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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띠해, 소의 기상을 말하다
정음문화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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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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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월매 / 천진사범대학교 교수

   
 

음메~음메~ 올해 2021년은 신축년 소띠해이다. 60년만에 돌아온 신축년은 흰 소띠해라 한다. 중국 동한 때 처음으로 열개의 천간과 12개의 지지를 묶어 년도를 표시했는데 그 기준으로 소띠는 ‘축(丑)’이란 글자를 활용했고 이 때부터 신축년이란 표현에 소띠해로 부르게 되었다 한다. 십이지중 두 번째 순위인 동물 소, 역사와 문학 속에서 소가 지니는 의미는 무엇일가?

소는 근면과 순박과 우직한 힘의 상징이다. 고대 농경사회에서 힘이 센 소는 인간의 생산 활동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노동력이었다. 소는 쟁기를 끌어 밭을 갈고 수레를 끌어 짐과 사람을 날랐다… 사람들은 농사일과 일상생활에서 소에 의지하는 부분이 굉장히 많았기에 소를 가족과 같은 소중한 존재로 여겼다. “소는 농가의 조상이다”, “애비 없이는 살아도 소 없이는 못 산다”는 소의 중요성을 나타내는 말들이고 “소 팔아 공부 시킨다”, “바늘도둑이 소도둑이 된다”는 당시 전 재산에 해당될 만큼의 소의 가치를 간접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소같이 일해라”, “소같이 벌어서 쥐같이 먹어라”는 비록 느리지만 잔꾀를 부릴 줄 모르고 근면하고 우직하며 꾸준한 소를 따라 배우라는 교훈적인 말들이다.

유일한 재산으로서의 소를 둘러싸고 이야기가 전개되는 문학작품으로는 한국의 극작가 유치진의 희곡 <소>(1934)를 들 수 있다. 작품은 1930년대 한국 농촌을 무대로 하고 있다. 소작농 국서(局瑞)의 가족은 소 한마리가 유일한 재산이다. 이것을 몰래 팔아서 한몫 장만하려 드는 둘째아들, 소를 저당 잡혀서 서울로 팔려갈 처지에 놓인 이웃집 처녀를 구하고 나아가 그 처녀에게 장가들고 싶어 하는 큰아들, 끝내는 밀린 소작료의 대가로 소를 몰아내려 드는 마름과의 옥신각신이 우습강스러운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그러나 끝내는 이 집안 그리고 마을 전체의 비극으로 끝나는 이 작품은 작가의 현실 고발과 연극적 재치가 균형을 잘 이루고 있다. 유치진은 이 극으로 인하여 일제경찰에 구속당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소는 평안함과 여유로움, 풍요와 복의 상징이다. 그림에서 소를 타고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노닐거나 피리 부는 목동을 태우고 한가로이 거니는 모습은 세속을 벗어난 여유로움을 느끼게 한다. 한국 한시 이색의 <목우음(牧牛吟)>, 성현의 <제금자고목우도후(題金子固牧牛圖後)>에서 소를 기르고 소를 타는 이러한 행위들은 시적화자인 시인들이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는 것과는 먼 것으로, 그러한 주변의 공간은 평안함과 여유로움의 공간으로, 언젠가는 돌아올 유토피아공간으로 그려져있다. 여기에서 소는 명리의 경계 밖에 있는 구속 없는 여유로움의 존재이다. 조선 중기 이후로는 누운 소 그림이 전해지고 있는데 편안히 누운 소 모양의 땅은 풍수지리상 명당으로 여겨질 만큼 복을 상징한다고 한다.

