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욱 / 前 대검 차장·변호사]

1997년 美검찰청 연수할때
현지 검사가 한국 위기 예견
난 `우물안 개구리`실감한적
어떤 징조서 큰흐름 보려면
항상 단련하고 깨어있어야

"변화의 조짐을 미리 읽고 다가오는 위험을 감지할 수 있는 통찰력을 기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기업체 준법경영 강연에서 나온 질문입니다. 저성장 양극화로 분쟁이 폭증하고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이 거센 상황에서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가 화두였습니다. 위험을 예견하고 사람의 마음을 읽어내는 리더만이 세찬 파도를 넘습니다.

아프리카의 어느 왕이 아들을 단련시키려고 정글로 보냈다고 합니다. 나이 어린 아들은 사자와 코끼리의 울음소리만을 분간했습니다. 정글을 계속 찾아가자 뱀이 다가오는 소리와 나비의 날갯짓 소리까지 듣게 됩니다. 왕은 아들이 정글의 적막 속에서 소리 없는 위험을 감지할 때까지 계속 보냈답니다. 루치르 샤르마라는 금융 전문가가 쓴 `국가의 흥망(the Rise and Fall of Nations)`이라는 책 속 일화입니다. 영화 `미나리`에서 할머니 윤여정은 숲에서 손자가 뱀에 돌을 던지자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보다 나은 거야. 숨어 있는 것이 더 위험한 거란다`라고 일러줍니다. 고 이건희 회장은 `경영자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사람`이라고 정의합니다.

예기치 않은 위험, 시대의 흐름, 숨겨진 진실, 사람의 속내를 어떻게 읽어낼까요? 한 기업과 조직의 변화와 혁신을 책임지게 된다면 무엇을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할까요? 검사는 제보가 들어왔을 때 성공 가능성을 신중히 가늠해서 칼을 뽑을지 결정해야 합니다. 변호사도 사건의 전개 방향을 예측해야 적합한 대응 방안을 찾아냅니다. 사서삼경 중 하나인 중용(中庸)에서도 `모든 일은 미리 대비하면 바로 서고 대비하지 않으면 무너진다(凡事豫則立 不豫則廢·범사예즉립 불예즉폐)`고 강조합니다.

법과대학과 사법연수원 시절에는 육법전서와 판례로 모든 법률문제를 판단하리라 생각했습니다. 검사로 일하면서 법률 서적보다 세상의 작은 신호와 숨겨진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사건을 풀 수 있음을 깨닫고 증거 기록과 사건 현장을 파헤쳤습니다. 전문가가 되기 위해 하루 3시간씩 10년을 노력하면 `1만 시간의 법칙`을 충족시키지만, 하루 10시간 몰입하면 3년 만에 1만시간을 채운다고 생각했습니다.

미국 예일로스쿨과 동부 코네티컷주 검찰청 연수를 통해 우물 안 개구리였음을 알게 됩니다. 1997년 봄 고참 미국 검사 한 명이 `한국 경제가 악화돼 환율이 1달러당 2000원까지 되어야 하는데, 위정자들이 책임이 두려워 회피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당시 환율이 800원대였으므로 우리 경제가 반 토막 나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근거 없다고 코웃음 쳤는데, 그해 겨울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닥쳐 환율이 1964원까지 치솟았습니다. 미국의 변방 검사가 예견하는 위기를 짐작도 못 했습니다.

이후 독서모임을 만들어 20년 넘게 매달 한 권의 책을 읽고 경제신문도 구독했습니다. 스치는 아이디어를 메모하는 습관도 길렀습니다. 검찰 전문지식 동호회를 만들고 공부하는 문화를 도입했습니다. 법의 한계를 느껴 성균관대 사서삼경 과정을 이수하기도 했습니다. 부장검사 승진 후에는 조직을 혼자서는 이끌어가지 못함을 절감합니다. 직원들과 1대1 면담을 하고 설문도 활용해 리더로서 무엇을 할지 지혜를 구했습니다. 전문가들 의견도 경청했습니다.

통찰력을 어떻게 기를 수 있느냐는 질문에 `나만의 우물을 깊이 파되 우물 밖 세상도 넓게 봐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답했습니다. 30년 넘게 법률가로서 노력해 왔지만 여전히 부족합니다. 한 가닥 징조에서 큰 흐름을 보려면 늘 단련하고 깨어 있어야 한다고 되새깁니다. 한 송이 꽃이 봄을 알리고 한 자루 촛불이 어둠을 몰아냅니다. 한 그루 나무로 숲 전체를 환히 볼 수 있기를 소망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