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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사회에 남성학(男性学)이 필요한 시점
정음문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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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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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화 / 연변대학 사회학과

한 집안의 맏며느리로서 딸만 줄줄이 네명 낳은 죄로 대를 끊기게 했다고 평생 기를 못 펴고 살았다는 어떤 할머니. 그래서 숙명처럼, ‘당연하게’ 시동생네 아들 하나를 양자로 들여야 했다는 서글픈 이야기. 오로지 아들을 보자는 집념으로 딸을 내리 8명이나 낳고 아홉번째로 끝끝내 귀하디귀한 아들을 봤다는 아래 층 할머니…

어려운 형편 때문에 그토록 다니고 싶었던 공부를 그만두고 장차 집안의 '큰 사람'이 될 오빠, 남동생 뒷바라지를 위해 고된 농사일을 해야만 했다는 어머니들. 딸이라서 이런저런 차별대우를 받았던 어린 시절의 서러움이 두고두고 울분을 토해도 가셔지지 않는다는 언니, 여동생들…

마치 아득히 먼 조선시대 일들 같지만 이게 바로 우리네 할머니, 어머니, 언니들 그리고 '나'의 이야기이고 우리네 아픈 추억들이다.

오랜 세월 동안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결혼은 자녀 특히 아들을 낳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으며 이는 유교적 부계친족원리에 의한 것이기도 했다. 즉 부계적 혈통의 계승을 목적으로 하는 가족에 있어서 부자관계는 모든 대인관계의 중심에 있었으며 형제관계는 물론 부부관계마저도 이러한 부자관계에 종속되어있었다. 따라서 결혼한 여성은 대를 이어나갈 아들을 출산함으로써 비로소 시댁의 정식 구성원으로 인정받고 부계친족 안에서 확고한 지위를 차지하게 되는 것이었다. 한편 아내가 아들을 낳지 못할 경우 남편은 공공연하게 소실을 맞는다든지 아니면 부계 친족 내에서 양자를 들이는 등 보조적인 방법을 취하기도 했다.

그래서 다음은 제발 아들이기를 기대하는 절실한 마음을 담아서 딸들에게는 ‘후남’,'말녀', '말희', 아들이 아니라서 '언년', 그리고 아들에게는 귀하게 얻은 아들이라서 '귀남', '귀동' 등등 웃긴다기보다는 더 슬픈 울림이 인상적인 이름들을 지어주기도 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 귀한 아들들이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기 시작했다. 딸을 낳았다면 무의식간에 터져 나오는 부러움과 환호소리, 첫째가 아들이면 다음에도 아들일가 봐 둘째 낳기를 주저주저하는 분위기. 아들만 둘이라면 '대놓고' 안쓰러운 눈길들이 느껴지는 요즘이다. 남아선호사상이 빠르게 사라지고 대신 딸의 가치가 유난히 돋보이는 시대적 변화라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렇게 아들 선호로부터 딸 선호로 바뀌게 되었을까.

그 이유를 더듬다보면 남성과 여성의 사회경제적 지위 및 가족 내 남편과 아내의 권력과 역할변화에 대응하는 조선족사회의 젠더질서 재편성 즉 이른바 '남성성', '남성다움'/'여성성', '여성다움'의 새로운 정의 규정에 생긴 불균형을 감지하게 된다.

미국의 여성인류학자 마거릿·미드(Magarret Mead)는 일찍 1930년대 뉴기니아 세 마을에 대한 현지조사를 바탕으로 쓴 《세 부족 사회의 성(性)과 기질》이라는 저서에서 우리가 흔히 본질적으로 타고났다고 생각하는 남성성/여성성이 사실은 개별 사회의 역사적 과정에서 생성됨을 지적한다. 따라서 남성성과 여성성의 내용은 각 사회의 집단적 생존 전략 특히 성별에 따른 남녀의 생계활동 참여와 인구 재생산·육아 활동의 내용에 의해 좌우지된다.

우리 민족의 전통적 가족에 있어서 남편은 밖에 일 즉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생산노동에 종사하고 아내는 집안 일 즉 가사나 육아, 돌봄노동에 종사하는 것으로 역할분업이 이루어져왔으며 따라서 남편은 '바깥사람', 아내는 '안사람'으로 불려왔다. 새 중국이 창건된 후 조선족여성들의 높은 취업률과 사회적 활약에도 불과하고 이러한 가정 내 역할분담은 쭉 이어졌다. 또한 남녀평등을 기본국책으로 하는 정치적 대환경 속에서도 아들을 낳지 못하면 시댁에 당당하지 못했고 무엇보다 노후가 크게 걱정됐다. 우리의 전통 관념에 있어서 그 만큼 아들은 부모의 노후를 봉양해 마땅한 보험 같은 존재였으며 그에 비해 "딸은 아무리 좋아봤자 출가외인이요, 사위는 백년손님"이라 도무지 눈치가 보여서 말이다.

