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를 의식한 정당의 움직임과 사전선거운동

2년 뒤, 2012년에 치러질 총선 비례대표 선거(4월)와 12월 대통령 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재외국민은 230~240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과거 대선에서 50여만 표로 당락이 좌우된 경우를 생각하면 재외국민 유권자 240만 명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곳은 역시 정치권이다. 벌써부터 각 정당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특히 여당의 움직임은 집권당의 프리미엄을 통해 세를 급속히 확대해 가고 있다. 올해 10월에 한나라당은 소속의원 113명으로 재외국민특위(위원장 안경률)를 구성하고 전 세계를 8개 지역으로 구분하는 ‘대륙별 위원회 구성안’을 마련한 바 있다.

한나라당은 이에 대해 “재외국민 네트워킹 작업의 일환”이라거나, "미흡했던 재외국민과의 교류를 활성화하려는 취지"라고 하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인다.

한편,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한나라당의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여당이 재집권을 겨냥해 사실상 정당 조직을 만드는 것으로 정당법을 어긴 사전선거 운동에 해당된다고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본지에서도 이미 지적(10월 26일자-‘한나라당, 재외국민 표 잡기 사전선거 운동 돌입?’)한 바 같이 2년 앞으로 다가온 재외국민의 선거 참여를 둘러싸고 선거의 공정성문제와 탈법, 불법 투표 행위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검찰의 ‘재외국민선거사범 대응방안’과 공권력 집행의 한계

법무부는 지난 3월 ‘재외국민선거사범 관련 제도개선 TF팀’을 구성해 수사방안 마련을 위한 입법화에 착수한 바 있다. 현행 선거관련 법령과 형사소송체제로는 재외국민선거사범에 대해 사실상 공권력 집행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난 12월 10일에는 서울동부지검에서 검사와 법학 관련 교수 등이 참여한 가운데 ‘재외국민선거사범 대응방안’을 위한 실무연구회 모임이 개최되기도 했다.

이 모임에 참석한 건국대 홍봉주 교수(법학)는 “재외공관이 있는 곳만 투표소를 설치할 경우 공관이 없는 곳의 재외국민을 역차별 하는 불평등이 초래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런 문제로 인해 우편투표 방법도 거론되기도 한다.

모종린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한 신문 기고에서 “재외공관에서만 선거를 치를 경우 선거 참여의 불편과 비용부담 문제로 투표율 낮아진다는 문제가 있고, 재외공관 아닌 지역에서는 선거의 공정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검찰의 ‘재외국민선거사범 대응방안’과 관련하여 황도수 건국대 교수(헌법학)는 “헌재의 위헌 결정내용은 ‘재외국민의 선거권 박탈은 위헌’이라는 것이다. 재외국민에게 선거권을 부여한 뒤, 이를 구체적으로 구현하는 방안은 입법자에게 맡겨져 있다”고 말했다.
검찰이 재외국민선거사범‘ 대응방안을 마련하려는 것은 검찰이 국제공조를 통해 선거사범에 대해 공권력을 행사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법적 제도적 장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검찰로서 고민하는 문제라는 점이다.

이어 황 교수는 “국내에서는 선거관리에 대한 법집행과 재판이 엄격하게 적용되고 있는 반면, 해외에서의 선거관리는 지금으로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아직 적절한 입법 조치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검찰의 대응방안이 성급하게 이뤄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재외국민의 선거참여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접근 방식에 대해서도 황 교수는 “검찰의 문제제기에는 동의하지만 좀 더 연구해서 사회공론화 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황 교수는 “헌재의 판결은 재외국민에게 선거권을 주라는 것일 뿐, 제도 정착의 문제는 시간을 두고 이뤄져야 할 사항들이고, 국회의원들이 손쉽게 생각할 사안이 아니"라고 밝히고, “재외국민 선거와 관련한 '적절한' 입법마련이 시급하고 중요한 것이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재외국민 투표에 대한 입법조치나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국가 간 주권 충돌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고, 해외공관을 통해 투표야 이뤄지겠지만 선거운동의 문제가 대두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현재 법무부가 유력하게 검토 중인 수사방안에는 △현지 영사가 피의자를 직접 조사 △수사불응시 여권의 무효화 △ 피의자를 인터넷 화상통화를 통해 국내 수사관이 조사 △ 이에 대한 증거와 진술서의 증거능력 인정요건을 완화하는 내용 △ 선거사범으로 유죄판결이 확정될 경우 일정기간 선거권을 제한하는 방안 등이 포함돼 있다.

재외동포사회의 현안과 투표와의 상관관계

재외국민 투표에 대한 제반 대책과 환경이 조성되지 못한 상황에서 표에만 관심을 두고 한인사회를 들락거리는 정치인들이 발걸음이 바쁘다. 또 비례대표라도 얻고자 한국의 정치권을 기웃거리는 몇몇 교포 정치꾼(?)들은 이미 여의도에 둥지를 틀었다는 소문이다.
재외국민이 국민으로서 자국의 선거에 참여함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재외동포들이 이처럼 정치권의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주가가 높아지는 것을 보면 한편 다행스럽다는 느낌도 든다. 재외동포들이 선거를 통해 바라는 것은 한가지다. 그동안 소외됐던 재외동포에 관심을 가져 달라는 것이고, 정부의 교포정책과 지원에 대한 변화를 바라는 점이다.

현재로서는 240만 재외국민 유권자의 힘이 정치권의 관심을 끌 수는 있어도 재외동포들의 바램을 다 해결해 줄 수 없음은 자명하다. 어쩌면 거주국에서의 재외동포들의 정치력신장의 문제가 풀어야 할 급선무인지도 모른다. 고국의 선거에 참여한다고 해서 동포사회의 문제가 금방 해결될 일은 아니다. 지금의 한국의 정치권이 재외동포들에게 해 줄 수 있는 능력이나 영향력은 별로 없어 보인다. 거주국에서의 한인정치력신장 문제는 고국의 정치권에 기댈 일은 아닌 것이다. 스스로 힘을 응집하는 길 밖에 없다. 선거의 힘을 빌려서라도 고국의 정치권이 응원이라도 해주도록 할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인 듯싶다.

‘재외동포=표’라는 인식은 교포사회 분열만을 초래

재외국민의 참정권 부여에 대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기까지는 여야가 극도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국내 정치현실을 감안할 때 교포사회의 분열의 우려는 계속 제기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일부 한인회장 선거에서 일어난 탈법 선거운동을 볼 진데, 여야 정치판이 함께 뛰어든 재외국민 선거운동은 상상하기도 싫은 것이다. 재외국민 투표에 대한 제반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한인사회에 또 다른 지역감정과 여야 정쟁의 모습이 판치는 분열된 한국을 다시 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재외동포사회는 법무부가 마련 중인 ‘재외국민선거사범 대응방안’이 재외국민을 범법자로 만드는 수단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여야 정치권의 참여와 공청회, 재외동포의 의견 수렴 등을 통해 재외국민 투표의 공정성과 형평성, 편리성이 담보되는 축제의 장이 마련되길 바라고 있다.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할 대상은 바로 재외동포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