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규철 / 재미언론인, 본지 편집위원 ]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규모를 대폭 늘리기 위한 법안이 국회에 상정중이다. 현재 평통위원의 규모를 7천명 이상이라고 규정한 조항을 2만 명 이상으로 개정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일각에서는 재외 국민 참정권을 노린 사전 포석이라는 지적이다. 하지만 평통 감투를 해외 동포들에게 뿌려댄다고 과연 해외 동포들의 표심이 한나라당으로 쏠릴지는 의문이다. 우선 미주 한인 사회가 갖고 있는 평통에 대한 이미지 자체가 부정적이다. 무용론을 넘어서 평통 폐지론이 절대적이니 말이다.

때문에 미주 한인 사회에서 평통위원이라는 감투에 대한 인기 자체가 별로 인기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14기 민주평통위원을 모집하는 과정에서 일부지역에서는 미달사태가 벌어질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런 판국에 평통 위원 감투를 재외 동표들의 표심과 연결시킬 수 있다는 발상을 갖고 상정한 법안이라면 그야말로 관계자들만의 착각이 아닐지?

하긴 평통 위원 모집철만 되면 한국까지 달려 나가 로비를 해대는 인사들의 숫자도 만만치는 않은 것이 현실이다. 문제는 이러한 사람들의 면면을 자세히 살펴보면 지역 사회에서는 대접받지 못하는 인사들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이다.

여하튼 현재의 규정만으로도 평통 위원의 숫자를 늘리는 것은 별문제가 없다는 생각이다. 규정이 7천명 이상으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상한선이 없으니 평통 위원의 숫자를 얼마로 하느냐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마음에 달려있다.

현재 국, 내외 평통위원의 숫자는 1만 7천여 명에 달한다. 전두환 전 대통령시절 8천여 명의 규모로 출범한 민주 평통의 규모가 2배 이상으로 비대해진 셈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MB 정권을 포함해 역대 정권들이 대선이 끝난 후 보상차원에서 뿌려댄 평통 감투 때문이다.

사실 대선 때만 되면 당선 가능한 유력 후보들에게 줄을 대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해바라기들이 엄청나게 등장한다. 평통의 부의장, 중앙위원, 상임위원 그리고 지역 협의회의 회장 감투를 쓰고 있는 인사들의 면면을 보면 모두가 지난 대선에서 자칭 일등공신들이다.

또 모두가 하나같이 자신들의 이념적 성향은 MB 정부와 코드를 맞추기 위해 보수라고 말들을 한다. 때문인지 일각에서는 미주 한인 사회를 지칭해 보수 성향이 강하다는 평가를 내놓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미주 한인사회의 특성상 김정일 정권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훨씬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을 통칭해 보수라고 평가하는 것에 대해서는 무리가 있다는 생각이다. 미주 한인들이 보수적인 공화당보다는 진보적인 민주당을 지지하는 비율이 훨씬 높다는 사실만 보아도 말이다.

그런데 MB 정권은 왜 굳이 민심까지 등져가며 법령개정이라는 무리수를 두며 법령을 2만 명 이상으로 고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일까?

사실 정부 차원에서는 하나도 손해 볼 것이 없는 장사가 평통위원 증원문제이다. 국회사무처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현재 지역 협의회 운영과 관련 정부 예산투자는 미미하다. 부의장 활동비가 월 30만원 그리고 지역 협의회 운영을 위해 지원되는 경비는 월 150만원이다. 사무실 유지비도 안 되는 금액이다. 나머지 모든 운영 경비는 위원들의 몫이다. 스스로 평통 위원직을 사퇴한 모 대학교수는 “대통령에게 남북 평화 통일을 위해 자문하는 헌법기관의 위원들이 시간을 내어 봉사하는 것만으로도 부족해 회비납부를 강제 한다는 사실은 모순이라는 생각입니다”라고 밝혔다,

그런데 이보다 더 웃기는 것은 한일도 없는 사람들에게 연말만 되면 정기 포상이라는 명분으로 훈장에 대통령표창까지 남발해대고 있는 모습이 아닐까 싶다.

14기 평통이 출범한 것은 지난 7월이다. 한일이라고는 출범식과 그들만의 친선을 위한 골프대회가 고작인데 평통 사무처는 지난 10월부터 지역 협의회를 통해 연말 포상 대상자를 모집(?)하고 있다. 한일이 없는데 무엇을 기준삼아 포상을 하겠다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 때문인지 LA지역 협의회에서는 대통령 표창 때문에 위원들 간에 시비가 일고 있다. 미국 애틀랜타 협의회가 훈장 포상자로 추천한 인물에 대해서도 뒷말이 무성하다. 이번에 지역 협의회가 훈장을 상신한 인사는 이미 한인 회장 임기를 마치며 공관을 통해 대통령 표창을 수상한바가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평통의 지역협의회가 훈장을 상신했는데 대통령 표창 수상 당시나 마찬가지로 한인 사회의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 때문이라고 한다. 공적을 재탕까지 해가며 훈장을 상신하고 있는 평통협의회의 모습을 어찌 해석해야 할지?...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왜 주고 받는지도 모르는 것이 민주평통의 포상 제도라는 것이 한인들의 평가라는 사실을 사무처 관계자들은 알고 있을까 싶다.

여하튼 MB 정부가 차기 대선에서 재외 국민들의 표심을 얻겠다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문제가 별로 인기도 없는 평통 감투를 남발하는 방법보다는 오히려 현지 사회의 여론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 우선일 것이다.

또 허구한 날 한국이나 들락거리는 일부 해바라기들의 주장을 현지 한인들의 여론으로 착각하는 것은 금물이다. 혹시 평통의 관계자들이 ‘내가 언제 야당 하는 것을 보았느냐는 사람’, ‘엄청난 돈을 뿌리고 산 감투를 자랑스럽게 앞세우며 스스로를 미주 한인 사회의 대표자로 자처하는 사람’, ‘조직은커녕 투표권도 없는 사람이 세계 재외국민 참정권 대표자를 자칭하는 모습’을 미주 한인들의 수준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는 말이다.

민심은 등져도 평통 감투만 뿌려대면 차기 대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 한나라당의 생각이라면 하루빨리 착각에서 깨어날 것을 권하고 싶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