그런가 하면 '근면하고 헌신적이며 온순한' 조선족의 여성성·여성다움은 과히 '자랑할
만한' 민족적 표상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기도 했으며 이러한 전통적인 젠더규범에 기초한 여성성의 이미지는 가족생활에서의 구체적 실천을 통해 한층 업그레이드 되어왔다. 반면에 이렇듯 우수한 여성상과 달리 조선족남성들은 '권위적이고 게으르며 술을 좋아하고 허풍을 좋아하는' , '문제적 남자'로서의 이미지를 굳혀오면서 때로는 풍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한편 우리 밖의 세상은 어떤 변화들을 겪어왔을까. 서구의 초기 산업화 사회에서 남성이 생계 부양자이자 공적인 일을 맡고 여성은 이른바 사적 영역인 가정에서 가사와 육아를 전담하는 가정주부로 되는 과정을 거쳐 산업사회 후기 여성들의 대거 경제활동 참여는 곧바로 가정과 일을 양립시켜야 하는 근대적 여성성의 위기로 이어졌다. 그리고 20세기에 들어서면서 거대한 여성해방운동과 더불어 여성학, 페미니즘의 지적 탐구가 시작 되였으며 20세기말에 이르러서는 드디어 여성들의 어깨에 지워졌던 이중적 역할 규범들이 크게 완화되었다. 여성이 일터에서 마음껏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났으며 최고의 정치지도자나 경영인, 연구자로 자리매김하는 게 더 이상 놀랄 만한 일들이 아닌 것으로 됐다.

이러한 여성성에 대한 재 정의와 더불어 정복과 경쟁의 표상으로 굳혀진 기존의 남성성에 대한 여성들의 '파괴'와 '남성다움'의 재구축 또한 빠르게 진행되었다. 예를 들어 여성을 강하게 리드해나가고 무뚝뚝하고 외모나 단장에 대한 무신경한 남자대장부로부터 친절하게 소통할 줄 알고 보살핌에 능하고 유모아적이고 청결한 신사의 이미지로 말이다.

이러한 세계적인 젠더질서의 변화와 맞물리듯이 우리 조선족사회 역시 1990년대를 전후로 큰 변화들이 생긴다. 조선, 러시아 보따리 장사부터 해외이주노동에 이르기까지 조선족여성들은 분야를 막론하고 가정 경제에 크게 한몫 했으며 의사결정권 등 가족내 권력구조에서도 아내의 목소리가 더 힘이 있는 듯한 가정이 다수를 차지하지 않을까 할 정도로 역전세를 보이고 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남편이 아내와 함께 가사노동, 육아를 분담하는 게 보통 현상이고 보란듯이 아이를 앞에 안고 다니는 아빠들이 흔하다.

그런가 하면 이제는 딸이 아니라 아들이 '시집'간 게 아닌가 착각할 정도로 결혼한 딸 가족과는 밀접하게 왕래하면서 딸 신세를 '대놓고' 본다. "잘난 아들은 사돈댁 아들, 못난 아들이 진정한 내 아들”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만큼 며느리는 어렵고 아들은 부담스러운 존재로 되어버렸다. 과거에는 잘 키워놓기만 하면 스스로 인생을 개척해서 부모를 봉양했던 든든한 아들들이 말이다.

아들의 이러한 가치변화는 앞서 언급했던 젠더질서의 재편성과정에서 여성과 남성 사이에 생긴 불균형이 중요한 원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즉 여성성에 비해 거의 변한 것이 없는 남성성에 대한 고정인식과 막연한 기대감, 사실 우리는 아직까지도 남자가 여자보다 여러 가지 조건이나 능력에서 우위를 차지해야 한다는 전통적인 젠더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결혼식은 남자 집에서 더 많이 지출해야 하고 아들을 장가보내려면 집을 장만해주거나 상응한 경제적 지원을 해줘야 하며 출산은 시댁에 후손을 낳아주는 것이기에 몰라라 하면 욕을 먹는다. 반대로 딸 가진 부모에게 이 모든 것은 의무가 아니라 선택이기에 해주면 고맙고 안 해줘도 그만이다. 거기에 가정의 생계는 남편의 의무라는 전통적 가치관 역시 변함이 없다. 그래서 아들은 결혼 후에도 필요할 경우 부모가 경제적 지원을 해줘야 하는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어버리고 아들 키우기가 점점 힘든 시대가 되는 것이다.

모든 조선족 남성들을 통틀어 하나의 균일한 집단으로 규정하는 시각에는 문제가 많다. 제도적인 젠더특권을 누리면서 여성 억압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여성의 입장에서 배려하는 남성도 있고 자기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만도 벅차서 역차별을 당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모두가 우리가 기대하는 만큼 우수할 수도 없고 또 우리가 무조건 부정적으로 야유하고 실망할 만큼 형편없는 것도 아니다. 1990년대로부터 페미니즘, 여성학에 자극되어 본격적으로 등장한 남성학의 대표적인 시각중 하나가 남성 내부의 차이와 불평등 연구이며 남성이 힘들고 괴로운 사안의 대다수가 여성우위에서 오는 게 아니라 무리하게 남성우위체제를 유지하려는 데서 발생한 부작용이라는 게 그 대표적인 주장이다.

현재의 우리에게 필요한 시각이기도 하다. 남성의 문제만이 아니다. 우리네 남편이고 형제고 아들들이며 가족이다. 남성성과 남성다움도 전통적인 '강한' 이미지로부터 해탈되어야 함을 인지해야 하고 그 다양성과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므으로써 환상에 가까운 집착을 버려야 한다. 이 또한 새로운 차별과 편견의 불씨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시대의 발전에 걸맞는, 진정으로 평등한 젠더질서의 재구축이 무엇보다도 시급한 지금이다.

남아 선호 사상이 해체되는 것은 바람직한 것이지만 또 다른 특정성별에 대한 선호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아들이든 딸이든 우리에게 오는 아이들은 다 똑같이 귀하고 소중한 존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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