마음의 평안함과 여유로움, 중국작가 위화의 소설 <살아간다는 것(活着)>에서도 하이라이트를 장식하는 에필로그에서 늙은 소가 된 주인공 복귀(福貴)를 통해서 이를 말해주고 있다. 주인공 복귀는 격랑의 중국 근현대사의 흐름 속에서 가족을 모두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고 늙은 소와 달랑 남는다. 도살장에 끌려가 인간들에게 고깃덩어리가 될 번한 소를, 게다가 농사짓기에는 너무 늙어 별로 쓸모없는 소를 사서 자기와 합일화하는 노인의 자존과 생명 사랑에는 인간의 위대함과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늙은 소가 된 사나이, 이는 모진 세월의 풍상을 딛고 난 한 인간이 삶을 바라보는 평안함과 여유로움의 자세이다. 마음의 여유로움이야말로 인간이 지향하는 유토피아가 아닐까? 여기에서 복귀, 복이 있고 귀하다는 주인공과 동일한 이름을 가진 소는 그의 분신과 다름없다.

소는 제물과 희생, 상서로움, 깨달음의 상징이다. 소는 전통적인 농경사회에서 노동력의 원천이었을 뿐만 아니라 제사의 주요 제물로 쓰이기도 했다. 조선 왕실 제사에서 소는 특히 귀한 제물로 여겨져 종묘제와 사직제 등 가장 중요한 국가제례에만 사용해왔다. 제기도 소머리와 발굽 모양으로 만들어 거기에 삶은 소고기를 담아 제례 장소까지 가져갔다. 중국의 <례기(禮記). 곡례(曲禮)>에는 “무릇 종묘에 제사 지내는 소를 일원대무(一元大武)라고 불렀다”고 적혀있다. 일원에서 원(元)은 머리를 가리키고 대무(大武)는 소를 지칭한다. 희생(犧牲)이란 한자도 ‘소(牛)’에서 유래한 것이다. 중국어에는 근면하고 인민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사람을 비유하여 유자우(孺子牛)라 하고 모든 고난을 딛고 일어서는 사람을 황무지를 개척하는 것에 비유하여 척황우(拓荒牛)라 하며 고생과 괴로움을 참고 견디며 꾸준히 일하는 사람을 비유하여 노황우(老黃牛)라 한다. 이들은 자신의 근면과 희생으로 사회에 밝은 빛을 가져다준 영웅들이다.

제물로서의 소는 신성함을 지녔기에 불교와도 인연이 깊다. 석가모니 부처의 태자 때 이름은 ‘고타마 싯다르다’이다. ‘고타마’의 뜻은 ‘가장 좋은 소’, ‘거룩한 소’란 의미이다. ‘자색 바위 가에/ 손에 잡은 암소 놓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한다면/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이는 신라시기 향가로서 견우로옹(牽牛老翁)의 <헌화가>이다. 이 노래에 대한 논쟁은 퍽 흥미롭지만 이를 제쳐두고 비약적 해석이라고 할 수 있는 암소에 대한 해석은 이렇다. 로옹이 끌고 가는 암소를 “곡신(谷神)은 죽지 않으니 이를 일러 현빈(玄牝: 검은 암소)이라 한다”고 하는 도덕경의 말을 인용하여 ‘검은 암소’를 다루는 로옹은 예사 늙은이가 아니고 신선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한국 선시(禪詩) <목우도(牧牛圖)>에 등장하는 검은 소, 흑우(黑牛)도 선 수행 정진의 과정에 있는 소로, 고삐가 사람에게 쥐여져있는 아직 길들여지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와 반면 선시 <설산목우(雪山牧牛)>, <목우행(牧牛行)>에는 고난의 선(禪) 수행의 과정을 거쳐 오도(悟道)환원의 상징으로서의 흰소, 백우(白牛)를 다루고 있다. 아직 길들여지지 않은 흑우가 점차 길들여져 그 자태를 벗고 백우의 모습으로 환원되는데 이 때의 백우는 이미 수행을 끝내고 묘체를 얻어 자유자재의 경지에 도달함을 보여준다.

십이지 가운데서 근면과 우직함과 상서로움과 깨달음을 상징하는 동물 소, 특히 신성한 기운이 우기충천(牛氣沖天)하는 올해 흰 소띠해에는 우보(牛步)의 느리지만 성실하고 확실한 느린 걸음이라도 깨달음을 얻어 뚜벅뚜벅, 묵묵히 가다보면 코로나시대의 모든 고난과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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