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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산 조봉암 평전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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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0.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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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명 : 죽산 조봉암 평전

  출판사 : 시대의 창

  분   량 : 564쪽

  가   격 : 16,900원

 

[ 책소개 ]

한국 최초의 진보 정당을 설립했던 정치인 조봉암
그의 굴곡진 삶을 통해 한국의 현대사를 들여다본다

백범 김구, 안중근, 한용운 등 한국 현대사의 주요 인물에 대한 평전을 통해 그들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시도해 온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 관장이 이번에는 권력욕의 제물이 된 비운의 정치인 죽산 조봉암의 삶을 추적했다. 이승만과 여기에 기생하는 검찰과 법조인 등 기득권 세력들에 의해 용공좌경의 혐의로 사형당한 조봉암의 굴곡진 삶을 자세히 살핀다.

조봉암의 삶은 암울했던 한국의 현대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죽산 조봉암은 일제시기에 3.1운동 주동자로 지목돼 1년간 옥살이를 하면서 민족과 역사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되었고, 이는 조봉암이 사회주의사상에 심취하게 된다. 조선공산당의 모체인 화요회에 뒤늦게 참여해 집행위원으로 활동했고 이후 상해에서 민족해방운동을 전개했으나 해방 이후 과격 공산주의운동과 결별한 조봉암은 분단정부에 참여해 제헌의원에 당선되고 아울러 이승만 내각에서 농림부장관으로 발탁된다. 하지만 제2대 대선에 출마하면서 이승만과 대립하게 되고 노골적인 이승만 정부의 탄압 그리고 보수 야당의 견제 등으로 힘겨운 길을 걷다 진보당 창당과 진보당사건으로 사형을 당하고 만다.

최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진보당사건이 정치탄압이므로 명예회복 조처를 취하라고 국가에 권고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죽산 조봉암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는 시점에서 이 책은 그의 삶과 정치, 한국 현대사를 아우르는 의미있는 시도가 될 것이다.


[ 저자소개 ]

김삼웅
현대사연구가 및 정치평론가. 1943년 전라남도 완도에서 태어났다. 소안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정책대학원 석사 및 하버드대학교대학원 최고위정책과정을 수료했다. 「민주전선」과 「평민신문」의 편집국장 및 「민주당보」 주간을 거쳐 김영삼, 김대중씨와 함께 20여 년간 반독재 야당언론인으로 싸워 왔으며, 1998년에는 「대한매일」의 주필을 역임하였다.

그는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 제주 4.3희생자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위원회 위원, 백범학술원 운영위원 등을 역임하고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국회 추천), 친일파재산환수위원회 자문위원, 친일파 인명사전 편찬부원장 등을 맡아 바른 역사 찾기에 부단히 노력했다. 또한 독립기념관 이사, 백범 학술원 연구위원, 단재 신채호 기념사업회 부위원장, 제7대 독립기념관 관장을 역임했으며, 성균관대학 언론정보대학원에서 커뮤니케이션과 정치문화를 가르쳤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국회 추천), 친일파재산환수위원회 자문위원, 친일파인명사전 편찬부원장 등을 맡아 바른 역사 찾기에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저서로는 『친일정치 100년사』, 『한국 민주사상의 탐구』, 『해방 후 양민학살사』, 『금서』, 『한국필화사』, 『곡필로 본 해방 50년』, 『한국현대사 바로잡기』, 『겨레유산 이야기』, 『보는 사람 없어도 달은 거기 있는가』, 『왜곡과 진실의 역사』, 『일제는 조선을 얼마나 망쳤을까』, 『위서』, 『白凡 金九全集』, (12권, 공편)『박은식, 양기탁 전집』, (10권, 공편)『단재 신채호전집』, (9권, 공편)『을사늑약 1905, 그 끝나지 않은 백 년』, 『박열 평전』, 『백범 김구 평전』, 『단재 신채호 평전』, 『만해 한용운 평전』, 『심산 김창숙 평전』, 『녹두 전봉준 평전』, 『약산 김원봉 평전』, 『안중근 평전』, 『장준하 평전』 등이 있다. 


