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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무늬와 민무늬
미주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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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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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구현 / 선임기자

   
 

‘그래봤자 배에 그려진 작은 별무늬 하나일 뿐이다.’

유명 동화작가 ‘닥터 수스(Dr. Seuss)’의 ‘더 스니치스(The Sneetches)’라는 동화를 압축한 문구다. 차별을 반대하는 풍자 동화인데 내용은 이렇다.

스니치는 오리를 닮은 노란색 동물이다. 일부의 스니치들만 배에 작은 녹색 별이 있는데 이들은 별무늬가 없는 스니치들을 오랫동안 차별했다.

어느 날 한 장사꾼이 나타나 별을 그려주는 장사를 한다. 3달러면 별무늬 스니치가 될 수 있다는 말에 민무늬의 스니치들이 너도 나도 배에 별을 그린다. 그러자 별무늬 스니치들은 자신들의 특별한 지위를 잃을 위험에 처한다.

다시 장사꾼은 이번에 별을 지워주는 장사를 한다. 별을 없애는 비용은 10달러로 좀 비싸다. 하지만 별무늬 스니치들은 별을 지우는데 줄을 선다. 결국 애초에 누가 별이 있었고 없었는지 구분할 수 없는 지경에 처한다.

스니치들은 별무늬, 민무늬 할 것 없이 다 빈털터리가 되고 장사꾼만 부자가 된다.

1961년 출판된 이 책은 ‘겉모습이 달라도 누구나 평등하다’는 교훈을 심어주는 교재로 60년째 사용되고 있다.

본명이 시어도어 수스 가이젤인 닥터 수스는 여러 작품에서 교훈적 메시지를 담아왔다. 동화 ‘호튼’의 ‘생명체는 아무리 작아도 생명체’라는 문구는 낙태반대 운동가들의 모토로 쓰였다. 또 ‘로렉스’는 환경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닥터 수스는 20년 전 사망했지만 그의 생일인 3월2일이 미국의 ‘책 읽는 날(Read Across America Day)’로 지정될 만큼 영향력은 아직도 크다.

그런 닥터 수스의 책이 최근 아이러니하게도 차별을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의 첫번째 작품인 1937년의 ‘그리고 멀베리가에서 그것을 봤던 기억을 떠올려 보니(And to Think That I Saw It on Mulberry Street)’를 비롯해 6개 작품에 등장하는 아시안이나 흑인 캐릭터가 인종차별적인 시각으로 그려졌다는 이유에서다. 논란이 거세지자 닥터 수스 엔터프라이스 측은 80년 넘게 사랑받아온 해당 책들의 출판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이번 발표는 최근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인종차별 범죄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하다. LA, 뉴욕에서 한인들이 그 피해자가 되고 있다는 기사들이 잇따르고 있다. 길에서 묻지마 폭행을 당하기도 하고 정류장에 서있다가 이유없이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한인사회도 당연히 분개했다. 당국에 범인을 찾으라고 압박하고 한인 정치인들이 나서야 한다며 등을 떠밀기도 했다. 차별에 맞서 일어서는 것은 소수계로서 최소한의 방패다.

그런데, 한번쯤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문제가 있다. 우리가 차별의 가해자가 된 적은 없었는지다.

안타깝게도 증거들은 일상에 널려있다. 타민족 비하 용어는 우리가 그들이라면 입에 거품을 물 수준이다. 같은 아시안인 일본인을 쪽바리라고 하고 중국인들은 떼놈이라고 욕한다. 히스패닉은 멕작, 흑인은 깜둥이, 백인은 양놈이라고 부른다. 그들이 우릴 ‘칭총(Ching Chong)’이라고 깔보는 것과 뭐가 다른가.

한인끼리도 차별한다. A대를 나왔다는 이유로 타대학 출신을 업신여기고, A지역 사투리를 쓰면 덮어놓고 신뢰하지 않는다. 차별은 비뚤어진 우월의식에서 나온다. 내가 더 잘났고, 더 가졌다고, 더 반듯하다고 믿는다.

혹시 차별에 맞서는데 힘을 보태고 싶은 한인들이 있다면 부탁하고 싶다. 거창한 캠페인에 동참하기 전에 혹시 우리 안에 있을 수 있는 근거없는 우월감부터 없애면 어떨까 싶다.

그래봤자 배 위에 그려진 별 하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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