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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외국인’
미주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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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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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록 / 고문

   
 

2,300여개의 한인업소가 약탈로 파괴당하며 LA한인사회가 뿌리째 흔들렸던 4.29 폭동 당시, ABC-TV에 출연해 오만한 주류 미디어의 왜곡보도를 강력하게 항의하던 이민2세 앤젤라 오 변호사를 기억한다. 그는, 흑백 갈등으로 발생한 폭동의 최대 피해자이면서도 폭동 원인을 제공했다는 오명까지 뒤집어썼으나 힘없어 침묵하던 한인들의 좌절과 공권력의 방관을 강력하고 명료하게 짚어가며 우리를 눈물겹게 했던 ‘웅변적 대변인’이었다.

폭동 1주년 무렵에 만났던 오변호사는 이렇게 ‘예언’했다. “난 한인사회 대변인이 아니라 한인사회의 미래입니다. 20년 후엔 수천 수백명의 앤젤라 오가 한인사회를 이룰 겁니다”

우린 지금 그 예언의 실현을 보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의 와중에서 급증한 아시안 증오 폭력이 지난주 애틀랜타 대량 총격살인사건으로 폭발하면서 한인 2세들을 포함한 아시안 이민의 자녀들이 커뮤니티를 위한 투쟁에 적극 뛰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4.29 때 어렸던 아이들이 이젠 정계와 언론계, 재계와 법조계에서 연예계까지 각 분야에 진출한 성인이 되어 부모들을 보호하고, 다음 세대들에게 공정한 사회를 보장해 주기 위해 아시안 커뮤니티의 강력한 대변자들로 나서고 있다.

지난 한 주 아시안 증오범죄 규탄의 함성이 미 전국에 울려 퍼지면서 아시안 이민의 자녀들은 의회에서, TV와 신문과 소셜미디어 등 온갖 매체를 통해, 그리고 거리 시위에서 ‘모델 마이너리티’라는 미명으로 포장되어온 “침묵은 더 이상 없다”고 선언했다.

USA투데이의 한인 비디오 프로듀서 제인 모도 기고를 통해 강조했다. “조지아에서 6명 아시안 여성들이 총격 살해당했다. 어떤 이들에겐 하나의 숫자로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그 이름들에서 우리의 어머니와 우리의 할머니들을 본다. 세상의 당신들은 우리가 참고 있는 눈물과 표현하는데 익숙지 않은 깊은 슬픔과 분노를 보지도 듣지도 않으려한다…이제 우리 세대는 우리 부모들이 생존하기 위해 견디어야 했던 침묵과 순응의 교훈을 잊을 것이다”

피츠버그 거리 집회에 참여한 한인 2세 배우 샌드라 오는 “난 아시아계라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외쳤고, 제인 모는 “우리는 탄력성 강한 이민의 자녀들”이라고 다짐했으며, 연방하원 아시아계 의원들은 지난주 아시아계 차별과 폭력을 집중 조명하는 법사위 청문회에서 반 아시안 폭력을 초당적으로 규탄하면서 청문회를 ‘표현자유 감시’라고 비난하는 공화당 칩 로이 의원을 향해 “우린 당신이 우리의 보이스를 죽이도록 놔두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이들 모두가 ‘웅변적 대변인’이 된 아시안 아메리칸 커뮤니티의 투쟁은 앞으로 수많은 장애에 부딪치겠지만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아시안 커뮤니티를 직접 방문해 위로하며 적극 대처를 약속했고, 상하원에도 각각 증오범죄 방지 법안이 상정되었다.

1800년대 중국인 배척법에서 2차 대전 당시 일본계 미국인 강제수용과 1980년대 빈센트 친 야구방망이 살해사건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아시아계 부당대우 역사는 길고 어둡다. 그러나 그 역경을 딛고 일어난 아시안 커뮤니티의 성장도 눈부셨다. 빈센트 친 사건 당시 수십명에 불과했던 아시안 아메리칸 저널리스트 숫자는 현재 1,500명이 넘는다. 아직 갈 길은 멀다.

지난 주말 TV 화면을 도배했던 아시안 증오범죄 규탄시위에서 유독 시선을 잡아끈 것은 곳곳에 등장한 “우리도 미국인이다”란 피켓이었다. 영어가 모국어인 이들이 ‘내 나라’ 미국에서 ‘아시안 아메리칸으로 산다는 것’에 대해 겪어야 하는 고뇌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듯 했다.

“경박하고 무지한 편견에 일일이 대꾸하며 시간을 낭비하는 대신 성공이라는 최선의 보복에 집중해온” 2세들이 미 사회의 절대적 가치 척도인 ‘백인’이라는 벽에 부딪친 것이다. 길거리의 묻지마 폭행, 얍삽한 정치가들의 모욕, 업소 유리창에 휘갈겨진 선동적 낙서만이 아니다.

공공기관의 제도적 차별의 뿌리도 깊다. 최근 폴리티코가 보도한 국무부내의 아시안 아메리칸 차별이 논란을 빚고 있다. ‘임무제한’이라는 절차를 통해 유독 아시아계 외교관들의 특정국가 근무를 제한시키거나 그 국가관련 기밀서류 접근을 금지시켜온 ‘교묘한 차별’이다.

공산치하를 피해 수십년전 미국으로 이주한 부모가 중국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중국계 2세 외교관의 중국 임무를 제한시키고, 일본 근무 발령을 받은 일본계 2세 외교관에게 후쿠시마 대지진 당시 자원봉사 등을 이유로 발령 취소를 통보하는 식이다.

국무부 근무당시 ‘한반도 관련 모든 업무 금지’ 통보를 받은 적이 있다는 앤디 김 한인 연방하원의원은 그것은 ‘외국인 혐오’였다면서 “내 나라가 나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충격에 큰 상처를 받았었다고 말했다.

미 사회 각계의 전문분야에서 성공한 많은 이민 2세들도 아시안 아메리칸으로 산다는 것은 얼굴 생김새로 인해 내 나라에서 ‘영원한 외국인’으로 취급당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고 말한다. 한 중국계 작가는 “내 아이들, 미국에서 태어난 부모의 미국에서 태어난 이 아이들에게 무엇이라고 말해주어야 하나?”라고 묻고 있다.

“난 엄마 눈을 닮은 내 눈을 좋아한다”는 한인 2세 여성 저널리스트의 11살 백인 혼혈아 딸이, 성장한 후에도 그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세상이 되도록 보이스를 높이고 투쟁을 멈추지 않는 것 - 그것이 현재로선 최선의 해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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