 [ 목차 ]

1장 사법살인 당한 독립운동가
비운의 정치인 조봉암
용공의 너울
서대문 형무소의 ‘봉암새’와 ‘죽산조’
평화통일론의 탄압
서대문 형무소의 모범 사형수
마지막 순간

제2장 불우한 젊은 날 그리고 3.1운동
민족 수난의 현장 강화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
진학 포기와 교회 생활
3.1운동에 참여
옥중에서 외친 만세
서울로 상경, YMCA 중학부 입학

제3장 일본으로 건너가 사회주의사상에 심취
호랑이 굴, 일본
사상의 홍수에 빠져들어
아나키즘에 이어 사회주의사상에 경도
의식의 변화 겪고 귀국
모스크바 공산대학에 유학
폐결핵 앓고 일본 거쳐 귀국

제4장 조선공산당 조직에 참여
사회주의 단체의 확산과 분열
조선공산당의 모체와 화요회
사회주의 동지 김조이와 결혼
전국순회강연 연사로 활동
민중 중심의 사회운동 노선 추구
조선공산당 창당에 적극 참여
한때 신문기자로 활동
신의주사건

제5장 해외 망명, 국제공산주의와 연대
상해에서 민족해방운동 전개
국내세력과의 마찰
종파주의자라는 오명
상해 한인 반제동맹 결성
옛 애인과 재회

제6장 피체와 투옥
상해에...제1장 사법살인 당한 독립운동가
비운의 정치인 조봉암
용공의 너울
서대문 형무소의 ‘봉암새’와 ‘죽산조’
평화통일론의 탄압
서대문 형무소의 모범 사형수
마지막 순간

제7장 해방정국, 공산당을 떠나다
해방 앞두고 예비검속 당해
해방과 함께 다시 인천으로
과격 공산주의운동에 대한 회의
공산독재와의 몌별 선언
‘친애하는 박헌영 동무에게’
비공산정부를 세우자

제8장 본격적인 정치활동
일체의 계급독재·자본독재 부정
좌우합작운동에 참여
민주주의독립전선 창립 주도
분단정부에 참여, 제헌의원 당선
헌법기초위원으로 활동
초대 농림부장관에 발탁
농림부장관 발탁 배경에 대한 몇 가지 설
농지개혁방안 마련
한민당의 공격

제9장 정치인으로 부상 그리고 대선 출마
국회부의장으로 선출
전쟁 일어나자 주요자료 챙겨 피난
전쟁 중에 이승만 적극 지원
이승만, 재선 위해 정치파동 일으켜
발췌개헌안 지지
제2대 대통령 후보로 출마
대선 패배와 민국당과의 대립

제10장 보수야당, 붉은 딱지 붙여 참여 배제
휴전협정 체결과 굳혀진 냉전체제
제3대 민의원 선거 등록 방해
신당창당운동에 참여
신당 참여를 둘러싼 갈등
조봉암의 신당 참여 배제
북진통일론 대응 못한 민주당의 한계

제11장 이승만과 사활을 건 대결
진보당의 모태 ‘광릉회합’
간부 선정, 취지문·강령 채택
제3대 대통령 후보로 출마
야권 대선후보 단일화운동
후보 단일화에 대한 유연한 태도
신익희로 단일 후보 원칙 합의
해공 서거와 신변의 위협
잠적 그리고 대통령 선거
득표에서 이기고 개표에서 지다

제12장 혁신정당 진보당 창당
혁신정당 대동단합의 분위기
혁신정당의 조봉암 배제
진보당 창당대회
이례적인 ‘묵념시’ 낭독
개회사에 담긴 조봉암의 신조
자유민주체제 내외에 과시
진보당의 혁신정책
북한에 ‘전한국위원회’ 구성 등 제의
지구당 창당에 대한 탄압

