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선 / 논설실장

국민들을 투기꾼 취급하며 주택에 세금폭탄 퍼부어 재건축도 매각도 막아놓더니
정작 공공기관은 땅투기 부동산 적폐 4년 누구 탓인가

박태준 전 회장은 포스코를 떠날 때 "후임자들이 스톡옵션을 받는다면 할복하겠다"고 했다. 그의 비문에 `한국 경제의 아버지`라는 글을 써넣은 조정래 작가의 회고다. 한일 수교 때 받은 일본 청구권자금으로 포스코를 세웠는데 어떻게 임직원들이 자신의 공을 앞세워 사리사욕을 탐할 수 있겠느냐는 뜻이다. 박 전 회장을 취재하고 그의 위인전을 썼던 조 작가는 "그에게서 강력한 의지와 순수한 애국심을 느꼈다"고 했다.

덩샤오핑이 1978년 중국 개혁개방을 시작하던 즈음 신일본제철 회장을 만나 "중국에도 포스코 같은 제절소를 지어달라"고 요청했다. 신일본제철 회장은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했다. "중국에는 박태준이 없지 않으냐"는 게 거절 이유였다. 그 후 중국에 박태준 연구 열풍이 불었다. 박태준이라는 이름은 명예와 헌신을 상징한다.

포스코는 이제 민영화됐지만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지금도 공기업이다. 국민 돈으로 운영된다. 신도시 조성과 택지 개발을 맡은 이 공기업 임직원들이 땅투기한 사실이 드러나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 "투기는 우리 회사만의 혜택이자 복지다." "아니꼬우면 너희도 우리 회사로 이직하든가." LH 직원이 익명으로 올린 이 글에서는 어떠한 명예도 자긍심도 찾을 수 없다.

배신감이 솟는다. 그동안 정부는 "부동산으로 돈 못 벌게 하겠다"며 큰소리를 땅땅 쳐왔다. 집 가진 국민들을 투기꾼 취급하면서 종합부동산세, 양도세 폭탄을 쏟아부었다. "집 가진 국민이 개발 이익을 챙겨선 안 된다"며 초과이익환수제와 분양가상한제 등으로 재개발·재건축도 발목 잡았다. 최근에는 LH에 맡겨 공공 재건축·재개발을 하면 특별 혜택을 주겠다고 했다. 집주인들이 스스로 재건축하면 `탐욕 개발`이고, LH에 맡겨서 하면 `착한 개발`이라는 식이다.

그런데 정작 땅투기는 LH 임직원들의 잔치였다. 그들을 관리해야 할 정부는 2019년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LH에 A등급(우수)을 줬다. 땅투기에 성과급 잔치까지 흥청망청이다. 당시 LH 사장이었던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은 8000만원 가까운 성과급을 받았다. 그는 LH 사장으로 취임하자마자 바로 다음 날 해외 출장을 떠났다. 경남 진주 LH 본사에는 사장 재임 중 월평균 7.4일만 근무했다. LH 조직 기강이 형편없이 무너졌는데도 그는 오히려 장관으로 영전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은 법. 부동산 부패사슬을 헤집어 보니 청와대 출신 고위공무원, 국회의원, 시·구의회 의원 등으로 끝없이 뻗어 있다. 놀라운 것은 그들의 태도다. 2019년 1월 `목포시 도시재생사업` 투기 의혹을 받았던 손혜원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례를 보자. 그는 "차명 투기를 했다면 전 재산은 물론 목숨까지 걸겠다"고 했다. "○○방송이 저 한 사람을 죽이려 한다"며 언론도 공격했다. 그랬던 그가 1심 재판에서 투기 관련해 징역 1년6월을 선고받았다. 지금은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내가 뭘 잘못했느냐"는 고양이들이 생선가게에 우글거린다. 정부도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다"는 식이다. 앞으로도 재건축·재개발은 변 장관이 설계한 것처럼 LH에 맡겨 공공개발을 하라는 식이다. 국민을 투기꾼 취급하는 그 발상, 또 개발이익을 뺏어야 한다는 그 발상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LH 사태를 놓고 문재인 대통령은 15일 "부동산 적폐 청산을 남은 임기 동안 핵심 국정과제로 삼겠다"고 했다. "또 적폐 타령이냐. 또 남 탓이냐"는 비난이 들끓자 16일에야 비로소 "국민들께 큰 허탈감과 실망을 드렸다"며 사과했다. 문재인정부도 이미 4년째다. 그 시간이 대한민국의 잃어버린 4년이 아니라면 이제 적폐 타령은 멈출 때도 됐다. "내 잘못이요. 내 책임이요"라고 인정할 때도 됐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