 공급망의 확보, 분배의 공평성 등 백신이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은 많다. 다행스럽게도 이 해가 가기 전에 코로나19가 만들어낸 어둡고 긴 동굴을 빠져나갈 수 있는 출구의 빛은 보인다.

저무는 한 해 우리는 모두 코로나 사태로 크고 작은 불편과 고통을 경험했다.

특히 가족과 친지를 코로나로 인해 잃은 많은 사람과 아직도 병상에서 사투를 벌이는 무수한 사람을 기억해야 하는 이번 성탄절은 진정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 되었으면 한다. 올더스 헉슬리는 ‘우리를 환상으로부터 근본적으로 보호해주는 것은 자신의 모습을 한번 거울 속에서 들여다보는 것 이상은 없다’고 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몰고 온 우리 시대의 지구적 재앙과 위기가 바로 그런 거울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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