제13장 조작된 진보당사건
권력욕의 제물이 되다
지방당 결성에 폭압적 탄압
조봉암 제거 음모
날조된 검찰의 기소내용
진보당 간부에 대한 혹독한 고문
의문의 인물, 양명산의 정체
변호인단, 날조사실 밝혀내
끊임없는 조작
정치재판으로 변질
이승만의 노골적인 재판 관여
사형 선고
조봉암을 독립유공자로 인정하라

제14장 구명운동 그리고 평가
조봉암 구명을 위한 노력
“비루한 구명운동은 말아달라”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명예회복

부록
- 구명운동과 추도문
- 조봉암에 대한 평가
- 조봉암 선생 연보
- 죽산 조봉암 선생 50주기, 명예회복을


[ 출판사 리뷰 ]

권력욕의 제물이 된 비운의 정치인 조봉암

2009년 7월 31일은 죽산 조봉암 선생이 처형된 지 5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당시 여당과 야당은 이례적으로 한목소리를 내며 조봉암 선생의 명예회복을 촉구했고 언론 역시 그 어느 해보다 조봉암의 50주기를 관심 있게 보도했다. 조봉암 50주기를 떠나 한국현대사에서 서서히 잊히고 있는 조봉암이 재조명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죽산 조봉암은 한국현대사 비극의 시작점이었다. 당시 이승만과 여기에 기생하는 검찰·법조인 등 기득권 세력들은 용공좌경의 딱지를 붙여 조봉암의 목에 밧줄을 걸었다. 그리고 이러한 수법은 1950년대에서 끝나지 않고 박정희, 전두환 시대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저자는 서문에서 “50년이 지난 지금 이 땅은 통일은커녕 평화가 심대한 위협에 직면해 있습니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을까요”라고 말한다. 즉 조봉암에 대한 정치보복이 이후 ‘한국현대사 비극의 시작점’이 되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죽산 조봉암 평전』은 바로 이 ‘시작점’을 다룬 책이다.

총14장과 부록으로 구성된 이 책의 1~3장은 조봉암의 유년시절 그리고 그의 사상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이야기한다. 조봉암은 3.1운동 주동자로 지목돼 1년간 옥살이를 하면서 민족과 역사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되었고, 이는 조봉암이 사회주의사상에 심취하게 되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4~6장은 조봉암의 공산당운동에 초점을 맞췄다. 조봉암은 조선공산당의 모체인 화요회에 뒤늦게 참여해 집행위원으로 활동했고 이후 상해에서 민족해방운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국내세력과의 끊임없는 마찰과 종파주의자라는 비판을 받으며 쉽지 않은 길을 걸어야 했다. 특히 6장에서는 일제 말기 조봉암의 전향 의혹을 다루었는데 이는 해방 뒤 다시 한 번 논란이 된다.

7~8장은 과격 공산주의운동과 결별하게 된 원인 그리고 이후 이승만의 초대 내각에 참여하게 된 배경을 이야기한다. ‘친애하는 박헌영 동지에게’라는 공개서한을 발표한 후 과격 공산주의운동과 결별한 조봉암은 분단정부에 참여해 제헌의원에 당선되고 아울러 이승만 내각에서 농림부장관으로 발탁되었다. 당시 조봉암이 만든 농지개혁법안은 비록 기득권세력의 방해로 완성되지는 못했지만 많은 농민들에게 환영받았고 대한민국 존립에 버팀목이 되었다.

9~11장은 본격적으로...권력욕의 제물이 된 비운의 정치인 조봉암
2009년 7월 31일은 죽산 조봉암 선생이 처형된 지 5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당시 여당과 야당은 이례적으로 한목소리를 내며 조봉암 선생의 명예회복을 촉구했고 언론 역시 그 어느 해보다 조봉암의 50주기를 관심 있게 보도했다. 조봉암 50주기를 떠나 한국현대사에서 서서히 잊히고 있는 조봉암이 재조명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진보당사건이 정치탄압이므로 명예회복 조처를 취하라고 국가에 권고했다. 그러나 아직 명예회복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 책을 비롯해 죽산 조봉암 선생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가 시작된 지금, 사법부는 재심을 통해, 정부는 사과를 통해 조봉암 선생의 명예를 회복시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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